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그렇게 잡은 건 아닌데, 리스본 숙소는 결과적으로 위치 때문에 최고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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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났다. 포르투에 도우루 강이 있다면 리스본에는 테주강이 있지. 숙소에서 1분 거리다 무려. 주섬주섬 산책 나갈 준비를 하고 나가면.
하, 바로 이렇게 테주 강이 보인다. 코메르시우 광장이 보인다. 돔 주제 1세 청동 기마상이 보인다. 늠름한 개선문 사이로 한눈에 풍경이 들어온다. 으아, 리스본이다. 아직 해도 뜨기 전, 어둑 어둑한 새벽빛 하늘을 감상하며 광장으로 나갔다.
가까워질수록 설레는 기분이다. 이게 바로 숙소 앞에 있으니 환상.
개선문 아래로 들어서면 회랑이 길게 펼쳐진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지붕이 있는 긴 복도, 무려 3층 높이다. 규모가 꽤 웅장하다. 회랑을 지나면 바로, 그 유명한 코메르시우 광장이 나온다.
하. 길 건너 광장이 있다. 개선문만 통과하면 바로 탁 트인 광장이다. 시야가 갑자기 넓어진다.
두근두근두근. 시간이 시간인지라 사람 머리털도 안 보이는, 광장을 가로질러 늠름한 청동 기마상으로 다가간다.
이제 리스본에서 가장 큰 광장인 코메르시우 광장에 이르렀다. 옛 이름은 테헤이루 두 파수(왕궁 뜰)이며 여전히 그렇게들 부른다. 영국인들은 흑마 광장이라고 부르는 이 광장은 세계 최대의 광장 중 하나다. 드넓은 정사각형의 광장을 둘러싼 삼면에는 모두 아치형 석조물을 두른 똑같은 형태의 건물이 늘어서 있다. 우편 전신국, 관세청, 법무장관실, 출입국관리소, 행정법원, 적십자사 중앙본부 등 주와 관공서는 모두 여기에 자리 잡고 있다. 남쪽을 바라보는 광장의 마지막 남은 면은 테주 강을 향해 열려 있는데, 이 유역은 폭이 아주 넓고 지나다니는 배가 많다.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말을 탄 주제 2세의 청동상은 눈이 부시게 장엄하다. 조아킹 마샤두 드 카스트루가 포르투갈에서 1774년 제작했다. 높이는 14미터며 기단부는 1755년 대지진 후 리스본 재건을 형상화한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이 광장은 제일 까다로운 종류의 이방인에게도 상당히 좋은 인상을 주는 그런 곳이다.
_36p, 페르난두 페소아 《페소아의 리스본(Lisbon: What the Tourist Should see)》
페소아가 서술하는 코메르시우 광장을 미리 읽은 뒤였다. 자부심이 느껴지는 서술이었다. 실제로 외부에서 끊임없이 배가 들어오는 부두가 존재했으며, 근처에는 기차의 임시 역도 존재했다고 하니, 외국인들이 포르투갈에 도착해서 처음 만나는 곳이 바로 이곳, 코메르시우 광장과 개선문이었을 것이다. 거기서 이어지는 각종 화려한 거리들. 아마도 이곳은 포르투갈 사람들의, 페소아의 자부심이었으리라.
하늘에는 아직 초승달이 꽤 선명하게 떠있다.
뒤를 돌아 내가 걸어온 길을 봤다. 나는 아우구스타 거리로부터 개선문을 통과해서 광장에 도착, 테주강으로 향하니 그 옛날의 외국인들과는 반대로 걷고 있다. 이 광장이 의도한 방향이 보이는가. 코메르시우 광장은 아마도 테주강을 통해 포르투갈에 발을 디딘 사람들을 위한 시선으로 만들어져있다. 개선문의 조각, 그리고 청동 기마상이 이제야 앞모습을 보여준다.
너무 예쁜 하늘, 세상의 고운 빛깔을 다 모아 조화롭게 연결해두었다. 그 아래로는 강이라기엔 참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테주강. 그리고 형광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조깅을 하는 시민 1.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테주강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갔다. 아. 좋다.
물이 바람에 밀려왔다가, 밀려간다. 얕은 물결을 만들어 내며 흐르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바다가 아니라 강이다. 길이가 1000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하니 한강의 두 배가 넘는다.
강 주변에 갈매기도 많아서, 한결 더 바다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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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에서 보이는 4월 25일 다리. 완공되었을 당시에는 독재자의 이름을 따서 살라자교라고 이름 붙였으나,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 혁명을 기념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뭘 할 수가 있겠어. 이런 하늘, 이런 풍경 앞에서. 넋을 놓고 감상.
강변에는 리스본의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떼지어 있었다. 이 시간에 부지런히 나온 새 나라의 어린이들은 아닐 테고, 아마도 어젯밤 안 들어간 거겠지.
서서히, 동쪽에서 해가 떠오른다. 아 좋다, 눈부시게 환한 해가 뜬다. 사랑스러운 풍경. 해가 뜰 때쯤 되니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강렬한 태양의 빛에 바로 하늘의 색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빛을 받는 개선문.
실컷 구경 했으니, 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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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바로 근처에 트램 정류장이 있었다. 그 유명한 28번 트램 정류장. 위치 정말 최고다. 숙소로 바로 들어가려다가 눈앞에 트램이 서길래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잡아 타버렸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트램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멋진 풍경이 보여서 바로 내렸다. 무제한 승차권을 가지고 있는 자의 여유. 내리고 보니 이곳이 산타루치아 전망대(Largo de Santa Luzia)였다. 하, 하늘 봐. 날이 너무 좋았다 정말 정말.
트램이 다니는 길, 하늘에도 도로에도 트램 길 표시가 있다.
리스본의 쓰레기통, 이제 말하기도 입 아프다. 어쩜 쓰레기통도 이렇게.
부지런한 청소부분들께서 이미 전망대 청소를 마치신 듯, 쓰레기통 주변에는 술병이 가득이다. 포르투가 온통 'SUPER BOCK'뿐이었는데, 리스본에 오니까 'SAGRES'가 있다. 크.
트램이 오르막을 올라온 터라 테주강이 저 아래에 있었다. 전망대인 줄도 모르고 갔지만, 부감법(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보는 세상은 아름다운 법이니 자연스럽게 풍경을 감상했다.
여기도 주황 지붕이 가득이다. 포르투와는 또 다른 느낌.
해 뜬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날이 금방 더워졌다. 빛이 쨍하고, 습기가 없는 날씨다. 아침에 이런 날씨면 한낮에는 꽤 더울 것 같았다. 조금 더 올라가 볼까, 아직 들어가기 싫어서 조금 더 트램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아침이라 트램에는 손님 몇 명. 창문을 열고 덜컹거리며 달리는 트램 소리에 흠뻑 취해서 종점까지 내리지 않고 달렸다. 종점에 도착한 트램은 10분쯤 쉬었다가 다시 내려간다고 했다.
운행을 마친 28번 트램.
28번 트램 종점이 있는 광장에서는, 하...
중국인들이 아침 체조를 하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태극권. 리스본에 와서까지 광장을 차지하고 체조에 여념이 없었다. 외국인들 사이에 서서 트램 줄을 기다리고 있는데, 체조에 대해서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말을 한다. 알아들을 수 없으나 같은 중국인으로 보일듯한 나에게, 외국인들의 시선이 와서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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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트램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바로 들어갈 작정이었는데, 이번에도 참지 못하고 내렸다. 너무 예쁜 동네였다.
도로의 낙서가 너무 귀엽다. 낙서 옆에 쓰인 글자를 찾아봤는데, 'RUFIA' 별 의미 없는 감탄사인가 보다. 오! 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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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림이었다. 이 건물을 보고, 내렸다. 가까이 가서 보고 싶어서. 1일 무제한 교통권을 매일 엄청 활용했다. 타고 내리고 타고 내리고.
파란 하늘에 아파트 벽에 그려진 그림이 너무나 강렬하다.
총구의 끝에 꽃이 꽂혀 있다. 총을 든 소년의 표정이 자못 비장하다. 아름다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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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 벽화 마을쯤 되는 듯, 내려서 걷다 보니 그림이 마을 곳곳에 있었다.
공사 중인 건물, 그림 쪽에는 천막을 쳐놓지 않았다.
퀄리티 크.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에는 강렬한 원색의 그림
오오,
이 건물 뭐지. 어린 왕자도 있고, 백설 공주도 있고, 빨간 모자의 소녀도 있고, 인어 공주도 있고. 저기 시계 들고 있는 공주님은 누구지. 꺄하하.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급기야 셀카를 찍는데 이르렀다. 잠옷에 로브 걸치고 나간 슬슬 나갔던 산책길이 이렇게 길어질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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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만 예쁠 리가, 트램이 오기 전까지 동네의 예쁜 구석을 찾아봅니다.
이건 뭐다, 들어가지 말라고 닫아 놓은 철문의 기하학적 무늬. 철문에까지 놓치지 않는 예술혼.
파스텔톤의 건물. 핑크, 연 하늘, 미색. 너무 예쁜 세 가지 컬러와 발코니의 진녹색 쇠틀(?). 집집마다 베란다에 내놓은 쪼르륵 화분들이 너무 귀엽다.
건물이 따닥 따닥 틈 없이 붙어 있다. 건물 외벽이 각기 다르다. 강렬한 레드 컬러, 타일 벽, 연한 노랑. 어쩜 이렇게 다양하고 과감할까.
심지어 외벽이 층마다 다르기도 하다. 재밌다 정말,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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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을 기다리는데, 눈앞에 아침 장을 봐서 들어가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낙서로 지저분한 길을 걸어 집으로 가신다.
그러고 보니, 아침 트램에는 장바구니를 든 노인들이 좀 있었다. 아침부터 장을 보는 건 우리에겐 낯선 풍경이지만 유럽에는 흔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잘 모르니까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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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트램을 타고, 이번엔 숙소 앞까지 바로 왔다. 트램이 내린 곳에 우리나라로 치면 문방구 같은 곳이 있길래 들어갔다. 되게 작고 조그만 가게였다.
2018년 다이어리가 이미 나와 있길래 구경하고, 하드커버에 꽤 괜찮은 다이어리가 엄청 싸서 하나 구매했다. 나름 예쁘다.
포장지도 구경하고. 터지는 감각을 소유한 포르투갈의 패턴 포장지를 기대했건만, 역시 문방구에서 파는 포장지는 다 거기서 거기인 거부다. 크크.
아줄레쥬 문양의 다이어리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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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10시만 되어도 트램 안은 사람으로 꽉 찼다.
사람으로 꽉 찬 트램은 소매치기의 온상이라던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트램은 주로 이른 아침 사람이 없을 때 타고 다녀서, 소매치기 코빼기도 못 봤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아이스크림 집 간판. Happiness is an ice cream. 참으로 사랑스러운 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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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에 드디어 도착했다.
예쁜 호스텔 로비
간단히 조식을 먹고
방으로 올라와 빈둥댔다. 새벽부터 예상에 없던 긴 산책 덕에 좀 쉬었다 나가야 할 것 같아서 커피를 한잔 가지고 올라왔다.
호스텔에 드립 커피 무료. 잘 이용했다. 리스본에서 함께 할 책은 《페소아의 리스본》
여행 출발 보름 전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과 함께 리스본에 왔다. 리스본에서 태어나 5살에 리스본을 떠났다가 17살에 다시 돌아온 뒤로, 줄을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은 페소아. 리스본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페소아의 리스본 이야기는 페소아가 죽은 뒤에야 발견되었다.
"보통의 영국인, 그뿐만 아니라 (스페인 사람을 제외하면) 어느 나라 사람이건 포르투갈을 유럽 어딘가에 있는 작은 나라로, 심지어는 스페인의 한 지방인 줄로만 안다"
_12p, 《페소아의 리스본(Lisbon: What the Tourist Should see)》중 옮긴이의 후기
궤짝 속에 가지런히 묶여 있던 이 책의 원고와 함께 발견된 동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외국인들이 포르투갈에 대해 잘 모른 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고, 스스로 이런 책을 적어 내려갔던 것이다.
페소아에게 리스본은 그저 한 도시가 아니라 포르투갈이라는 한 나라가 응축된 장소였다. (...) 이 짧은 리스본 가이드에는 리스본에 대한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과 "관광객이 꼭 보아야 할 것들"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뒤섞여 있다.
_14-15p, 《페소아의 리스본(Lisbon: What the Tourist Should see)》중 옮긴이의 후기
좀처럼 페소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내가 리스본에 있는 한.
그게 참 신기하고 묘했다.
나갈 준비를 마쳤다.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어디고 오르막길이다. 가장 편한 신발을 꺼내 신고, 가방에《페소아의 리스본》을 챙겼다. 좀처럼 차분해질 수 없는 리스본의 새로운 하루를 기대하며 다시 방을 나선다.
반드시 편한 신발을 신을 것. 모자와 500밀리리터 이상의 물병을 가지고 다닐 것. 그리고 이 가이드북을 잊지 말 것. 나머지는 각자의 몫이다.
_23p, 《페소아의 리스본》중 옮긴이의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