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증을 고치는 훈련 같았던 여행
자이살메르에서 조드푸르, 아그라, 바라나시를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 뒤 다즐링에서는 일행이 네 명이 되어있었어. 자이살메르로 방향을 트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M 옹은 자이살메르에서 바로 델리로 돌아가려던 계획을 바꿔 한 달 가까이 함께 여행했고, 그렇게 오래 여행할 줄 모르고 옷을 몇 개 가져오지 않아 꽤 꼬질꼬질했어. 사실 인도에서는 모두가 금방 꼬질꼬질 해지긴 했어. 이상하게 멀쩡히 걷고 있어도 옷이며 가방이며 찢어지기 일쑤였고, 눈물이 날 정도록 독한 매연 덕분에 옷도 머리도 금방 더러워졌어. 처음엔 ‘내가 드디어 인도에 왔구나’ 하고 감격해서 눈물이 난 줄 알고, 내가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하다니! 하고 좋아했는데, 아쉽게도 그냥 공기가 안 좋아서 화생방 훈련처럼 눈물이 나는거더라고.
인도에서의 정신없었던 하루 중 하나를 이야기해 볼까?
하루는 바라나시에서 강가에서 연을 날리는 아이들이 부러워 ‘나도 날려봐야지’하고 시장 한 편의 가게에 가서 연을 사 가지고 나오면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하게도 ‘그거 예쁘다’고 칭찬부터 시작해 ‘나 주면 안 돼? 나 주라!’ 하고 달려들었어. 너무 진지하게 스피드를 내며 쫓아오는 아이 덕에 난 또 무섭다고 냅다 도망갔지. 연 하나 때문에 영화 ‘도망자’의 추격신을 찍으며 시장통을 빠져나와 헥헥대며 멈추면 옆에 있던 소가 갑자기 폭포수같이 오줌을 뿜어대. ‘히익!’ 하고 놀라 옆으로 돌면 웬 터번 쓴 아저씨가 당당히 골목 센터에 앉아 똥을 싸고 있어. 밤새 달리던 기차가 새벽이 되어 역에 잠시 정차할 때면 꼭 물 한 바가지 가지고 기찻길 옆으로 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똥을 싸던 수많은 사람들을 봤어도 길에서 똥 싸는 사람은 여전히 적응이 안돼. 그렇다고 기차 근처에서 똥을 싸는 사람들에 적응했다는 건 아니야.

‘아니… 왜 굳이 기차 근처까지 와서 똥을 싸는…’
저들은 당당한데 왜 민망함은 나의 몫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에 앉아 있으면 어느샌가 3명이 앉는 자리에 두 명이 끼어 앉아 다섯 명이 가기도 일쑤. 어느 날은 새벽에 일어나 시계를 보고 ‘도착하려면 아직 좀 남았네’ 하고 눈을 붙였는데 맨날 연착만 하던 기차가 그날따라 예정보다 일찍 기차역에 도착해 사람들이 새까맣게 밀려들어오는 걸 보고는 허겁지겁 침대에서 내려 사람들 사이를 말 그대로 ‘수영’하며 간신히 내리며 아침을 맞기도 했어. 오기 전에 한국에서 힘들었던 일, 슬펐던 일? 그런 건 어느 순간부터 생각도 안 났어. 순간순간 일어나는 일들에만 집중하고 충실하던 하루하루, 정신없이 엉망이었지만 살면서 제일 즐겁고 신나는 매일이었던 것 같아. 하지만 아무리 흐르는 대로 가려해도 언젠가 어딘가로 이동은 해야 했기에 한 장소에 도착하면 바로 매표소로 가 그다음에 가고 싶은 도시를 정해 표를 사두는 일만큼은 꼭 먼저 했어. 표를 구하는 데에 과장이 아니라 정말 몇 시간씩 걸리고 며칠 전부터 매진됐기 때문에 나중에 계획을 바꾸더라도 일단은 뭐라도 구입을 해 두는 게 좋았거든.
그렇게 표 구하기가 힘들어 웬만하면 행선지나 날짜를 바꾸지 않으려고 했는데, 다즐링에서 나의 인도 여행 마지막 종착지인 콜카타로 가던 날은 급하게 표를 구하게 됐어. 사실 다즐링에 올라가기 위해 내린 뉴잘패구리라는 역에 도착하자마자 몇 시간을 기다려 1주일 뒤 콜카타로 내려가는 기차표를 구해놨지만 예정보다 일찍 콜카타로 가기로 했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표는 1등석까지 매진이었고, 자이살메르에 갈 때처럼 우리는 먼저 이등칸 (입석표)를 끊고 차장에게 취소표를 사기로 했어. 원래 입석표를 사면 입석 칸에만 타고 다른 칸에 타면 안 되지만 가장 싼 2등 칸은 위험하니 아무리 돈이 없어도 외국인은 웬만하면 타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데다 그동안 기차를 타며 지나갈 때마다 쇠창살이 쳐진 2등 칸 창문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던 딥다크한 눈빛들을 봐 왔기에 ‘설마 지금까지처럼 곧 차장한테 취소표를 살 수 있겠지?’하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SL(침대차) 칸에 올라탈 때까지만 해도 그날 그렇게 긴 밤을 보낼 줄은 생각도 못했지.
다즐링에서 일찍 내려온 이유는 너무 평화로워서였어. 이름 자체가 홍차의 이름이 되었을 만큼 차로 유명한 다즐링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 칸첸중가가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어. 고도가 높아 기차역에서도 지프차를 타고 굽이굽이 한참을 올라 가야 겨우 나오는데, 서늘하고 티베트계 주민이 많아서 그런지 바가지도 없고 깔끔했지만 뭐랄까, 너무 정상적(?)이라 1주일이나 머물기에는 너무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실 이 평화를 원해서 온 거였는데도 며칠 지나지 않아 질척거리는 인도가 그리워졌어. 연애에 비유하자면 나를 괴롭히던 나쁜 남자랑 헤어지고 착한 사람을 만났는데 자꾸 그 나쁜 남자가 그리워지는 그런 변태 같은 느낌?
하지만 험한 길을 올라오느라 멀미까지 하며 고생한 게 아까워, 이왕 올라온 김에 다즐링 위에 있는 시킴까지 가보자고 했어. ‘은둔의 왕국’이라 불리는 시킴은 인도 땅이지만 다즐링에서 비자를 따로 받아 가야 하는 독특한 곳이었는데, 갈 생각이 없었던 곳이었기에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른 채 ‘다즐링보다는 좀 더 시골이겠지?’ 하며 시킴의 주도인 갱톡이라는 도시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어.
5-6시간쯤 달렸나, 아름답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 드디어 닿은 갱톡을 보고 우리는 할 말을 잃었어. 다즐링 보다도 더 깨끗하게 정비된 건물들과 쓰레기 하나 없는 길거리, 분수와 음악이 흐르는 광장과 아디다스 컬처 매장 등, 델리에도 없는 세련된 디스플레이의 가게들이 있는 ‘젠틀한 도시’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거든. 우리는 실망(?)했고, 안 되겠다 좀 더 시골로 가보자며 다음날 아침 일찍 버스 정류장에 가 이번에는 ‘남치’라는 시골로 떠나는 차에 올랐어. 하지만 3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남치도 규모만 작았지 갱톡이랑 다를 게 없었어. 남치의 랜드마크라는 거대한 시바신 신전은 마치 힌두교도들을 위한 디즈니랜드 같았고, 숙소도 너무 깨끗하고 사람들은 더없이 신사적이었어. 역시나 좋으면서도 이상하게 인도의 정신없는 거리들이 더욱 그리워지게 만들었어. 그래서 우리는 모두 다음날 미련 없이 떠나기로 했고, 예정보다 이틀이나 빨리 콜카타에 가게 된 거였어.
다즐링 발 지옥행 특급열차 2등 칸으로 Go Go
하지만 기차표는 없었고, 차장은 아무리 찾아봐도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어. 그날따라 기차는 유난히 전쟁통의 피난열차처럼 사람들로 그득했어. 여기도 사람, 저기도 사람, 심지어 화장실 앞도 사람들로 넘쳐났어. 게다가 하필 나는 그날 한 달에 한 번 걸리는 마법이 시작된 날이라 몸도 멘탈도 더 힘들고 그저 어디든 앉고 싶었지만 우리 넷은 복도 자리 쟁탈전에서도 KO패하고 말았어. '과연 앞으로 8시간을 서서 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오밤중에 열차에서 내려 오들오들 떨며 한 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그다음 열차를 탔어. 다행히 이번에는 SL(침대칸)에 자리가 몇 개 있었지만 그 기쁨도 오래가지 못했어. M옹이 잠시 앉아있던 자리에 주인이 나타나 소리를 질렀는데 그가 이에 질세라 같이 싸운 통에 새벽 1시에 자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구경을 온 거였어. 인도 사람들은 보통 이런 경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노프라블롬’ 하고 넘어가곤 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다들 호전적이었어. 우리는 연신 죄송하다며 M 옹을 끌고 나와 복도로 내달렸고, 컨디션이 바닥을 치던 나는 체면이고 뭐고 화장실에 옆 구석에 배낭을 놓고 그 위에 엎드려 잠을 청했어.
그러다가 얼마 뒤, 누군가 툭툭 치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어. 차장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어. 만세!
“1등석이든 뭐든 좋아요. 취소된 표가 없을까요?”
그날은 하늘이 작정하고 우리를 멕이려고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날이었어. 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넉살 좋은 차장들과 달리, 그는 우리 표를 보더니 근엄한 얼굴로 마치 설국열차의 한 장면처럼 “2등 칸 주제에 감히 SL칸에 무임승차를 해?” 라며, 500루피의 벌금을 내고 당장 2등 칸으로 꺼지라고 했어. 사실 규칙대로 하면 맞는 말이긴 하지만, 취소표가 있으면 당장 사겠다고 했는 데다 이 새벽에 그 무섭다는 2등 칸에 가라니… 우리는 돈은 얼마든 더 낼 테니 여기에라도 있게 해 달라고 빌고 사정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고, 마법이 시작된 탓에 짜증이 목까지 차올라있던 나는 결국 못 내리겠다며 바닥에 드러누워버렸어. 그러자 차장은 경찰을 불러오겠다며 휙 나가버렸지.
그 말에 길에서도 몽둥이로 사람들을 북어 패듯 후 드려 패던 우락부락한 인도 경찰을 떠올리며 퍼뜩 정신을 차린 우리는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500루피씩을 꺼낸 뒤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그를 기다렸어. 돌아온 그는 다행히 화를 누그러뜨린 채 경찰을 데려오지도, 더 이상 벌금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다음 역에서 2등 칸으로 옮겨 가지 않으면 기차에서 아예 내쫓겠다고 경고했어. 우리는 혹시라도 다시 경찰을 불러온다 할까 봐 연신 굽신굽신 감사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다음 역에서 호다닥 2등 칸으로 옮겨 탔지.
새벽 3시쯤 되었을 거야. 처음 타보는 2등 칸은 비유가 아니라 정말 피난열차, 아니 부산행 좀비 열차 같았어. 청소는 언제 한 걸까 싶을 정도로 낡고 더러운 기차. 다행히 다들 자고 있어 주의는 덜 끌었지만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서로의 발에 얼굴을 맞대고 자고 있던 통에 발 디딜 틈도 없었지. 우리는 무섭지만 각자 엉덩이 붙일 자리를 찾아 흩어져야만 했어. 나는 한 의자 옆 손바닥만 한 공간에 앉아 배낭을 품에 안고는 ‘인도의 이런 해프닝들이 그립긴 했지만, 내려오자마자 환영식 한 번 화끈하네…’ 라며, 괜히 일찍 내려왔나, 아니 아예 인도에 오지 말걸 그랬나, 자는 동안 배낭 훔쳐가면 어쩌지 등등 궁시렁대다가 피곤에 못 이겨 잠이 들었어.
그런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새벽동이 어스름하게 틀 무렵, 또다시 누군가 툭툭 어깨를 건드렸어. '으앙 누구세요' 하고 무서워 조심스럽게 실눈을 뜨니 자그마한 여자 아이가 보였어. 커다랗고 차분한 눈을 한 아이는 자신의 건너편에 있던 남자가 의자에 다리를 올리고 자던 것을 깨워 다리를 내리게 했고, 나보고 그 빈자리에 앉으라며 다정하게 손짓해 주었어.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그 순간 세상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기 시작했어. 타이밍 기가 막히게 의자에 앉자마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좁은 창살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온 열차 안이 오렌지빛으로 물들기 시작해 더 그랬던 것 같아. 소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친절하게도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주었어.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듣고 있자니 마음이 편해졌고, 몸도 가뿐해져 왔어. 정말 이상했어.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긴장으로 안 쑤신 데가 없었거든. 햇빛이 들자 바닥에 누워 자던 사람들도 하나 둘 부스스 일어나 바닥에 앉더니 눈이 마주치자 ‘나마스떼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해 줬어. 밖에서 볼 때에는 어둡고 무시무시해 보이던 이등칸이었는데, 막상 안에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어. 나도 ‘나마스떼’라고 인사를 하자 모두 씩 하고 예쁘게 웃어주었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인도에 온 나를 저주하고 있었는데, 또다시 나쁜 남자 인도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었어. 나는 계속 같은 공간에 있었건만, 그 작은 여자아이가 내 주변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꿔준 거야.
예전처럼 계획을 장황하게 세우지는 않는 지금도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여전히 욕하면서 짜증 낼 때도 많아. 인도에 가면 류시화 책에 나오는 것처럼 나도 철학자가 된다? 그거 개소리야. 그래도 힘들 때 가끔 다즐링에서 콜카타로 오던 기차 같은 추억을 생각하며 ‘뭐 곧 좋은 일도 생기겠지’ 하는 아주 약간의 여유는 생긴 것 같아. 어떤 상황을 좋게 만드는 것도 나쁘게 만드는 것도 모두 사람에게 달렸다는 걸 생각하며, 그때 나를 도와준 여자아이처럼 누군가 힘들어할 때 작은 친절이라도 먼저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몸으로 배운것도 큰 수확이었고.
인도에 잠깐 갔다 왔다고 심오한 철학자가 되거나 구루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여행이었다고 생각해.
p.s. 사실 언젠가 인도에 돌아간대도 다시 이등칸에 올라 탈 자신은 없어. 여전히 위험한 건 맞으니 권하지도 않고. 나는 운이 좋아 멀쩡히 나왔지만 위험한 일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하니 웬만하면 SL칸 이상을 타고 여행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