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도시의 산뜻함 : 리스본, 안녕

리스본의 아름다움

by 노니

3시간쯤 버스로 달려서 리스본에 도착했다. 리스본이다. 그래 리스본. <리스본행 야간열차> 그 리스본 이라고. 여행 전, 춘천의 섬 원스 페이지, 깜깜한 2층 방에서 핸드폰 화면으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면서도 너무 설렜다. 영화 속 리스본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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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곧장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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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지하철 어쩐 일이람. 이제 말하기도 입 아프지만 지하철역 안이 전시장이다 또. 아련하고 감수성 터지는 이런 멋진 그림들이 가득.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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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노선도도 참 예쁘지 뭐야. 우리나라의 1호선, 2호선 개념이 여기서는 컬러로. 블루라인, 옐로 라인, 그린 라인, 레드 라인이다.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저기 저 꽃 그림, 갈매기 그림, 요트 그림도 예쁘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한국 와서 우리나라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 기함할 듯. 대중교통 경력 30년의 나도 가끔,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 어질 어질 하니까.

여행 중간의 이동은 피곤하긴 하지만, 확실히 긴장은 덜 되는 것 같다. 처음 비행기에서 내려서 포르투 숙소를 찾을 때와 달리 넘치는 여유를 가지고 이동했다. 캐리어가 너무 무거워서 힘들 수도 있었는데 에스컬레이터가 끝나는 지점에서 선뜻 캐리어를 들어준 훈남 덕분에 무사히 지상으로 올라왔다. 내가 내린 역은 바이샤 시아두(Baixa-Chiado). 얼마 전 비긴 어게인 2에서 박정현이 '꿈에'를 열창했던 곳이다. 포르투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으나 일단은 숙소를 찾는 게 급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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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숙소는 리스본에서 가장 번화한 아우구스타 거리에 위치한 호스텔 <Travellers House>였다. 너무 중심 거리에 있어서 1도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었다. 1인실로 예약해서 하루 40유로. 공용 욕실을 썼지만, 방 바로 옆에 있었고 1인실만 있는 층이라서 전혀 붐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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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은 깔끔 그 자체. 1인 침대. 침대 머리맡에 충전할 수 있는 공간과 전등이 있어서 책 읽다 잠들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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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과 의자가 전부다. 아, 전신 거울이 벽에 붙어 있고. 깔끔. 조용하고, 깨끗하고 혼자 사용하기엔 넓은 편이었다. 에어컨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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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창문 두 개. 바로 맞은편에도 호스텔이 있어서 창문 열고 말하면 의사소통이 될 지경. 그래도 늘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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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에 있는 직원이 매우 친절하다. 엘리베이터는 없지만 캐리어를 4층까지 들어다 주었고 오며 가며 마주칠 때마다 영업용 미소를 마구 발사해주었다. 내가 묵을 당시에는 호스텔에서 한국 사람을 마주치지 못했는데, 직원 말로는 한국 사람들도 꽤 온다고. '지난주 한국인 있었어.' 아쉬웠다. 트레블러스 하우스에는 각종 투어가 많은 편인데, 추가 요금을 내고 신청하면 각종 투어에 참여할 수 있다. 혼자 다니니까 야경 볼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나이트 투어 신청해야지 마음먹고 있었는데 오늘 피곤하니 내일 갈까, 하고 미루다 보니 결국 끝까지 못 가봤다. 이것도 조금 아쉽.

짐을 풀고, 씻고, 쉬고, 저녁 먹으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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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삐거덕 거리는 빙글빙글 계단을 통해 올라온다. 옛날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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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에, 오면서 찜해뒀던 곳에 들렀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2백8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버트란드 서점'이다. 놀랍다. 1755년 리스본 대 지진 때 파괴된 이후 시아두 현재 위치로 옮겨와서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서점이다. 이제는 체인점이 50여 군데쯤 있다고 하니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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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서점은 그렇게 오래된 곳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숙소에서 서점으로 오는 10여 분 동안에도 몇 군데나 서점을 발견했다. 이곳에 '가장 오래된'이라는 타이틀이 붙지 않았다면 정말로 특별할 것도 없는 서점이다. 대형 서점일 뿐 아니라, 역사적인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어디 하나 과한 느낌 없이 소박하고 평범했다. 차분하고, 붐비지 않았다.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혀 붐비지 않았다. 포르투의 렐루 서점 같은 분위기는 1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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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페소아의 천국이다. 포르투갈을, 리스본을 얘기하자면 페르난두 페소아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사실 나도 잘 몰랐지만. 우리에게 알려진 작품으로는 <불안의 책>을 쓴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 생전 70개 이상의 이름을 사용한, 자신의 존재를 해체시켜 단일한 '나'가 아니라 복수적인 존재를 추구한 결코 범상치 않은, 포르투갈의 국민 작가. 이곳은 페소아 천국이었다. 어디서고 흔히 그의 시그니처 페도라, 동그란 안경, 콧수염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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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여행 전, 무려 587페이지에 달하는 <불안의 책>을 선물 받았다. 크. 꼭 마지막 장까지 읽고 가겠노라고 다짐 다짐했지만, 웬걸 70페이지를 겨우 읽고 출발, 다녀온 뒤로는 펴보지도 못했다. 이번 기회로 다시 들춰보면서 다시 한번 완독을 다짐해봅니다. 멋진 책이었으나 진도가 빠르게 나가는 책은 아니었기에. 밑줄 그은 문장들을 옮겨본다.

12
누군가의 고백이 가치 있거나 쓸모가 있을까?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만 일어나는가, 아니면 모두에게 일어나는가.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라면 전혀 새로울 게 없고 오직 우리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면 다른 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텐데. 내가 느끼는 것을 글로 쓰는 이유는 느낌의 열기를 가라앉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고백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23
삶에 동의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부조리야말로 신성한 것이다.

26
각각의 감정에 하나의 개성을, 각각의 영혼 상태에 하나의 영혼을 부여하기.

37
한구석에 던져진 물건 같고, 길에 떨어진 넝마 쪽 같은 천덕스러운 존재인 내가 삶 앞에서 그렇지 않은 척한다.

38
모든 사람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그들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은 모든 불가능한 것들 중에서 가장 불가능하게 여겨지므로 날마다 열망하는 것이고, 슬픈 순간마다 체념하는 것이다.

46
"나의 크기는 내가 보는 것들의 크기이지
내 키의 크기가 아니라네."
그 문장을 읽은 후, 좁은 거리 위로 난 내 방 창문으로 가서 광대한 하늘과 무수한 별들을 올려다본다. 온몸을 흔드는 찬란한 날갯짓과 함께 나는 자유롭다. (...) 정신의 소유란 얼마나 광대한가. 심오한 감정의 우물에서부터 우물에 비친,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우물 안에 있는 저 높은 별들에까지 이어진다.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로 채워진 두꺼운 책을 꾸역꾸역 읽었다. 무슨 얘긴지 모르겠는데 알겠고, 어려운 것 같은데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책 안에 가득해서 좀처럼 빠르게 읽어내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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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위대한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 상상력의 천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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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가 넓지 않은 대신, 이렇게 길게 이어져 있다. 자연스럽게 공간이 나누어져서, 다른 장르의 책을 진열해 놓았다. 끝까지 걸어가면 카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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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벽면에는 어김없이 페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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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의자가 인상적인 카페, 서점의 가장 안쪽 작은 공간에 있는 카페는 꽤 아기자기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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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으러 가던 참이었지만, 카페를 발견했으면 커피를 마시는 게 예의니까(?). 카푸치노를 시키고, 에코백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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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과 레드, 감각적이다. 포르투갈은 낡았을지언정 촌스러운 구석이 없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카페 종업원이 또 그르케 미남. 포르투갈은 미녀보다는 미남이 많은 것 같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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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여기서 테주강이 지척에 있는 터라, 골목 끝에서 얼핏 얼핏 강이 보인다. 리스본도 하늘이 참 좋다. 기온은 확실히 리스본이 더 높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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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문 동안 내내, 햇빛이 굉장히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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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집을 찾아가는 거리거리 또 눈이 뒤집힌다. 문고리 왜 이렇게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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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아저씨. 동상 아니고 진짜 사람이다. 신기하게도 공중에 떠 계신다. 저 지팡이에 의지해서. 뭘까. 대체 저 마술의 비밀은. 아저씨를 지나쳐 계속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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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거리를 걷고 있기도 했지만, 포르투에 비해서 훨씬 사람이 많고 번화하고 북적거린다. 여행 온 듯, 캐리어를 끄는 사람도 계속 연이어 보인다. 나는, 마치 시골에서 서울에 갓 올라온 사람 마냥 정신이 없고 적응이 안 되어 두리번두리번하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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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그머니 좁은 골목으로 빠졌다. 말로만 들었던, 오르막. 가파른 오르막이든, 평탄한 오르막이든 숙소가 있는 아우구스타 거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오르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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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벽에 붙은 고양이 찾는 벽보도 예뻐. 여행자 콩깍지가 단단히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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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고개를 확 들었는데, 빨래집게가 너무 예쁜 거다. 어쩜 저기에도 사랑스러움이 묻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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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조명이 퐁퐁, 좁은 골목 탓에 마주 보는 건물 사이에 서로 뭔가를 연결해서 장식하는 곳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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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 상점. 크. 예술로 승화된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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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 가게. 힙 터짐. 컬러 조합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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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틀의 멋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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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연주하며 식사하는 곳인가 봐. 벽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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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 벽에 바짝 붙은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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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이게 뭐라고 이렇게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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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분한 낙서와 벽보, 내 눈에는 예쁘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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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도 모를 골목, 시크함이 여기까지 전해져 오는 쿨 내 나는 커플, 혹 친구, 아니면 동료일지도. 여튼 편안한 분위기가 좋아서 몰카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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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 소란한 소리가 나기에 가봤더니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함께 있고, 나에게 이런 종이를 건네준다. 조금 지켜보니, 골목 곳곳을 다니면서, 배우들이 연극을 한다. 오 특이하다. 나는 밥을 먹어야 하기 대문에 조금 보다가 대열에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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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뭔가 보여 냉큼 달려왔더니, 푸니쿨라가 도착했다. 우연히 푸니쿨라 정류장에 도착한 것. 꺅. 지하철을 타면서 끊은 정액권 덕분에 자유롭게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어서 고민 없이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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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나서 더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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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낙서가 되어 있는 푸니쿨라. 트램과 비슷하게 생겼지만(똑같나?) 트램은 여기저기 도로를 통해 여러 코스를 다니는데, 푸니쿨라는 오르막길을 같은 코스로 오르락내리락하기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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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니쿨라 운전석. 앞 유리로 내려다보이는 풍경 로맨틱. 핫. 덜컹덜컹 푸니쿨라가 움직이면 사람들이 도로에서 비켜서서 양쪽 벽으로 붙어 선다. 서로가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촬영을 하기도 한다. 푸니쿨라 안에 탄 사람들은 바깥 풍경과 사람들을 찍고,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은 푸니쿨라를 찍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는 풍경이 재밌었다. 맞은편에서 푸니쿨라가 오면 서로 악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붙어서 지나간다. 이걸 타고 있으니, 리스본에 온 게 더욱더욱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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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쉽게 내려와서 계속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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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필 낙서가 귀엽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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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카페도 예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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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세워진 차도 상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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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하는 극장 같은데, 극장 위에 붙은 그림이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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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골목길을 걸어도 포르투랑은 분위기가 확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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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가 보이시나요, 기본적으로 모두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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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크. 밥을 먹기 위해 계속 올라갑니다. 계단, 또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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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한 건물 색. 벽을 페인트로만 칠했다. 창문에 붙은 창살 하나, 겹치는 집이 없다. 이 기막힌 감각은 정말 어디서 연유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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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 타일 건물, 소화전까지 감각 있어. 보이시쥬, 이렇게 어디나 오르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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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페인트가 벗겨지고, 금이 갔지만 그래도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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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무너질 듯한 건물, 하나하나 뜯어보면 문, 창문 모양 다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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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조금 이른 시간에 왔더니 아직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Dona Quiteria> 3대째 운영하고 있다는 가게. 유랑에서 얻은 정보로 예약을 해둔 식당이다. 빨간 차양에 체크 테이블보라니, 너무 예쁘잖아.

1870년에 오픈했다는 거잖아 지금. 우와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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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의자와, 종이가 날아가지 말라고 집어 놓은 빨간 집게까지. 100년도 넘은 가게가 이렇게 산뜻할 일인지. 크. 눈에 띌 것도 없는, 주택가 동네 한쪽에 위치하고 있는 집이었는데 바깥 자리는 모두 예약 표시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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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도 구석구석 너무 산뜻하고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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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 맞은편 건물 최소 재건축 직전. 엄청 황량한 건물들 사이에 있었지만, 꿋꿋이 상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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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갔을 때는 안쪽에 한 테이블 정도밖에 손님이 없었지만 8시가 지나자 슬슬 손님들이 와서 곧 만석이 되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기분 좋게 부는 저녁, 앉은자리에서 내다보는 풍경이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리스본에 도착해서 먹는 첫 끼,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음식은 한참이 지나서야 나왔다. 서울이었으면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을 정도로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여행지라 그랬을까. 슬슬 어둠이 깔리는 바깥 풍경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개를 끌고 지나가는 동네 주민들을 보는 걸로 기분이 좋아서. 여러 가지 이유로 한 시간을 전혀 재촉하지도 않고 불쾌해지지도 않고 기다렸다. 아니, 서버가 아주 죄송한 얼굴을 거의 코앞까지 들이밀며 주방에 큰 문제가 있어서 식사가 많이 늦었다, 이제 곧 나오기 시작한다는 말을 듣기 전까진 내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사실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아는 영어 단어를 보고 시킨 메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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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맥주와 식전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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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카도, 문어. 익숙한 단어들이 들어간 음식을 아무렇게나 주문했다. 문어를 버무려 튀김옷을 입혀 눅눅히 튀긴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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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카도 속을 상큼하다 못해 시큼한 소스로 버무린 채소로 채운 요리였다. 뭐 맛있었다. 이 집에서 자랑하는 최고의 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맛있었다. 1시간을 기다렸으니 배가 고팠을 거다. 맛있게 싹싹 비웠다. 다음에 리스본에 간다면 또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카드 계산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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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오래 천천히 먹는 편이라, 늦게 나온 식사를 꼭꼭 씹어 다 먹고 나오니 밖은 완전 어두움이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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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낯선 길, 노란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이국적인 건물들은 분위기가 아주 그만이다. 많이 걷고 싶었지만 으슥한 골목들이라서 사실은 빠른 걸음으로 큰길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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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근처는 가장 번화한 곳이라 여전히 조명이 환했다. 맞은편에 있는 나타 집에서 손바닥만 한 나타를 팔기에 홀린 듯 들어가 사 왔다. <Cafeteria Sao Nicolau> 늦은 시간에도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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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엄청 큰 나타. 2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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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만에 책상이 있는 숙소에 오니 좋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앉아서 그동안의 지출을 정리하고 일기도 끄적거리며 썼다. 포르투갈에 다녀온 사람들이 하도 포르투, 포르투 하기에 나도 상대적으로 포르투에 대한 기대가 더 컸나 보다. 리스본은 포르투보다 더 계획이 없었다. 대강 내일 입을 옷만 골라 놓고 침대에 벌렁 누웠다.

그냥 3시간을 달려왔을 뿐인데 도시의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뭔가 산뜻함이 이 낡고 오래된 도시 곳곳에 스며 있다. 내 기분도 뭔가 다르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밖은 아직 초 저녁처럼 환하고, 기분 좋은 소란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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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물을 표현하는 것은 추한 부분은 빼버리고 미덕만을 보존하는 일이다. 들판의 푸름에 대한 묘사에서 들판은 실제보다 더욱 푸르다. 상상 속에서 묘사한 꽃의 색깔은 세포의 실제 생명력 이상의 영속성을 갖게 된다. <39p, 불안의 책 중>

이미 꽤 흘려버린 기억을 더듬어 기록하고 있다. 추한 부분을 빼버리고 미덕만을 보존해서 푸르게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행기를 쓰다가 오랜만에 다시 들춰본 페소아의 문장에, 혹 완전무결한 여행을 기록하려고 하고 있는건 아닌지 뜨끔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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