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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Jul 09. 2022

오래 준비해온 대답

오랜만에 자의로 읽은 책


#오래 준비해온 대답 #김영하



정말 오랜만에 읽어야 되는 책이 아닌 읽을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 


제목을 보고 처음으로 이 책을 집었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 뭔가 거창할 것 같아서 잡았더니,

김영하 작가님의 시칠리아 여행기였다. 


특별한 점이라면, 스마트 폰을 쥐지 않던 시절에 여행이라는 것일까. 

아마 이 책이 출간되고 꽤 많은 한국인들이 방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님이 방문했던 시칠리아와는 달라졌겠지만,

그래도 그가 말하는 시칠리아의 고즈넉함이 궁금해지더라.


단어, 몸짓, 손짓, 옷차림, 표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직업을 가져서 인가. 

'왜 내가 이 책을 처음으로 잡았고, 또 이렇게 금방 다 읽었을까'하고

행동의 이유를 고민하는 직업병이 도졌다.


아마 제목에 끌린 게 아니었을까.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뭔가 특별하려나.

또, 작가님의 담백한 말투가 그리웠고,

가벼운 책이 필요했다. 

여행기는 사진이 있고, 자간이 넓으니깐.  

표지 뒤에 서평이 없고, 단편적 일러스트에 대한 호기심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 호기심이 책을 열게 만들었고 사진이 먼저 등장했으며,

"언젠가 시칠리아에서 길을 잃을 당신에게" 에필로그가

생각을 전환시켜 계속 읽은 것일 수도 있다. 

독자가 아니라 여행자가 되어 정말 그곳에 갈 수도 있으니깐,

 혹시 모를 일이니깐.


2년의 대학원 생활이 지났고,

내가 배운 것은 꽤나 다양하다.

지난했고, 그것은 현재도 진행 중인 괴로움이니 정말 지긋지긋하다. 


그중에서 진실로 얻게 된 것을 생각해보자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잘 모르겠는 와중에도

시칠리아 여행기를 잡고, 읽는 여유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p.36

  음악이, 영화가, 소설이, 내게로 와서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가는 삶. 어차피 모든 것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

  그들에게 훌륭한 인간이란 많은 것을 소유한 자각 아니라 많은 것이 잘 지나가도록 자신을 열어두는 사람이다. 


p.106

  볶음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강한 팔힘과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라고 할 수 있다. 오직 강한 불만 사용한다. 화력은 팬을 들어 조절한다. 속이 깊은 중국식 팬이 맞춤한데 없으면 없는 대로 한다.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상태에서 요리 못하는 사람은 없다. 뭔가 부족한 상태에서 해냈을 때, 만족도 더 크다. 


p.125

  나는 붉은 와인을 홀짝이며 집 앞에 세워둔 뚱뚱하고 귀여운 스쿠터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도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스쿠터란 어딘가 나귀를 닮은 기계였다. 어쩌면 오늘 다녀온 길도 과거에는 고집 센 나귀들만 다닐 수 있는 길이었을 것이다. 


p.179

  농촌은 그런 곳이다. 나른한 일상 뒤에서 태연히 살육이 진행된다. 


p.284-285

  "부인, 천천히 하시지요. 날이 덥습니다."

"Signora, prego. Ècaldo."

우리는 마법의 주문처럼 이 말을 외우고 그럴 때마다 거짓말처럼 다시 인생에 대한 느긋한 태도를 되찾을 수 있었다. 


p.297

  반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취향도 내세우지 않으면서 낯선 곳에서 받는 새로운 감흥을 거리낌 없이, 아무 거부감 없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호기심은 피곤한 감정이다. 우리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든 질문하게 하고 이미 알려진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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