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도 만들어 봤어요
택배 받아라~
아직 무더위가 가시지 않은 9월의 어느 날이었어요. 몸빼 아줌마의 집에 '신선식품'이라고 쓰인 택배가 왔네요. 나가노의 지인이 보낸 포도래요. 나가노는 일교차가 커서 맛있는 과일이 나는 지역이라네요. 한국의 대구 같은 곳일까요?
포도를 보더니 마키 아저씨가 말해요. “그런데 어째 올해는 알이 조금 작다? 한 9병 나오려나?”
병이요?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와인을 담그신대요. 그런데 두 분은 술은 안 드세요. 파는것도 아니고요.
"그럼 와인을 만드는 이유가 뭐예요?"
라고 물으니 만드는게 재밌으시대요. ‘내가 안 마시면 선물로 주면 된다’ 면서요.
취미로 와인을 만드는 시골 아지매와 아재 덕에 저도 생전 처음으로 와인을 만들어봤어요.
“통에 포도를 담은 뒤 백설탕을 적당히 넣어주고 빨래하듯 잘 비비고 짜 줘. 설탕이 포도에서 수분이 빠져나오게 해 주거든. 그러면서 즙이 베어 나오는 거야.”
네네, 손으로 비비고 짜준 다음 발로 쿵쾅쿵쾅 열심히 밟았어요. 이렇게 힘쓰는 건 자신 있거든요. 저의 괴력에 사정 없이 짜부러진 포도를 보며 마키 아저씨가 다가와요 그리고는 검지손가락을 드네요.
“여어, 다 끝났구나! 제일 중요한 마무리가 뭔지 아니?”
“뭔데요?”
“이따 밤 9시쯤에 뚜껑을 열고 손가락에 침을 묻힌 뒤 원을 그리면서 '맛있어져~라~’하고 주문을 외워주는 거야.”
아니 이 썰렁한 개그는 뭘까요. “에이 아저씨~ 애도 아니고 그게 뭐예요~"라고 답했죠. 그런데 이상해요. 그런 말을 듣고 나니 한 번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밤 9시, 마키 아저씨 옆에 따라 나와 와인을 휘저으며 ‘맛있어져~라~’라고 해봤죠. 그런데 말이라는게 정말 힘이 있나봐요. '맛있게 되겠지?’ 하고 기대하게 되는거에요. 아까는 애도 아니고 뭐냐고 해놓고는, 웃기져. 무시해서 미안해요 아저씨...
그리고 그 후로 가끔 검지 손가락을 들고 이런저런 주문을 외우게 됐어요. ‘예뻐져라~’ ‘잘돼라~’ 하고요. 좋은 말이니까요. 믿는만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뱀발>
그리고 얼마 뒤, 아케미 아주머니의 생일날이었어요. 사실 그 전날 다 같이 밥을 먹었는데, 마키 아저씨가 서프라이~즈! 생일 케이크를 사 오셨더라고요. 축하 기 분을 내기 위해 아주머니가 만든 와인을 가져왔어요. 작년에 담근 와인이래요.
어? 그런데 다들 술 안 드시는데요. "이 와인들 어떻게 해요?” 라고 물었어요. 마키 아저씨가 말하네요. "여기 술 마시는 사람 너 밖에 없잖아~ 네가 다 마셔야지! 크하하“
네, 아주머니의 생일을 기념해 저 혼자 와인에 취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