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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숲 Apr 27. 2022

나를 위한, 오늘을 살기 위한 글쓰기

꾸준히 쌓이는 기록은 무엇이든 콘텐츠가 된다.


예전에 #밥블로그 라는게 화제가 된 적이 있는 거 아시는지? 어떤 사람이 자신이 먹는 하루 세끼 식사 사진을 찍어 매일 블로그에 올린 것이었다. 평범한 식사에 평범한 사진, 게다가 글도 없다. 오로지 밥 사진뿐이다. 처음엔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지만 블로그 주인은 3년인가 사진을 꾸준히 올렸고, 어느 날부턴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하며 알려졌다. 평범한 블로그였지만 그 꾸준함에 사람들이 반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피베리 같은 경우였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일본 시골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블로그에 꾸준하게 올린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다.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아케미 아주머니의 요리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블로그에 쓰는 것 외에는 이 이야기를 올린 곳이 없었다. 어떻게 알고 연락을 주셨나고 편집자 분께 물으니 '우연히 블로그를 발견한 뒤 쭉 보고 있었어요.'라고 답을 주셨다. 비록 책의 제작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꾸준함의 힘을 알게 된 경험이었다.



오늘 새벽, 밤새 자고 있는 사이 호찌민에서 사진이 날아왔다.

호찌민에서 괴불 노리개 워크숍을 열어 준 베트남 친구 슈가 호찌민 우체국 앞에서 찍어 준 책 인증 사진이었다. 어제 쓴 글의 주인공 사키처럼 괴불 노리개를 처음 만들 때 쌈짓돈을 보태 준 슈는 호찌민에서 괴불 노리개 워크숍을 만들어 준 친구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담은 책을 보냈더니 이렇게 사진을 보내준 것이었다. 오늘은 이 사진을 바로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상에 앉자마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그날의 일을 바로 쓰는 건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다.



작년 이맘때쯤, #뉴북프로젝트 공모전에 이 책의 원고를 투고하기 위해 글을 쓸 때였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그걸 모아서 투고하기 위해 블로그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쓰면서 계속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할 건 많은데 그동안 안 쓰고 밀린 것들이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막막했다. 게다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져 사진을 보지 않으면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많았다. 사진을 봐도 이런데,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은 더 많을 것이다. 블로그를, 아니 일기라도 썼어야 해...



이 블로그를 만든 건 상당히 오래전이었다. 하지만 며칠 쓰다가 곧 그만두곤 했다.

치앙마이에서 조금씩 쓸걸. 아프리카에 갔을 때에도 쓸걸.
시간이 없는 게 아니었는데, 밤에 자기 전에 조금이라도 쓸걸 하고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핑계를 대면서 블로그를 안 썼다.

에이, 내 이야기에 누가 관심을 갖겠어?
하지만 남이 아닌 나를 위해 썼어야 했다.

이미 늦었으니까 됐어.
늦었다고 생각을 하는 시간에 그냥 썼어야 했다.


이번에도 글을 다시 쓰자고 하고는 며칠간 계획을 짰다.
월요일은 인도, 수요일은 아프리카, 금요일은 치앙마이,
이런 식으로 특정 지역에 갔을 때의 이야기를 쓸까?
아니면 인도 여행 첫 시작부터 쭈욱 쓸까?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인도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헷갈리기 시작했다.

10년 전 이야기부터 쭉 쓰기 시작하면, 오늘의 이야기는 언제 쓰지?

그러다가 작년에 블로그에 쓰다가 말고 저장해둔 임시저장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쿠야, 이 글들은 또 어떡하나?

이렇게 또 생각만 하다가 안 쓰고 포기하는 거 아닌가 하고 스트레스가 올라올 때,

책을 쓰는 동안 매일 글쓰기를 도와주신 재선 선생님이 어제 해주신 말이 떠올랐다.


오늘을 사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리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이어져 있다는 걸 잊지 말고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고
그저 정말 가고 싶은 길이
어딘지 잘 생각해 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덕분에 일단 틀이나 계획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써보기로 했다.

임시저장해둔 글도 하나씩 꺼내보며 기분에 맞게 다시 써보고,

그날그날의 일들을 쓰며 예전의 경험을 떠올리기도 하기로.



우선은 내가 좋은 글, 내가 편해서 술술 써지는 글,
더 이상은 '진작 쓸걸'이라고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누가보든 안보든 상관없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위한 글을 쓰기로.

덕분에 지금 나는 온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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