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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Dec 19. 2021

젊은 ADHD의 슬픔

슬픔과 함께 하는 것이 삶이니까


# ADHD  #


ADHD의 삶이라..

사실 나의 관심사는 아니었기에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이 선정되지 않았으면 

아마도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바닥을 쳤던 흥미는

책을 받고 달라졌다.


제목이 무지개색이라니?

일러스트가 이렇게 발랄하다고?

ADHD를 이렇게 볼 수 있었나?


작가님은 진단과 병에 대한 인지를 하는 것부터 글을 시작한다.

그것으로 인한 소외감, 답답함, 괴로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원인을 알게 된 안도감 그리고 공존하는 법을 찾기 위한 자기 탐색 시간들을 거친다.


사실 작가님도 쓰셨지만 

여러 개에 한 번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극도로 ADHD적인 글은 정말 많은 내용들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럼에도 이 병으로 인해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울증도 겪으신다.)

여러 상처가 되었던 말들과

세상에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

나를 이해해주는 이는 없을 것이란 좌절감,

그럼에도 곁에 있어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스스로에 대한 이해의 과정들과 받아들인 것.


공감의 포인트는 너무나 많았달까. (아래의 필사가 증명함)

질병의 증상들이 힘들게 하지만,

삶의 서사의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ADHD가 없고

우울을 겪는 나지만

글쎄

이런 공감이 정신병리와 관련이 있는 거 같진 않다.

더욱이, 이렇게 한 책이라면.


그냥 삶이니깐.




p.52 

 먼저 선(先) 자와 살 생(生) 자를 달고도 잔인했던 일부 선생님들의 과오를 잊지도 못한다. 

"술집 나가니?" 다섯 글자가 준 모멸감은 아직도 나를 조종한다. "관심받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 상담 선생님의 한마디는 내 평생 모든 상담의 가능성을 종결했다.


p.65

 나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내가 자야 한다고 생각하는 선생님도 진심이라서, 우리는 좀처럼 의견 일치를 볼 수 없었다. 만약 정신과 의사와 끝내주는 의견 일치를 보는 날이 온다면 그때가 진료의 끝 아닐까. 


p.86

어떤 사랑은 거리감에서 온다는 걸, 아니 거리감에서만 온다는 걸 독립으로 배운 셈이다.


p.88 

 실제로는 나도 내가 버거웠다. 너무 높거나 낮은 나의 기준들을 맞춰주느라 기분을 망치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p.89

 "... 예민한 게 뭐가 나빠요." 선생님의 집무실은 조용하니까 그는 일단 착하다.

복잡하고 거지 같은 세상. 내가 느끼는 것이 오롯이 나만의 느낌이라 외로운 세상.

...

 모두가 각자의 문제로 시끄럽고 고독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p.100-101

Q. 행복한 ADHD로 살 수 있을까?

...

 다만 뭔가 노력할 기운도 없을 땐 자신을 너무 채찍질하지 말고 놓아두어야 한다. 비난 같은 조언, 다정한 척하는 다그침, 억지 열정 따위는 ADHD의 얼마 없는 인내를 좀먹는다.

 ... 하지만 나의 큰 실수는, ADHD가 아닌 모든 인류를 정상인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단지 ADHD가 아닐 뿐 다들 제각기 미쳐 있는 세상이다. 누가 누구에게 충고하고, 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이럴 땐 우리의 주특기인 '잊기'와 '관심 끄기'를 사용해 안전해지자. 일단 안전해야 행복도 있으니 말이다.


p.120

 누군가가 ADHD라는 건 그가 매 순간 행복을 시험받는다는 소리다. 힘이 안 들어가는 머리에 억지로 힘을 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우울증은 행복이 이미 그 사람을 떠난 느낌이다. 행복은 진작 죽어서 그 사람 주변에 초라한 장례식을 열고 있다. 


p.187

 갈팡질팡하는 제게 한 친구가 "네 삶의 어떤 순간들은 누구나 살아 보고 싶을 만큼 찬란했을 것"이라는 말을 해줬거든요....

 실패는 부끄럽지만 실패한 용기만은 그렇지 않으니 틀릴수록 명징해지고 옳을 때는 명확해진다고 생각하면서요. 


p.195

그냥 완벽해지는 것보다 모자라다는 면에서 완벽해지는 게 훨씬 쉽다. 


p.215

 나의 비밀은 나에게조차 거룩함을 잃어서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 나는 'ADHD임을 숨길까 말까'보다 내 질환이 왜 숨겨져야 하는지 묻는다. 


p.217

 내가 남이 되길 원했다면 소설을 시도했을 거다. 하지만 나 자신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에세이를 쓰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나를 원했다기보다 나 자신을 구하길 원한 것 같았다. 


p.223

 결국 나에겐 나만이 유효하고 고유하다. 나는 너무 나답게 아름다워서 모든 타인에게 해석에 대한 실패를 주었다. 최후의 오해들을 아우르는 해답은, 그것들을 아예 풀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오로지 내게만 나를 해명한다. 가끔은 그조차 필요 없다. 


p.227-229

 고독할수록 천재의 영역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증거다. 자신이 지불하는 고독이 부당하다면 하루빨리 스스로가 남 모르는 천재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깎아지른 듯한 산도 인간에게 진짜 깎이면 산 아닌 공간이 되듯이, 천재성 또한 얼마든지 훼손될 수 있다. 천재 사냥꾼들은 나를 업신여기기 위해 별별 말들을 다 한다. 

 "정신을 어디 놓고 다니는 거야? 미쳤어?"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어차피 안 될 거 포기해."

 "너는 진짜 이상해."


 이때 가장 고요한 대응은 폭력에 영향받지 않음으로써 폭력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 시끄러운 싸움은 '몰래' 천재가 된 내게 참 곤란하다. 나는 그냥 "알겠어, (네가 나를 발견하지 못하게) 주의해 볼게."라는 식으로 소화기 분말 같은 립서비스를 보낼 수 있다.

내가 천재고 상대방이 천재 사냥꾼일 때, 우리 사이의 극적 이해는 불가능한 것이 된다. 

... 나를 해지더라도 꿋꿋이 나로 살겠단 결심 자체가 애잔한 천재성 이건만 그들은 절대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p.233-235

행복을 설계하는 ADHD로 살기 


7 나는 나 자신의 변호사임을 기억한다.

 솔직하게 내 잘못이 맞을 때도 너무 심한 벌을 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조차 스스로의 편이 아닐 때, 100명의 남이 돌아선 것보다 더 외로워진다. 그 느낌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처량하고 쓸쓸하다. 내가 잘못했을 수 있다. 그래도 내가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져야 하는 건 아니니까, 좀 꾸짖은 후엔 살그머니 내 편을 들어주기로 하자.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나도 나지만, 저 새끼가 더 진상이다."

 "내가 잘못한 것을 세상에 비밀로 해주기로 하자."  


8 서너 번 생각해봐도 이해되지 않는 건 포기한다.

 ... 그러면 슬퍼지니 열심히 생각해 봐도 결론이 나오지 않는 문제는 폐기해야 한다. 애초에 내가 만든 문제가 아니라서 내가 풀 문제도 아닌 것이다. 해답은 내가 모르는 곳 어딘가에서 다른 이를 만나고 있을 것이다.


12 운명론자가 된다.

 운명이란 말 뒤에 가타부타 변병이나 증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내게 일어난 일이 운명이라 여기는 순간 정서가 편안해진다. 

... 무책임해 보여도 가끔 운명론자가 되는 것은 현실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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