법구경을 아세요?
#법구경 # 석지현 옮김
동국대에 시험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잘 될 거라고 웃어주시던 스님이 생각난다.
"잘 되었나?"라고 묻는다면
"글쎄, 기준이 어떻게 될까요?"라고 답하게 될 것 같다.
제니도 그렇고
심리학도 그렇고
온 세상이.
특히 한국이 요새 불교에 빠져있다.
심리치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차라리 부처님 말씀이 쉽게 쓰인 서적을 읽으세요."
라고 하게 된달까.
메타 인지도 인지행동치료도
그냥 불교에서 지속적으로 설파해 온
물아일체와 집착하지 말 것이라는 흐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걸 그냥
실현 가능하게 쪼갠 수준일 뿐이랄까.
내가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었을지도 모른다.
마늘을 좋아하는 나는
종교의 귀의는 어려울 것 같고
다른 경전들도 읽어 보려고 한다.
우연찮게
작년 초에 친구와 함께 소원기원 염주를 구매했다.
그 후,
정신없이 살다가 염주 속 부처님이 사라지셨다.
액땜하고 마실을 가셨나 생각하면서
그 지역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그냥 물 흐르듯이
이렇게도 살아볼까 하고 말이다.
아는 언니 집 집들이를 갔는데 집 앞이 절이었고
새해니깐 새 염주와 함께 산 책이 이 법구경이다.
그 사이에 반야심경 필사본을 샀고
필사는 안 하고 쉽게 쓰인 부처님 말씀만
읽고 또 읽고 낭독하면서
펑펑 울기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고 있다.
과히 집착을 놓으라는 말을
무수히 변주해서 반복하는데
내 삶이 집착이었던 지라
위로가 되면서 억울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오늘이다.
흠,
전직을 했고
잘한다는 평을 들으며,
투 잡을 할 수 있고,
비싸지만 만족스러운 집이 있으며,
회사까지 걸어갈 수 있고,
마음의 소용돌이가 소강상태이며,
시야각이 넓어졌고,
회사의 역동을 물러나서 바라볼 수 있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그로 인한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 잘 되었다.
다만,
진짜 ㅈ소인데
공짜 상담을 원하고,
친목질에, 정치질, 정서적 끌어들임이 심하고,
신입임에도 배울 게 없이,
오히려 내가 가르치고 있으며,
수습 출장에,
보고서에,
쌍욕 하는 대표에,
AI 메인 개발에,
web pm에,
DB 담당에,
내 이름으로 타가는 사업들임에도,
혜택이 전혀 없어 열받고,
흔들리는 시장에,
먹어가는 나이에,
일로는 채울 수 없는 포폴과,
흥미가 떨어지는 요즘에,
눈떨림과 족저근막염으로 피로에 찌들고,
사실은 심리학 연구가 하고 싶었음을 깨닫는 나날이다.
잘 되지 못하였다.
그러니
잘 되었냐는 물음에 답하기 몹시 까다롭다.
다만,
지금 겪는 것에
큰 미련이 있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투자했으니
단지 제대로 된 회사에서 이 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는 정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단 부장과 팀장과 대표의 집단역동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6년 전의 나는 어렸고
그러니 교수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구나 싶은 수준의 감상이다.
또, 주변을 둘러보면 확실히
나이만 먹는다고 다가 아니고.
왜 이렇게
살까 싶음면서 제발 알아서 살아라 싶다.
너무나도
지겹고 신선하지가 않다.
재미가 없는 게 제일 큰 문제다.
놀랍도록... 사람도 궁금하지가 않다.
항상 느끼지만
사람들은 종종 아귀 같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아귀같이
어떻게 서든 달려든달까.
이래저래 법구경이 필요한 나날이고
그래서 읽었다.
모든 것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브라만... 까지 갈 수도 없기에
그래도
그럼에도 위로를 받는다.
ps. 역자의 의견들도 달려있는데,
모든 것에 공감하진 않지만
자주 시원했다.
정리하고 보니 아래 책갈피에 역자의 말도 많다.
p.46
이 삶의 기나긴 여행길에서 나보다 나은 이나 나와 동등한 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외롭지만 차라리 홀로 가거라. 저 어리석은 자는 결코 그대의 여행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p.56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칭찬에도 관심을 갖지 말라. 그대는 그대 자신의 길만을 가라. 칭찬을 드더라도 비난을 받더라도 그런 것들은 저 미친 개새끼에게나 던져줄 일이다.
p.58
생존의 이 바다에는 언제나 즐거움과 괴로움의 파도가 치고 있다. 파도를 타지 말라. 거기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온다. 언덕에 앉아, 파란 꽃 피는 언덕에 앉아 사자의 갈기를 휘날리며 몰려오고 있는 저 파도의 떼들을 지켜봐야 한다. 저만치 거리를 두고....
"앉아서 흥망성쇠를 본다."
- 십우도
p.85
안전한 피난처는 이 세상에 없다. 이 세상 전체가 지금 지진대 위에서 흔들리고 있다. 친구여, 짓지 말라. 그 집착의 집을 짓지 말라.
p.87
죽이지 말라. '죽고 싶다'고 말하는 그것마저도 '살고 싶다'는 감정의 반어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p.93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여기 종교도 도덕도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나 자신이 나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데서 종교가, 도덕이 생겨난 것이다. 친구여, 착각하지 말라. 나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누구를 다스리겠다고 날뛰고 있는가. 지나가는 바람이 웃는다.
p.103
우선 먼저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안 다음 그것을 남에게 가르쳐야 한다. 자기 자신조차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알지 못하면서 그것을 남에게 가르친다면 그것은 그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불필요한 고통만을 가져올 뿐이다.
p.105
원망하지 말라. 그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 이 모든 결과는 나 자신이다. 원인제공은 나 자신이다. 그러나 그래도 원망은 남아 있다. 원망하는 마음은 남아 끝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다. 빌어먹을....
p.115
필요한 사람에게 줘라. 물질이든 마음이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줘라. 주면 되돌아온다. 그러나 이 이치를 다 알면서도 '준다는 것'은 그렇게 말과 같이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고뇌는 시작된다.
p.143
고뇌도 하나의 집착이다. 거기 집착이 없으면 고뇌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p.146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칭찬만 들었던 사람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곧잘 칭찬하고 곧잘 비난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너에게 뭐라고 하든 거기 전혀 관계치 말라."
- 라다 크리슈나
p.149
언어를 통해서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그러나 우리가 이 언어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언어로 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 능엄경
p.157
나에게 주어진 이 삶 자체가 하나의 길고 먼 고행길이라면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 이 삶의 바다에 이는 슬픔과 기쁨의 이 물결을, 고뇌와 좌절의 이 파도를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 나를 찾아온 손님으로 나는 맞아들여야 한다. 왜냐면 손님은 날이 밝으면 이제 곧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p.160
남의 잘못으로 보고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그것을 되씹고 있는 사람은 번뇌의 쓰레기만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는 결코 그 번뇌의 늪으로부터 길이 벗어날 수 없다.
p.188-189
그것이 사랑이든 의무든, 여하튼 어떤 명분으로라도 얽매인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저 불멸을 향해 가는 자여,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말라. 또한 어떤 명분으로라도 다른 사람을 얽어매지 말라. 그것은 집착이다. 지옥보다 더한 어둠이다.
p.201
비난에 맞서지 말라. 비난을 비난으로 받으면 그대 마음이 다친다. 그러나 비난을 무관심으로 비껴가게 되면 그 비난의 화살은 그대 마음에 아무런 상처도 줄 수 없다. 그렇지만 비난의 화살을 무관심으로 비껴간다는 그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p.205
어리석은 자들과 무리 지어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혼자가 되어 가는 것이 낫나니 더 이상의 잘못을 저지르지 말고 저 숲 속의 코끼리처럼 외로이 혼자가 되어 걸어가거라.
p.235
그대 자신이 그대 자신의 스승이 될 때 그대는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그대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스승이 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경지이지만 그러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 또한 하나의 경지다.
포스트잇을 막 붙여뒀던 내용들인데..
돌아보니
결국 외로워도 혼자 가라는 것과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내용들에만 집중한 셈이다.
얼마나 지치면
...
어휴
아마도
다음에 읽으면 또 다른 부분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