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 아줌마가 얘기하는데 지금 계약직 공무원을 많이 뽑는데."
갑분공, 갑자기 공무원이라니.
무심하게 던지는 듯 하나, 고민하며 건넸을 엄마의 말. 그냥 한 귀로 흘릴까 하다가 따져 물었다.
"공무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너더러 공무원 시험을 보라는 게 아니라, 몇 년만 계약직으로 일하는 그런 거 있잖아. 요즘 많이 뽑는다고 한 번 찾아보래." 듣다 보니 안되겠다.
"그 아줌마한테 나 일 그만둔 거 얘기했어?"
싸늘한 내 목소리에 주춤, 엄마가 변명을 시작했다.
"아니이...", "엄마! 오지랖 넓은 아줌마들 얘기 듣지도 말고, 그 아줌마들이 하는 말 나한테 말하지도 마. 그 아줌마가 내 걱정해서 그런 얘기 해? 내 걱정 내가 하지, 엄마나 하지. 그런 중요하지도 않은 말 나한테 전하지 마." 엄마 말을 끊고, 톡 쏘아붙였다. 엄마가 입을 꾹 다문다. 반격하지도 못하는 엄마를 보니 가슴이 울렁댄다. '엄마가 무슨 잘못이야. 친구들한테 나이 꽉 찬 딸에 대한 고나리나 듣게 한 건 내 잘못이지.' 슬그머니 자책을 하려다가 그것마저 관두기로 했다.
엄마한테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나와 상관도 없는 사람이 하는 저런 참견,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니 매정해도 끊어내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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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탕 닫고 들어와 책상에 앉아 이력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스크랩해놓은 매거진 에디터 구인공고를 다시 정독해본다. 대강 칸은 다 채웠는데 마지막, 희망 연봉을 쓰란다. 희망 연봉에 소심한 마음이 발동했다. 대체 얼마를 적어야 하지. 매년 연봉 협상을 할 때도 한 번도 제대로 희망 연봉을 말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거 말 잘 못하는 스타일. 잠시 고민하다가, 뒷자리를 다 0으로 채우고, 앞자리만 숫자를 그려 넣어 뭉뚱그려 적고 괄호를 달았다. (협의 가능) 자기소개서를 뚝딱 완성했다. 필력을 엿볼 수 있는 원고를 보내라고 해서 고민 고민해서 글을 두 개 뽑았다. 내가 읽어보면 참 좋은데, 읽는 사람도 참 좋았으면 좋겠다. 제발, 이 글에서 내 필력을 좀 엿보아 주셨으면. 에디터 구인 공고에 이력서를 보내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이력서에는 왜 연락이 오지 않는 걸까. 경력이 없는 경력이 문제일까, 자기소개서가 문제일까, 아니면 젤 처음 적어 낸 내 나이가 문제일까. 뭘까.
계속 검색을 하다가 객원 에디터를 뽑는 여행 매거진 공고를 봤다. 이번엔 이력서와 함께 포트폴리오를 첨부해야 했다. 아마도 여행 에디터라면 사진도 잘 찍어야 할 테니. 여행 이야기라면 잔뜩 남겨뒀다. 사진은 더 많다. 내가 써놓은 여행기에 내가 빠져 들어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사진은 어떻고. 여행 사진 폴더라는 판도라 상자를 열어버린 탓에 푹 빠져들어 이 나라 저 나라를 여행하다가 한참만에 현실로 돌아왔다. 힘들었지만 제일 좋은 글 몇 개를 고르고, 잘 나온 사진들을 군데군데 끼워 넣었다. 이력서를 보내려고 공고에서 메일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데, 이런 게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첨부 가능한 파일 : pdf, ppt, pptx.
한글 파일로 여행기를 작성한 나는 당황스럽다. 어떡하지. 막막해졌다. 피피티, 피디에프 파일 하나 못 만드는 게 무슨 에디터야, 갑자기 찾아온 자괴감에 그냥 컴퓨터를 닫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