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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Sep 04. 2022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작은 목소리들이 주류로 올라오고 있다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김멜라, 김병운, 김지연, 김혜진, 서수진, 서이제




길고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오늘은 과거 중 가장 진보하지만, 

미래 중 가장 덜 발전적인 순간이라는 말이 

사실이려나 싶은

희망을 갖게 되는 책이었다. 


레즈비언 커플의 딜도가 주인공이 되고

그게 한국문학상에 수상작이라니.

 게이를 넘어서 무성애자를 논하다니,

산재의 가능성을 명백히 염두하면서도 그렇지 않고 좋은 기억일 수 있음을 보여주다니,

이렇게 직접적으로 귀 막은 차별에 소리를 지르다니, 

소설로써 비틀지 않고 끝까지 비굴한 삶을 보이다니,

용서와 나아감이 불가능함을 전면에 내세우고,

시각화된 언어로 

동물 살처분, 외국인 노동자 폭행, 집이 없으나 집을 지어 대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을 그리다니.


이전에 단편을 몇 편 읽어보긴 했지만

한 해의 수상작품집을 통으로 읽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난 뒤로 갈수록 좋았는데

평론가들의 의견과는 상이했다.

무언가 전문가들의 식견이 있었겠지.


내게 가장 마음에 와닿는 것은 처절하던 <미애>였고,

가장 재밌던 것은 딜도를 안마기로 쓰는 두 여자의 이야기인 <저녁놀>이었으며,

원영이 정말 행복했을까 의문에 휩싸이던 <초파리 돌보기>였고,

이렇게도 표현이 되는구나 했던 <두개골의 안과 밖>,

그리고 "죽어도 모를 거"라고 단호하던 말에 공감하던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이었다.


수진이 지르던 "악! 아악! 악!"은 내가 원했던 거였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음을 

너무나 흔해서 뉴스에도 안 나온다는 여성이 겪는 폭력들.

대체 언제쯤 이러한 증언적 소설들이 사라질 수 있을까 싶던 <공원에서>.


워홀을 해본 내게 <골드 러시>는 

단순한 연인의 헤어짐의 과정이 아니었다. 

영어를 못하기에 사장에게 착취당하고 일한 대가인 비자를 수인이 받게 한 진우도.

집을 구함에 열정적이고, 누구보다 독립적이지만 바람을 피운 서인.

그러나, 비자 때문에 한국에 가겠다는 서인을 붙잡은 진우.

서인의 외롭다는 말과 혼자 뜰을 가꾸며 같이 해보려는 시도를, 끝까지 무시한 진우.

내게는 용서의 어려움과 망설임의 글이었다.

그걸 끝자락의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면 그것도 맞겠지만.


소설들을

직접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초파리 돌보기>


p.16

  어떤 일은 아주 나중에야 볼 수 있다고. 4세대 초파리는 자신에게 생긴 일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p.40 

  나는 영원이라는 단어를 좋아해 본 적은 없었지만, 영원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한 엄마의 마음은 좋아했다.


p.42-3

  이 일을 해내야만 한다고 되뇌어야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을 쓰는 일이 내가 원하는 세계를 지켜내는 일이라 믿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세계는 무엇이었을까. 

...

  너무 열심히 쓰지 마.

  이 소설을 쓸 때 가장 많이 떠올린 말이다. 원영이 내게 누누이 말해왔던 것처럼 원영도 잘 먹기를, 잘 자기를, 행복하기를. 오직 그것만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외면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저녁놀>


p. 57

  었쨌거나 난 그걸 쓰고 쿵짝쿵짝하라고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가. 한땐 그렇게 생각했다. 내 존재가 어떤 목적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p.63

  눈점은 거칠고 포악한 것들과 맞서고 싶지 않았다. 눈점이 원하는 건 안전한 곳에서 먹점에게 위로받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눈점은 한동안 괜찮았던 입면 장애가 다시 생겼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며 경련했다. 면도칼 하나가 가슴을 가르고 들어와 신경을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


p.65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폭력을 견디며 살아가는 걸까. 어떻게 그 끔찍한 모멸감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걸까. 왜 나는 남들처럼 무뎌지지 않고 담담해지지 않는 걸까. 눈점은 남보다 더 넘어지고 아파하는 자신이 미웠다. 이겨내라고, 사는 건 다 그런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p.67

  아, 이런 게 사는 거구나, 이 밥을 위해, 이 식탁을 위해, 더 참고 견딜 수 있겠구나 싶었다. 배부르고 맛있어서가 아니었다. 눈점이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눈점과 함께 먹는 게 좋았다. 


p.73

  대파 따위에 밀려 버려지다니. 나는 자동인데, 허리에 찰 수도 있고 리모컨으로 세기를 조절할 수도 있는데. 햇빛도 물도 필요 없는 나를 이런 식으로 내치다니.


p.77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잘 느낀다는 건, 자신 아닌 다른 존재에게 공감하고 되도록 폭력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하는 건,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인간으로서 버려야 할 단점이자 취약함일 뿐인 걸까. 


p. 84

  그런데 나는? 나와 눈점이는? 우리는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관계도 못 되는 걸까. 나와 지현이는 언제까지 먹점, 눈점이어야 할까. 


p.88

  -K-레즈다. 우리, K-레즈야.


p.89

  눈점은 언젠가 설렘이 돌아올지 모른다며 그때까지 보관하자고 했다. 우리 물건이 우리의 시간이고 흔적인데, 다 버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쓸모없고 설레지 않는 것들을 버리다가 먹점이 네가 나까지 내다 버린다고 할까 봐 무섭다고 했다. 

...

  먹점은 여전히 그 눈빛에 설렜다.


p.103

  모모가 이름에 갇히고 쓸모에 묶이게 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름과 쓸모를 얻게 된 것이라면 어떨까.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p. 118

  우리는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려온 사람들을 직접 만나야만 느낄 수 있는 위안과 위로, 소속감이 절실했고, 모임은 모든 성별과 정체성을 환영한다는 기조를 내걸기는 했으나 었쨌든 게이 정체성을 핵심 동력으로 삼고 있었으니까. 


p.128

  주호씨 말이 진짜였네요.

뭐가요?

윤범씨는 죽어도 모를 거라고요.



<공원에서>


p. 155

  오해당하는 건 괜찮았다. 때로는 안전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성가신 건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였다. 어떤 사람은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 사과를 했는데... 그건 그런대로 점잖은 편이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동그란 눈을 하고 찬찬히 내 얼굴을 뜯어본 뒤 가슴을 뚫어져라 봤고, 어떤 사람은 왜 그러고 다니냐고 물어봤으며, 어떤 사람은 조언을 했다.... 나를 위로한답시고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들 그런 오해를 하지? 이렇게 여성스러운 사람인데. 그 말들은 정말 듣기 싫었다. 

... 

'여성스럽다'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근원적인 뜻은 알 수가 없었고 대신 이게 무슨 뜻인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같은 인상만 받을 수 있었다. 


p.164

  속담은 개수에서도 차이가 났는데 여자와 관련된 속담이 더 많았다. 어쩌면 당연한지도 몰랐다. 속담도 일종의 일반화니까. 남자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왔고 여자들은 여자 일반으로 살기를 강요당했다. 


p.167

  사람들도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았다. 순식간에 추론해냈다. 너무 흔하고 상투적인 일이었으니까. 계속 반복되는 일이었으니까.


p.170

  공공이라는 말에 내가 포함될 수가 없었다. 나는 공원에서 더는 안전하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공원이 공공의 장소라면 그런 감정이 일지 않을 것이다. 


p.181

  여성들은 그런 식의 위협이 결코 이유나 조건 없이 발생하는 폭력이 아니라 성을 근거 삼아 일어나는 여성 혐오 폭력임을 이미 알고 있다. 화가 났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골라 패는 것도 아니다. '나 또한 남자에게 화가 난 상태지만 "나는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면 남자는 자기 말에 고분고분 대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낯 모르는 이의 머리를 때린 후 도망가려는 사람을 사정없이 짓밟고 침을 뱉으며 지껄였다. 



<미애>


p. 199

  그런 모습들이 놀랍고 얼마간 감동적으로 다가올 때가 없지 않았으나 미애의 눈에 점점 더 또렷하게 보이는 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들의 열망이었다. 그들에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 그렇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을 지켜나갈 여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이 자신을 그 모임에 끼워준 진짜 이유라는 것을 미애는 모르지 않았다. 


p.201

  그럼에도 해민이 불쑥 그런 말을 할 때면 자신과 평생 상관도 없고, 관련도 없을 것 같은 그 독서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구체적으로 되살아났다. 모든 게 지나치게 정답 같은 질문과 대답들. 옳은 것이 분명한 이야기들. 좋은 사람이라면 추구해야 하는 가치들. 마땅히 해야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들. 어쩌면 자신도, 해민도 살면서 그런 것들을 한 번쯤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그건 희망의 모습과 비슷했다.


p.205

  미애는 깨지고 부서진 틈으로 쏟아져 나오는 언니의 말과 감정들이 항상 버겁고 두려웠다.


p.225-6

  그들이 실제로 주고받은 것은 물건과 호의만이 아닌데, 여기서 다시 한번 미애의 시점을 따라가는 소설의 형식에 주목해야 한다. 

...

  미애가 자신의 처지를 노출하는 순간 자신은 그 모임의 구성원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 동정받고 연민받을 '만한' 사람이 되겠지만, 미애에게 그로부터 오는 수치심이나 모멸감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보다 우선일 수 없다. 


p.228

 시혜하는 이의 위신을 위하여 '약자 다움'을 요구받는 인물을 초점화함으로써 이 호혜 관계 이면에 내밀한 욕망의 거래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이 소설의 확장적 성취겠다. 미애와 해민이 두 손을 맞잡는 마지막 장며의 온도를 감히 앞날에 대한 희망을 암시하는 듯한 온기로도, 더는 물러설 데 없는 절박하고도 비정한 마음에서 느껴지는 서늘함만으로도 짚어 말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골드러시> 


p. 236

  진우뿐만 아니라 한인 식당, 한인 슈퍼, 한인 여행사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은 모두 그런 대우를 받으며 일했다. 457 비자를 신청해준다는 명목으로 주에 오십 시간씩 일을 시키면서 주급으로 백 불만을 주는 업체도 있었다.... 그러니 진우의 사장은 악덕 업주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들 했다. 


p.245

  언젠가부터 서인은 뒤뜰 가꾸는 것을 그만두었고, 이제 뒤뜰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풀이 허리까지 올라와 있었다. 진우는 버려진 정글처럼 보이는 뒤뜰을 바라보면서 어느 편이 더 나은지 알 수 없었다. 먹지도 않는 채소들이 가득한 뜰과 보기 흉한 잡초로 뒤덮인 뜰 중에 무엇이 더 나쁜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p.255

  나는 당신이 이 소설을 읽으며 슬퍼하기를 바란다. 뒤뜰을 가꾸는 서인의 뒷모습을, 캥거루를 쇠막대로 내려치는 진우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아주기를 바란다. 지나가버린 사랑을 온 힘을 다해 움켜쥐고 있는 이들을 안쓰럽게 여겨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사랑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언제 가는 사랑에 다가갈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p.261

  어쩌면 이 물음은 캥거루의 생사가 아니라 그들의 관계에 대한 마지막 확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우리 사이를 유지하는 가느다란 숨통이 남아 있는 거냐고, 정말 그렇다고 말할 수 있냐고 말이다. 



<두개골의 안과 밖>


p.274

  이곳에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세워질 것이다. 누군가 사고팔 것이며, 누군가 그 안에 들어와 살 것이다. 그 집에 사는 건 내가 아닐 것이다. 그저 이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하는 일.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일이다. 


p.296

  죽음이 너무 많았다. 죽음이 너무 많아서 죽음인가 보다 했다. 

...

 나는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많은 죽음들을 빌려 산다.


p.297

  그러나 반드시 써야 한다면, 어디에선가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쓸 수 있을지 모른다. 또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어쩌면 앞으로 벌어질 수도 있는 일에 대해. 누구라도 겪게 될 수 있지만, 누구라도 겪어서는 안 될 일들에 대해. 새 인간 사태 이후의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비극은 현실이 아니라 소설이 되어야 한다는 가정하에. 반드시 소설적 허구가 되어야 할 일들에 대해서는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사평>


p. 330

 어떤 계급의 문제 앞에서는, 좋고 올바른 보편의 가치와 행위들마저도 사치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p.336

  수진이 "뜻대로 된 적은 별로 없지만 나는 사는 게 좋았다" "살아서 개 같은 것들을 쓰다듬는 것들은 특히나 더 좋다" 같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게 해 준 것이 좋았다. 때로는 그런 생각을 잃지 않는 것이 폭력에  지지 않는 유력한 방법이 된다. 


p.345

  그러므로 앞서 내가 쓴 "이 소서의 화자 '나'에게서 시종일관 느껴지는 분노"라는 표현은 잘못되었다. 그저 분노가 아니라, 삶을 지속시키는 분노-에너지이다. 


p.347

  민낯이 드러난 상애에게 비굴하고 절절하게 매달리는 미애를, 허위일지라고 상대가 계속 자신에게 가면을 써주기를 바라는 비애를 우리가 혐오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는 것. 어째서일까? 그건 당연하게도, 미애를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거나 섣불리 구출해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작가의 공력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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