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Africa라는 말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거 아닐까
탄자니아 아루샤의 어느 북적이는 바, 나는 머리의 반만 드레드락 (레게머리)를 한 채로 멍청하게 서있었어. 바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 나는 아루샤 시내를 달리던 고물 버스 안에서 소매치기를 당했고, 그 소매치기를 쫓아가 내 손으로 잡아 경찰에 넘겼지만 경찰은 그를 쉽게 놔 주었고, 이에 항의했지만 경찰은 내 앞에 앉아 코만 후비고 있었지. 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허리를 젖혀가며 웃어댔고, 분한 마음에 울면서 숙소로 돌아와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드레드락을 하기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정확히 반만 레게머리가 되어있었어. 신기한 동물을 보는 것 마냥 사람들이 하나, 둘 다가오기 시작했고, 늦은 밤 혼자 숙소로 돌아갈 수 없던 나는 한 동안 일행들이 돌아가자고 할 때까지 꼼짝없이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어. ‘아아 TIA… 대체 난 아프리카까지 와서 뭐 하고 있는 거냐…’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영화가 있어.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내전의 비극을 다룬 작품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자이먼 혼수라는 아프리카계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와.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인간의 이기심, 이 이기심으로 인해 파괴되는 소년병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삶, 선진국 대기업들의 이중적인 면모 등, 아프리카 대륙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보여주며 이들의 아픈 역사와 현실을 알려주고 있는 작품이야. 여기서 자주 나오는 대사 중 하나가 "TIA, This is Africa”라는 거야. ‘뭘 바래, 여기 아프리카잖아 어쩔 수 없어’라는, 약간 비꼬는 의미로 쓰이는 말인데, 탄자니아 현지인들도 황당한 일을 만나면 어깨를 으쓱하면서 곧잘 ‘TIA’라고 하곤 했어.
TIA라고 쓸 수 있는 예를 들어볼까. 우리가 머문 게하와 NGO를 운영하는 벤슨에게 초등학교 두 곳의 식수탱크를 고치라고 돈을 준 뒤 한국에 돌아와 수리는 잘 되어가고 있냐고 물어보니 “아, 지금 경찰서에 있느라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라는 대답이 왔어. 인부들을 불러다가 수리를 하라고 장비를 줬더니 그걸 들고 도망가버려 쫓아가 잡느라, 그리고 경찰에 잡아 넘겼는데 행정절차가 너무 느려 며칠이 걸렸다는 거였어. “아니 무슨 수리한다는 사람들이 손님 장비를 들고 튀어?” 황당해서 물으니 벤슨은 항상 있는 일이라는 듯 ‘TIA’라고 대답했어.
벤슨의 게스트하우스는 하루 세끼 식사를 포함해 $13 밖에 안 하는 초저렴한 숙소지만 그 마을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곳이었어. 그곳에서 밥하고 청소하는 직원들이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한 달에 두 번 빼고 하루 종일 일하면서 받는 월급이 $70 정도라고 했는데 그 마저도 서로 하겠다고 난리라고 들었거든. 강도들의 표적이 될까 봐 간판도 없었던 덕에 새로 오는 손님들은 숙소를 코앞에 두고 한참을 찾아 헤매곤 했어. 밤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마사이족 전사가 창과 방패를 들고 와서 대문 앞을 지키기도 했는데 내가 “야, 강도들은 총 들고 다니는데? 총 앞에서 저게 무슨 소용이야?"라고 물으면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왔어. 아아 TIA, 해학인지 체념인지, 그래 이게 아프리카인가? 하도 TIA TIA 하다 보니 나도 언제부턴가 웬만한 일은 마법의 주문처럼 ‘TIA!’하고 넘기기 시작했어. (뭐 적어도 마사이족 전사는 멋있긴 했어.)
그런데 아루샤에 온 지 1주일째, TIA라고만 하기에는 많이 웃픈 날이었어.
잠비아와 마찬가지로 아루샤에는 대중교통이 거의 전무했어. 그나마 ‘달라달라’라고, 공중에서 분해될 것처럼 낡은 고물 승합차를 버스처럼 만든 게 있었는데, 버스정류장이나 노선이 따로 없이 대충 버스정류소라고 ‘예상되는’ 지점에 오면 차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휘파람을 불거나 차를 두드렸고, 승객들은 행선지를 말하고 올라타는 시스템이었어. 처음에는 길도 헷갈리고 세 명이 타는 자리에 5-6명이 꽁겨 타는 게 숨 막혀도 나름 재밌다고 좋아했는데… 그 날따라 내 옆자리 아저씨가 심하게 꼼지락대더라고.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있다가 갑자기 왼쪽 옆구리가 허전해서 보니 크로스로 매고 있던 작은 가방이 사라져 있었어.
불과 2-3분 전만 해도 있던 가방이 사라졌으니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확신이 들어 ‘요놈!’ 하고 뒷덜미를 덥석 잡아버렸어. 그랬더니 내 가방이 앞으로 떨어졌고, 순간 앞에 앉아 그 가방을 건네받으려던 것으로 보이는 앞자리 소년이 우다다다! 하고 차 밖으로 도망가기 시작했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 놈을 잡아야겠다 싶었던 난 가방을 주워 든 뒤 ‘야 이눔아!’ 하고 쫓아가 뒷덜미를 낚아챘고, 마침 경찰이 우리 쪽으로 오길래 사정을 설명하고 넘겼어. 그런데 경찰은 그놈과 몇 마디 나누더니 풀어줬고, 녀석은 뒤도 안 돌아보고 냉큼 도망쳤어. 눈치를 보아하니 경찰도 한패였던 것 같아. 사실 17-18 정도의 어린애라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혼구녕을 내달라고 넘긴 건데 어이가 없어 "으아니! 무슨 경찰이 이래?!” 라며 폴짝폴짝 뛰었지만, 그는 오히려 약 올리듯이 내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코를 후비며 내가 광광 거리는 걸 재밌다는 듯 보고 있었고, 싸한 느낌에 정신이 들고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우릴 빙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었어.
순간 아차! 싶었어. 벤슨이 ‘아프리카에서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거든.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 어떻게 폭동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외국인들은 무조건 가장 먼저 표적이 된다는 이유였어. 그런데 내가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었으니 큰일 났다 싶어 급하게 입을 다물었지. 다행히 사람들은 그냥 재밌어하는 것 같아 “헤헤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하고는 슬금슬금 빠져나왔고, 그제야 내 옆에 있던 남자가 칼을 갖고 가방을 끊었다는 걸 깨닫고는 간담이 서늘해졌어.
아아 여러모로 염라대왕이랑 하이파이브 할 뻔한 날이었구나... 시내에서 숙소는 멀었지만 다시 달라달라를 타고 싶지 않아 땡볕 속에 터덜터덜 걸어서 숙소로 돌아갔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일행이 이야기를 하자 숙소 손님들은 소매치기에 얽힌 저마다의 무용담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내가 아무 말 없이 구석에 앉아있자 벤슨은 자기가 대신 미안한 듯 옆으로 와 앉아 말없이 내 눈치를 보고 있었어. 이에 일행이 ‘벤슨 어머니가 드레드락을 할 줄 안다는데 그거라도 하고 있으면 좀 기분이 풀리지 않겠냐’고 말을 걸었어. 웃기게도 그렇게 가라앉은 순간에도 이 죽일놈의 호기심은 어쩔 수 없는지 '그래, 그건 좀 해보고 싶네' 하고 귀가 쫑긋해져서는 “머리하는데 얼마나 걸려요?”라고 물었어. 그녀는 영어를 못 했지만 옆에 있던 일을 돕는 친구가 뭐라 뭐라 하자 벤슨의 어머니는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렸어. ‘오, 두 시간이라는 건가? 그 정도면 괜찮겠네’ 싶어 머리를 하기로 했고, 벤슨의 어머니는 빠른 손놀림으로 실을 덧대 머리를 땋기 시작했어.
그런데 두 시간이 지나고 네 시간이 지나도록 머리는 반도 안되었어. “두 시간 걸리는 거 맞아요?” 아무리 물어도 벤슨의 어머니는 계속 V만 그려 보여줄 뿐이었어. 이윽이 해가 지고 다른 손님들은 밥을 먹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저 바나나나 뜯으며 사자 갈기처럼 변하는 머리가 빨리 끝나기만 바라고 있었어. 그런데 저녁식사가 끝나고, 옆 방 친구들이 다가와 노래방에 가자고 하는 거야.
“우리 내일 체크아웃하는데 송별회 하러 시내에 가자.”
“아니 난 지금 머리도 이 모양이고, 그냥 여기 있을게…”
“다 같이 가라오케에 잠깐 가는 거야. 금방 다녀올 거야.”
그 말에 방에 들어가는 한국식 노래방을 떠올리고는 ‘마지막 날이라는데 성의만 보이자’ 하고 따라갔더니 도착한 곳은 엄청나게 큰 술집이었어. 아프리카에서 말하는 가라오케는 드넓은 술집의 무대에 있는 노래방 기계였던 거야!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반만 삭발한 사자 같은 내 머리는 유난히 튀었고, 같이 온 일행들은 노래방 기계로 달려가버려 나는 입구에 덩그러니 혼자가 되었어. 그러자 ‘아니 이 신기한 머리를 한 아시아 애는 뭐야?’ 하는 눈으로 이 사람 저 사람 다가와 말을 걸거나 머리를 만져보기 시작했어. 별의별 사람이 다 왔는데 나중에는 꼭 밥 말 리처럼 치렁치렁한 레게머리를 한 라스타파리 운동 (자메이카의 신흥 종교, 신자들은 드레드록을 한다) 탄자니아 지부 부회장이라는 사람까지 와서 ‘이야~ 니 머리 마음에 든다! 너 우리 모임에 들어올래?’ 라며 떠들어댔어. 평소 같으면 ‘와하하하’ 하고 같이 재밌어했을 텐데 아침에 그런 일이 있었던지라 그저 숙소에 돌아가고 싶어 속으로 부글부글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러던 와중에 한 남자가 뜬금없이 “헤이! 나랑 사귈래?” 하고 거는 말에 ‘아니 이 자식은 날 언제 봤다고?’ 하고 짜증이 폭발해버렸어.

”아 쫌! 나 좀 내버려 둬!”
“하! 아프리카 사람이라 미안하네!”
외국인과 결혼 해 아프리카를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뭐 그 사람이 그런 의도로 여기저기 떠보고 다니는 사람이었는지 뭔진 모르겠고 나도 그것 때문에 화를 낸 건 아니지만 그동안 쌓인 화의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어버렸고, 나는 갑자기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어. 아아 이놈의 아프리카, 운수 좋은 날도 아니고, 이거 참 거지 같은 날이네…
그런데 어쩌리, 내 선택으로 왔고, 이 머리도, 바에 온 것도 결국 내 선택인걸… 더 이상 화를 내봤자 바뀌는 건 없다는 생각에 나는 그냥 ‘그래, 오늘은 내 멘탈이 강해지라고 다들 훈련시켜주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기로 했고, 그 뒤로는 누가 와서 말을 걸든 그저 웃으면서 이야기를 듣기로 했어.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TIA! 디스 이즈 아프리카! 라는 말은 더 이상 쓰지 말자고 생각했어. TIA로 뭐든 얼렁뚱땅 넘기려고 하지 말라고 이 거지 발싸개 같은 놈들아! 그거 스스로를 비하하는 거라고!

하고 앞에서는 말 못하고 속으로 웃으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
아 하지만 이것 때문에 힘들었다는 건 아니야. 이런 일들은 피식 웃으면서 사람들한테 재미있게 들려줄 수 있는 에피소드라도 되지, 아프리카에서 만난 전반적인 일들은 마냥 TIA 하고 웃어 넘기기 힘든게 더 많았거든. 이 다음에 나올 이야기들 같은거 말이야.
p.s.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리냐'는 물음에 벤슨 어머니가 그린 V자는 아직도 무슨 뜻으로 그런 건지 미스테리로 남아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