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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Apr 05. 2024

라라랜드, 2016

해피엔딩? 새드엔딩?

#La La Land, 2016  #데미안 셔젤 Damien Chazelle




요즘 삶의 즐거움인 플레이브의 예준이가 라라랜드를 함께 보자고 해서 3월 24일에 영화를 봤다.  

벌써 2주가 지났구나..

한참 지나서 글을 쓰고 있네. 


사실 2016년 개봉 당시에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큰 감흥이 없었다. 

그냥 흔한 이야기같이 느껴졌다.  

미장센은 너무 아름답고, 

음악도 좋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랑을 포기한 흔하고 흔한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로 느껴졌달까.


이제 이 영화를 다시보니 흔해서 눈길을 사로잡는 게 뭔지 알겠다고나 할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ㅎ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나 소란했다. 


'작년에 이 영화를 봤으면 어땠을까' 의문이 계속 들었고,

두 주인공이 꿈을 향해 가는 것을 지켜보는 내내 지나간 나의 선택들을 생각했다.


오디션을 계속 보는 미아를 볼 때 

세바스찬의 권유로 극을 쓰기 시작한 미아를 볼 때 

둘이 끌리는 것을 볼 때 

세바스찬이 미아를 위해서 돈을 벌려고 밴드에 들어가는 것을 볼 때

변화하는 세바스찬을 견디지 못하는 미아를 볼 때

미아의 상영회를 일 때문에 가지 못했던 세바스찬을 볼 때

포기하려는 미아를 잡아주는 그를 볼 때

그녀를 알아봐 주는 영화 관계자들을 볼 때 

언제나 서로를 사랑할 것이라는 그들의 대화를 들을 때

5년 후 시간이 지난 후 자신만의 재즈바를 차린 세바스찬을 볼 때 

남편과 우연찮게 세바스찬의 재즈바에 들어선 미아와,

서로 마주 보는 그들을 볼 때

작은 선택들로 어쩌면 달랐을 수도 있는 미래가 펼쳐질 때

마지막으로 둘의 눈이 마주치고 웃으며 헤어질 때


그 모든 순간들에 지나온 시간만큼의 내가 있었다.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이 영화가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꾸준히 인기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갈림길에 서 있는 둘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어찌나 묘하던지. 

서로의 가장 순수했던 꿈을 지지해 주는 연인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다. 

그래서

그랬기 때문에 서로를 위한 선택이라고 여겼던 것이 

오히려 멀어지게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이 영화는 그런 미묘한 순간들을 잘 캐치해서 보여준다.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인가? 새드엔딩인가?

버블에서 오랜만에 영화의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독서 모임을 안 한지도 1년이 더 됐으니,, 더 반가웠달까. 


결론적으로, 나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아쉽고, 아련하고, 후회돼도 지금 웃을 수 있으니까. 

아주 지칠 때는 웃음조차 사치가 되는 순간들이 있다.

도저히 미소조차 짓지도 못하는 경험을 모두가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얼마만의 시간이 흘렀던지 눈이 마주쳤을 때 웃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잘 버텨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서로를 선택했고, 꿈을 이루지 못했다면 행복했을까?

그러긴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원망하는 시간들을 보내지 않았을까. 

또, 내가 생각에는

미아와 세바스찬이 만약에 둘이 함께하는 미래를 선택했더라도 꿈을 꾸는 것을 멈추지 않았을 것 같다. 

이미 라라랜드, 꿈의 로스앤젤레스를 선택했던 사람들이니까. 


영화 중간중간의 오던 예준이의 버블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밴드 음악이 전통 재즈가 아니어서 처음에는 싫어하던 세바스찬이

연주를 즐기는 것 같은 모습으로 변했을 때였다.


"연주하면서 노래하면서 웃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라서요." 


이 말에 너무 공감을 했던 것이....

생각보다 일을 하면서 웃는 것이 쉽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하던지,

싫은 일을 억지로 하던지, 

어떤 상황이든지 말이다. 


내가 직업을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웃지 않아서였기도 했으니까.

웃을 수가 없어서 그냥 의무와 버팀만 남은 상황의 지속은 삶을 무채색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우리와 달리,

미아는 세바스찬이 밴드 무대를 즐기는 모습에 놀랐고

충격을 받아 뒤돌아서 나갔었다.


글쎄 사람은 변화한다.

꿈은 꿈이고,

내가 살아가는 현실은 현실이고,

사람은 적응하며 변화한다. 


사람들은 모든 풍파에도 처음의 순수했던 꿈을 끝까지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오랜만에 보는 영화의 감상도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있는 걸까. 

오히려 굉장히 경직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든다. 


사람마다 해석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내게는

그 순간의 세바스찬이 꿈을 포기했다는 게 아니라

즐기며, 웃을 줄 알게 된 것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영화는 특히 사람들이 결말을 해석할 때 꿈과 사랑으로 양분해서 보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꿈을 이뤘으니 해피엔딩이 아니냐,

아니다. 사랑을 잃었으니 새드엔딩이다."


다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조금 아쉽지 않을까. 

물론 영화의 극적인 연출을 고려하고,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인 로스앤젤레스에서 꿈을 이뤘기에 더 해피엔딩처럼 느껴지긴 한다. 

또, 사랑을 잃은 것은 절망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쉽다면 미련이 남은 게 아닌가하는 의문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시각적인 "성공"은 너무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어떻게 사람이 후회되지 않는, 아쉽지 않는 "사랑"이 하나도 없을 수 있을까. 


노력하고 노력하던

열심히 자신을 태우면서 꿈을 꾸던 시절에 

믿어주는 사람을 만났고

사랑했고

각자의 삶에서의 선택으로 인해서

엇갈리고

헤어졌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원했던 삶을 살아나가고자 애써온 자신에게 바치는 헌정가로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오래된 노래와 사진처럼

젊은 날의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로서 말이다. 


그렇게 보는 것도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한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ps. 징징대지 말라고 한 소리 해 줄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가정을 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아쉬움과 복잡함이 남는 

예준이 말처럼 "만감히 교차하는" 영화였다. 

생각나면 또 볼 것 같닿ㅎ





"자기 캐릭터를 직접 써봐요. 자신에 걸맞은 역할을 직접 만들고 허접한 오디션은 쓰레기통에나 버려요. 루이 암스트롱을 봐요. 밴드에서 나팔이나 불며 살 수 있었죠. 그런데 안 그랬어요. 뭘 했을까요?"

"뭘 했는데요?"

"역사를 다시 썼죠."

"나도 오디션 집어치우고 역사나 다시 쓸래요."

"이제 내 할 일은 다 했네요."



"재즈에 열정이 크니까. 사람들이 올 거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 주니까. "

 


"재능은 없고, 하려는 열정만 가득한 사람들 있잖아.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나 봐."      

   


"중요한 사람을 어디서 만날지 몰라.

내게 날개를 달아줄 그 사람.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줄 그 사람.

사람들 틈의 그 사람. "      

 


"우리는 어디쯤 있는 거지?"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해?"

"할 수 있는 게 없어. 자기가 캐스팅되면, "

"만약에 되면"

"소식이 오면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해. 전력을 다 해야지. 자기 꿈이잖아."

"그럼 자긴 뭐 할 거야?"

"난 여기 남아서 내가 계획한 걸 해야지. 자기는 파리에 가겠구나. 거기 재즈 좋아. 이제 재즈 좋아하잖아 그렇지?"

"맞아."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

"언제나 자길 사랑할 거야."

"나도 항상 사랑할 거야."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하여,

비록 바보 같아 보이겠지만

마음이 아픈 이들을 위하여

우리가 망쳐놓은 것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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