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 노트북 추격전

by 노니


교회에 가기 위해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버스에서 내려 은행에 들어가 헌금을 찾았다. ATM기계에서 흘러나오는 ‘놓고 가시는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멘트에 습관적으로 지갑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헉. 노트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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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버스에 놓고 내린게 분명하다. 덜덜. 정신을 차리고 버스 회사를 검색, 114에 전화를 걸어 버스 회사로 전화 연결을 했다. 이렇게 빨리 확인했으니 괜찮겠지. “3분 전에 종로 5가에서 출발한 상암동 방면으로 가는 271번 버스에 노트북을 놓고 내렸는데요. 버스 기사님께 확인이 가능할까요?” 다급한 내 목소리에 비해 지나치게 차분한 목소리가 되돌아온다. “운행 중이신 기사님께 전화를 드릴 수는 없구요. 문자 남겨 놓겠습니다.” 기사님께서 문자 확인을 바로 안 하신다면, 그 사이에 노트북은 사라질 지도 모른다.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방법이 불가능하다는 걸 확인하자 마음이 더 급해졌다. “그럼 제가 노트북을 찾았는지 여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상암동에서 회차해서 돌아오면 3시간은 잡아야 하니, 1시 이후에 다시 전화 주세요.” 그 방법 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3시간, 그 사이에 노트북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내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자 상대방이 차분하지만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전화를 끊으셔야 제가 문자를 보냅니다.”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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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해도 1시까지 가만히 기다리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버스에 타고 내리는 수 많은 사람을 상상하니 도저히 안되겠는거라. 버스 위치를 확인했다. 종로2가. 아직 많이 못갔다. 따라 잡을 수 있어. 마침 눈 앞에 들어오는 택시를 잡았다. 택시 문을 열었는데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기사님이 앉아 계셨다. 지금 이 상황을 싫어하실지 모르지만, 별 수 없다.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버스에다 노트북을 놓고 내렸는데요. 지금 버스가 종로 2가에 있어요.” 여기까지 말했는데, 거짓말 않코 기사님이 다소 신이 나는 목소리로 물어보셨다. “몇 번 버스? 어느 쪽으로 가는 버스야?” 분명 느꼈다. 목소리에서 약간의 흥분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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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달려주셨지만 버스는 점점 멀어졌다. 버스가 전용차로를 타고 씽씽 잘도 달려 나갔다. 기사님은 횡단보도 노란 불에 멈춰서는 앞 차에 손가락질을 하시고, 아슬아슬 도로 중간으로 달리는 오토바이를 앞 지르며 이 새끼 저 새끼 욕을 하셨고, 빨간 불 마다 신호가 왜 자꾸 걸리냐며 핸들에 올린 손을 어찌할 줄 몰라 하셨다. 나는 뒤에 앉았지만 앞자석 사이로 몸을 반쯤 내밀고, 번번이 기사님과 함께 탄식했다. 나도 모르게 기사님과 함께 하는 노트북 추격전을 조금 즐기고 있었다. 결국 신촌오거리에서 271번을 발견했을 때, 우리 둘은 동시에 271을 외쳤다. 불안한 마음에 한 정거장을 더 달려 동교동에서 내리는데 기사님이 말씀하신다. “꼬옥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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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거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나도 모르게 약간 웃음이 났다. 기사님과 나, 우리 지금 약간 환상의 콤비 같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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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번이 정류소에 들어왔다.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내가 앉았던 맨 뒷자석으로 향하는데 올려뒀던 그 자리에 그대로, 노트북이 살포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도 노트북이 보였다. 어디갔었어어어엉. 세상에 우리 나라 만세다. 만만세다. 271번 탔던 사람들, 참 좋은 사람들. 택시 기사님께 이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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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더니 온 몸에 진이 빠진다. 노곤. 교회 앞에서 라테를 사고도 예배에 늦지 않았다. 이래서 주일엔 집에서 일찍 나와야 하는거다. 노트북을 잃어버릴지 모르니까. 하. 완벽한 주일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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