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 비 예보가 있어, 여행을 계획했다

by 노니


취업이 결정되고, 취업 전까지 2주의 시간이 주어졌다. 맙소사. 일단은 일상을 잘 추스르고 싶었다. 일상을 잘 추스르고 다음 스텝을 준비하자 결심.
(벌써 일을 시작한지 한 달 반이 지났다. 지금의 나라면 한 달 반 전, 은정이에게 말해주고 싶고나. 떠나. 떠나라구. 멀리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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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냥 집에만 있기는 아쉬워서 비오는 월요일, 서울 탈출을 감행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수요일까지 내리 비가 오기에 고민도 없이 부랴 부랴 숙소만 예약하고 나왔다. 비오는 날은 여행이 제격. 백팩을 들춰메고 걷지 않을거라 편한 신발도 필요 없다. 책은 다 사볼거라 책도 안 챙겼다.

이때의 마음, 정말로 정말로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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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월요일인데. 표가 없을 줄이야. 줄이야 줄이야. 새로고침을 눌러가며 다행히 자리를 찾았다. 서울서 속초가는 버스는 속초 시내 버스보다 자주 다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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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흐릿한 날씨에 마음이 설렌다. 내가 좋아하는 날씨, 라고 쓰려다 보니 나는 쨍하게 맑은 날도 좋아하는데. 그러고보면 비오는 날도 좋아하는데, 눈 오는 날은 어떻고. 한 여름, 더운 날씨만 빼면, 그냥 다 좋아하는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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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흘리며 자다가 홍천 휴게소에서 멈췄길래 부시시 눈을 비비며 내렸다. 이 경치를 보려고. 히야. 좋구만.






속초도 이제 낯선 곳은 아니다.

입실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먼저 짐을 맡기고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빗줄기가 꽤 세져서 그런지 뜨끈한 국물이 생각났다. 오는 길에 인스타그램으로 몇 군데 검색하다 알게된 속초 쌀국수 맛집. 숙소랑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걸어왔는데 하필(?) 딱 점심시간이었지 뭐야.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역시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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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자리를 안내받고 앉아 쌀국수와 짜조를 시켰다. 혼자지만 먹고 싶은 건 다 먹어야 하니까. 뜨끈한 쌀국수가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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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바삭한 짜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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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맛집 맞네요. 맛있었다. 비가와서 그런지, 여기가 속초에서 가장 핫한 집인건지. 사람이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가게가 딱 아담하기도 하고. 먹을만큼 먹고, 남은 짜조가 많아 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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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는 다듬던 숙주만 덩그러니. 장사가 잘 돼서, 어마어마하게 숙주를 다듬으셔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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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쭐래쭐래 다시 숙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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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체크인 하려면 시간이 좀 남아서 서점 겸, 카페 겸, 게스트 하우스에서 책을 읽고 있기로 했다. 신간을 샀다. 이때만 해도 황현산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이었는데... 커피를 주문하고,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들고 가장 구석 자리에 쳐 박혀 읽기 시작했다.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데, 키가 큰 사장님이 오셔서 체크인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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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아직도 비.

미리 맡겨 둔 짐을 올려다 주셔서, 편히 2층으로 올라왔다. 갑자기 예약 하느라, 머물고 싶었던 1인실은 진즉 마감되고, 딱 한자리 남은 6인실을 예약했다.




사실 이왕 취직 전 쉬러 가는거 마음에 드는 숙소에 가자 싶어져, 평소라면 생각도 안 했을 호화(?) 에어비앤비를 검색했다. 사람 참, 아직 월급을 받은 것도 아니면서 그만 마음이 호방해졌다. 최종 선정된 집에 청소비, 수수료까지 더하니 2박에 30만원이다. 결제를 버튼 하나 남겨 놓고 순간 마음이 평소모드로 소심해졌다. 숙소에 무슨 30만원. 그 돈으로 밥 한끼 더 맛있는걸 먹고 책 한 권 덜 고민하고 사는거지. 그리고나니 마음이 깔끔해졌다. 가고 싶었던 완벽한 날들, 6인실? 오케. 30만원 결제할 걸 6만원에 끝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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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올라와 1층에 편히 자리를 잡았다. 비오는 풍경 참 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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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실이지만 아직 든 사람이 없어, 이 사랑스런 풍경을 혼자 만끽했다.


여리디 여린 아침이여, 안녕. 오늘 넌 내 가슴에 무얼 해줄까?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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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6인실에는 2층 침대 3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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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 짐을 풀고, 겉옷을 걸어 커튼을 만든다. 6명이 한 방을 쓰지만, 독립된 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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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만끽하고 싶은 풍경이지만, 바깥도 구경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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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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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나가봤는데, 비를 피할 곳이 없어 다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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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공간에 구석 구석에,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있다. 사장님 최소 유유출판사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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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층으로 내려와 서점에 꽂혀 있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런걸 그래픽 노블이라고 하던가.


《자꾸 생각나》, 손아람 작가님.

나 오늘 안 들어갈 건데요. 들어가기 싫다구요, 오늘-
강렬한 첫 표지에 꺼내 읽었는데, 어마어마하게 몰입해서 읽었다. 남여 주인공 둘 다 마음에 안 드는 것들 투성이라. 왜 저래 진짜, 하면서 남의 연애사에 고나리 하고픈 마음이 책장 넘길 때마다 불끈 불끈. 나도 참 나지. 내내 아 뭐야, 짜증나 하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마지막 두 장 남겨놓고 여자 주인공이랑 같이 눈물 나오기 있음? 순간 여자 주인공 된 줄. 진짜 울 타이밍도 아니었는데 눈물이 쪼록 나왔다. 뭐야 뭐야. 흑.

아람 작가님 되게 몰입하게 만드시네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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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2시간. 내가 정한 기준인데, 2시간 이상 카페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쯤 더 있을 것 같다 싶을 때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한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더니, 마들렌을 서비스로 주셨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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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비구나. 그칠줄 모르고 추적 추적 비가 온다. 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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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꺼내서 깨작깨작 숙제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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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길을 느릿 느릿 걸어서 도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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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을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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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속초 여행에 와보고 알게 되서 홀딱 반해버려서, 이번에도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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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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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다 생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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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 빵, 혼자 왔는데 저렇게 그득그득. 빵과 함께 먹을 소스가 무려 4종류. 예약제 코스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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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랑 샐러드도 먹음직. 너무 좋다. 진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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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 가지, 맛 없을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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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허고 실한 감바스. 마늘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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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함박. 크항. 신선한 구운 야채와 버섯, 그리고 심심-한 함박 스테이크. 이건 나이프 쓸 것도 없이 숟가락으로 소스랑 듬뿍 한입씩 퍼 먹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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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테이블에는 사업상 만난 관계였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투머치 토커 아저씨가 실내에서 내면 안되는 크기의 목소리로 어마어마하게 떠들어대셨다. 별 수 있나, 먹는데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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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터지게 먹고나서, 테이블을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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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디테일. 테이블을 치우고나서 다시 저렇게 꽃을 세팅해주신다. 잇츠, 호강타임. 디저트로 나온 루이보스티를 마시며 뜨끈하게 속을 데웠다. 다시 슬슬 걸어서 숙소까지 갈 예정이니,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일어났다. 이 곳은 매일 테이블 마다 한 팀씩만 예약을 받기 때문에 영업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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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러 소리를 속으로 열댓번쯤하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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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도 예뻐. 참 예뻐. 능소화는 정말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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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호를 보며 걸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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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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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이런 풍경이네에-


이제부터 책 읽다가 잠들어야지, 하고는 굉장히 곰방 잠이 들었다. 그런거지 뭐. 내일 만날 여리디 여린 아침을 기대하며.



완벽하지 않아서, 행복한 일상 같은 여행에 취해 달디 단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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