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어떤 날은 덜컥 성급한 후회가 시작되었다. 그냥 언제나처럼 조금 더 버텨볼 걸. 뭐 대단한 걸 하겠다고 나온 거야. 이렇게 시작된 후회가 어떤 날은 자책으로까지 이어졌다. 늦잠이라도 자고 일어난 아침이면, 이 생각은 더욱 절정으로 치달았다. 한심해 한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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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직업으로는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글은 일을 하며 중간중간 취미 삼아 쓰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라고 사실 나는 원래 그것을 더 바랬던 것 같다고 자신을 기만하기 시작했다. 금방 아무 곳에서도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 잡히곤 했다. 나는 성실하지도 못했고, 능력도 없는 데다가, 내세울 경력도 없고 심지어 외모도 후지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런데다 나이까지 먹었으니 내 삶은 아마도 지금 보다 더 좋아질 일은 없겠다는 생각까지 해봤다. 처음이었다. 비관적인 생각은 되도록 깊이 하지 않는 내가 해본, 최고의 비관적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언제나 그랬듯 회복은 단순하다. 외부의 자극에 마음과 몸을 활짝 열어재끼면서 서서히 시작되었다.
퇴직연금과 관련한 은행 업무를 봤다. 통장 잔고가 '0'원이 되는 바람에 바로 신청할 수 밖에 없었다. 퇴직금은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내가 일한 기간에 비례해 정해진 대로 산출되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돈이 내 통장에 들어오자 마음이 조금 녹았다. 뭐야, 마음이 쫄린건 돈 때문이었나. 십일조를 떼고 필요한 돈을 떼놓고, 퇴직금을 받았을 때 뭔가 대접하고 싶었던 친구에서 밥을 샀다. 나머지는 다시 저금을 했다.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 입으로 회복을 고백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다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내내 아무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잔소리가 아닌 위로에도 괜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더니만 이제야 좀 차분해졌다.
그러니 다시 뭔가를 쓰고 싶어 졌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회사를 그만뒀는데, 이 일을 하면서 너무 스트레스받아요.
제가 괜히 그만둔 걸까요. 이 일이 저에게 맞는 일이 맞을까요?
어느 날엔가 들렀던 북 토크에서 정신과 의사인 윤대현 선생님이 대답하셨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힘들지 않을 거라는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힘들다. 삶은 원래 고해라고. 이것부터 인정하고 가자, 그만두고 싶어서 그만뒀지만 그만둬도 힘들 거라는 거.
목표는 글을 쓰는 것에서 읽어주는 글을 쓰는 것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좀 더 잘 쓰는 것으로. 이력서도 계속 쓸 예정이다. 사소한 목표도 세우지 않고 수다 떨듯 글을 적고 있는 내가 떠올라 뭘 써야 할지도 생각해보기로 했다. 강릉에 대해 더 잘 기록해야겠지.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기 전, 늘 그리도 바라던 시간이다. 넘치도록 넉넉한 시간이다. 돈을 벌지 못하는 시간이지만, 그래서 진짜 내 멋대로의 시간이다. 걱정하지 말자. 언제나처럼 나는, 잘 지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