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지마, 여기는 리스본이야 : 포르투갈여행기록 1

다시, 포르투갈

by 노니

이 글은 나의 두 번째 포르투갈 여행 이야기이다.

한국 시간으로 2019년 1월 30일 수요일 저녁부터 시작돼서 2월 11일 월요일 저녁에 마무리되었다. 포르투갈에서 10박, 비행기 안의 1박을 포함하면 총 11박 13일의 여행이었다. 딱히 정보 제공이 목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성 여행 에세이도 아니니까, 그냥 여행 기간 동안 나의 초 단위 감정의 변화나 스쳐간 생각들에 대한 조잡한 기록이다. 어떻게 기록해야 좋을까 고민했는데 시간 순서의 기록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그냥 언제나처럼 기록하겠다는 말이다.

11일째인가, 12일째인가. 언젠가에 차례가 되면 등장하겠지만 포르투의 골목길에서 한 상점에 들어갔다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누군가 주고받은 엽서, 누군가 주고받은 편지 봉투, 언젠가의 전단지, 언젠가의 기록들, 언젠가의 표 딱지들, 언젠가의 포스터를 수집해서 팔고 있는 상점이었다. 거기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폐휴지가 될 수도 있었을 물건들인데 깔끔하게 정리를 해서 모아 놓으니 볼 만했다. 굉장히 귀하거나 시대적으로 가치 있는 골동품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가격도 저렴했다. 아니 이런 걸 뭘 수집까지,라고 느낄 정도의 물건들도 잔뜩 있었다. 거기서 느꼈다. '하나하나는 별거 아니더라도 이렇게 모아두면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가치가 생기는구나' 굉장히 흥미롭게 구경했고 꽤 집요하게 골라서 마음에 드는 엽서 두 장을 샀다. 각각 50센트와 1유로, 1.5유로였다. 엽서는 살 때는 의미 있었지만 돌아온 지금 당연히 어딘가에 처박아 뒀다. 언젠가 내키는 날 다시 꺼내보겠지.


그래서 별거 아닌 기억들을 모아둘 예정인데, 설령 가치가 없더라도 괜찮다. 스스로가 흥미롭게 기록하고 언젠가 내키는 날, 내가 꺼내보기만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또 서두가 길었다.결국 검색하면 언제든 볼 수 있는, 공짜로 읽는 블로그 여행기일 뿐이니 의미 부여는 그만하고 쓰기나 하면 되겠다.




두 번째 포르투갈(첫 번째 포르투갈은 2017년 8월 11-19일, 8박 9일간 다녀왔다)이라니. 작년 9월 3일 밤에 우연히 들어갔던 스카이스캐너에서 929,700원에 리스본 in, 포르투 out으로 항공권을 발견하고 충동구매를 해버렸다. 그땐 입사 한지 2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인데, 그만큼 일해놓고 유럽 여행 표를 질러버리다니 나는 나 자신에게 꽤 관대한 사람인가 보다. 한 번씩 쓸데없이, '혹시 못 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왜 그러는 걸까, 비행기 표를 끊고 나면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을 한지 언 5개월 만에 드디어 출발이다. 설 연휴와 주말을 빼고 5일 연차를 사용해서 그래도 꽤 긴 휴가를 냈다. 회사가 생긴 이래 가장 긴 휴가를 낸 직원이라는 말에 민망한 척했지만 사실 민망하지는 않았다.


지난 여행에서 만들어 놓은 경험치와 정보가 있으니 이번 여행은 준비가 딱히 필요 없었다(심지어 캐리어 체크리스트까지 지난번 여행에 적어 놓을 걸 보고 그대로 챙겼다). 출발 며칠 전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를 다시 한번 뒤적이며 플래그 붙여 놓았던 몇몇 곳을 메모 한 것과 가져갈 책을 고른 것이 여행 준비의 전부였다. 아 그리고 출발 며칠 전부터 '나 진짜 여행 준비 하나도 못했는데 어쩌지' 징징거린 것도 여행 준비에 포함 시켜야겠다.


입사해서 처음으로 자리를 비우는 거라 그런지 공항에서도 내내 평소보다 심장 박동이 조금 빨랐다. 보안 검색대로 가기 위한 줄에 서 있는데 옆 줄에 선 여학생이 꽤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어서 내용이 그대로 들려왔다.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내뱉는 강렬한 단어 몇 개가 쉬에 와서 박힌다. '명품', '월세', '책임'... 나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단어들의 조합에 쫑긋 귀를 기울였다. 한참 듣다가 혼자 결론을 내려보니 명품 부동산과 월세 문제로 서로 책임을 묻고 있는 상황. "아뇨.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지금 책임 전가하고 계시잖아요." 엄청나게 똑 부러지는 말투로 따지고 있었다. 잘한다. 말 참 잘한다. "제가 왜 16만 원을 물어야 하죠?" 삼십분도 넘게 벌인 실랑이의 이유는 무언가 때문에 발생한 돈 16만 원 때문이었다. 여학생은 전화를 끊고도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 눈치다. 그녀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입고 있던 패딩이 갑갑한지 이제야 벗어든다.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저런 통화를 하고 해외로 출국해야만 한다니. 나만 이렇게 속 시끄럽게 시작한 여행은 아니구나. 괜히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 조금 위안이 됐다.


샤워도 하고 블로그에 글도 남기고 목베개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고 하느냐고 금세 시간이 갔다.

탑승. 비행기까지 이전과 그대로, 야간의 터키항공을 탔으니 더더구나 지난번 포르투갈 여행과 싱크로율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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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 자리에 콕 처박혀 앉아 11시간 50분의 비행 동안 화장실 한 번을 안 가고 고 자세 그대로 앉아, 2번의 기내식을 먹고 영화 <인턴>을 한 편 보고 <경애의 마음>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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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처럼 반짝이는 이스탄불의 풍경을 보며 착륙했다. 중간에 깨지 않고 몇 시간쯤 잠도 잤으니, 꽤 괜찮은 비행이었다. 새벽 6시가 조금 넘어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도 그대로다. 하하. 양치와 세수를 먼저 하고 버거킹이 있는 한 쪽 끝에서부터 반대쪽 끝까지 슬슬 걷고 2층 카페테리아도 구경했다. 처음 공항에 와 봤을 때만 하더라도 세상 넓게 느껴지더니만 이제 몇 번 와 봤다고 거리도 가늠이 되고 꽤나 익숙한 느낌이었다. 한참 있을 자리를 잡으려고 2층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가게마다 사람들이 그득그득하다.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다가 1층으로 내려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자마자 있는 GREENPORT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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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는 인증을 하면 사용 가능한 2시간 free wifi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따로 검색이 안됐다. 게다가 이 카페는 주문을 해도 따로 제공하는 Free wifi가 없단다. 와이파이에 대한 집착으로 몇 분 정도 찾아보고 나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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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라테와 공항 안에서나마 최대한 터키 분위기를 맛보고자 'Turkist Dessert Plate'를 주문해봤다. 대강 10유로 정도. 공항 내에 있는 가게들에서는 유로로도 계산이 가능했지만 일단 카드로 결제했다. 맛은 그냥 단거 옆에 또 단 거, 그 옆에 더 단 거. 커피는 맹맹한 물 탄 커피 맛이었다.

옆에 혼자 와 앉은 외국인 손님이 점원에게 free wifi를 묻길래 기다렸다가 냉큼 가서 알려줬다. "요거 사용하면 돼."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알지, 공항서 와이 파이 안되는 불편함을 점원이 알겠어? 내가 알지.

블로그에 글 하나 올리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무거울 거 알면서 노트북을 들고 왔지만 이래저래 유용하게 사용했다. 매일 글을 올리겠다는 결심은 지키지 못했지만.


지난번 경유 경험으로 탑승 2시간 전에 게이트가 뜨는 걸 알게 됐기 때문에 얼추 시간을 맞춰 움직였다. 한 번쯤 자리를 옮겨 주니 딱 좋았다. 모든 과정이 스무스하다. 역시 와본데 또 가는 여행이 짱이로구나, 여유를 부려가며 환승 게이트로 가는 길 근처에서 서브웨이를 발견했다. 배는 딱히 고프지 않았지만 아직 탑승까지 시간이 남았고 조금 심심하니까(?) 주문해보기로. 남은 시간은 여기서 보내기로 했다. 하프 사이즈 샌드위치와 캔 콜라 하나 10유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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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곳이 이스탄불 공항 경유 최애 자리 등극. 기둥에 가려진 테이블 자리가 하나 있는데 여기가 꿀이다. 테이블도 있고 맞은편 의자에 다리도 올려놓을 수 있으니 좋다. 일단 위치상 사람이 많을 곳도 아닌 것 같고 서브웨이 자체도 손님이 많은 편은 아닌 것 같다. 포르투갈에서 돌아오는 날에도 이 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다만 그린포트에서 잡았던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서브웨이에서도 역시 무료로 제공하는 와이파이는 없다. 남은 2시간 정도는 와이 파이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괜찮.


시간이 다 되어서 한 층 아래 있는 게이트로 이동했다. 게이트가 열려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는데 다리가 내 가슴께까지 올 것 같은 키 큰 외국인이 뒤돌아 묻는다. 이게 리즈보온으로 가는 비행기가 맞냐고. 고개를 끄덕이니 안심한다. 그런데 몇 분 지나서 다시 또 뒤를 돈다. 이번엔 자기 비행기 티켓까지 들이밀며 비행기 편명을 확인한다. TK 1759편이 맞냐고. 나도 내 티켓을 꺼내서 보여줬다. TK1759가 맞았다. 그러고 나니 또 안심하는 얼굴이다. 내가 편안한 얼굴로 웃어 보이자 여자가 갑자기 나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자기가 지금 이렇게 바보같이 구는 건 어쩌고저쩌고, 자기 상태를 얘기하는 것 같은데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 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한 맨 마지막 단어는 너무 생생하다. 'confuse' 다시 한번 생각했다. 역시 나만 속 시끄러운 건 아니구나. 다시 다짐한다. 너그러워지자. 한국에서도, 이곳에서도. 나에게도. 상황에 대해서도.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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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X3 작은 비행기를 타고 리스본으로 출발했다. 환승 후 타는 비행이 더 고역이다. 5시간도 결코 짧지 않은 비행이고. 이리저리 비비 꼬이는 몸으로 5시간을 겨우 버텨 리스본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비행을 시작한 지 거의 24시간이 지나 있었다. 얼른 이 미치도록 답답한 비행기를 벗어나고 싶은데 무슨 이유에서 인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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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 내리는 비를 감상하고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비행기에서 내렸다. 도착이구나.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캐리어를 찾고 무사히 3GB 유심칩까지 구매했다. 지난번의 경험으로 심 비밀번호 4자리는 외워뒀다. (모두들 많이 알고 있는 정보겠지만 혹시나 해서, 해외 유심을 낀 상태에서 핸드폰 전원이 꺼졌다가 다시 켜지면 비밀번호 4자리를 입력해야 잠금 해제가 가능하다. 행여 비밀번호를 바로 확인할 수 없는 곳에서 핸드폰이 꺼지는 상황이 생기면 핸드폰을 켜도 사용이 어렵다.) 유심을 바꿔 끼고 나니 에어비앤비에서 메시지 몇 개가 도착한다. 첫 번째 숙소 호스트 Ana가 몇 개의 메시지를 보냈는데 내가 답장이 없자 에어비앤비에 연락을 한 건지 에어비앤비 고객지원팀의 Bernardo에게 길고 긴 메시지도 도착해 있었다. 너 왜 체크인 시간 되었는데 연락도 없어? 무슨 문제야? 캔슬 하고 싶어? 어쩌고저쩌고.


Ana에게 24시간이 걸려서 이제야 리스본에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연락 늦어 미안해. 이제부터 메트로 타고 이동할 거야. 바로 답장이 왔다. "No problem. I was just worried."


그 뒤로 며칠 안나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바로 저거였다. 노 프라블럼, 그리고 돈 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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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로 바로 연결되는 곳이 있지만 일단 밖으로 나가봤다. 숨을 깊게 들이 마시면서 내 몸속에서 갑갑했던 비행기 속 공기를 빼내고 리스본의 공기를 불어 넣는 상상을 했다. 하늘이 우중충하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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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행에서는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그러나 리스본도 포르투도 지난번의 경험에서 공항까지 교통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으니 지하철로 이동하기로 했다. 익숙하게 표 사는 기계로 가서 1회용 표를 구입했다. 오늘은 더 이상 이동할 일이 없으니 일단 1회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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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환승하고 무사히 Cais do Sodré 역에 내렸다.

뭐 이리 쉬워. 성수역에서 서울역 가는 것만큼 편하게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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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역사가 예쁘다. 그렇취. 이게 리스본이지.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지상으로 올라와 보니 빗발이 더 심해져 있었다. 우산을 목과 어깨 사이에 끼고 한 손으로는 캐리어를 끌고 나머지 한 손으로 핸드폰의 구글맵을 짚어 가며 집을 찾아가자니 좀처럼 이동이 쉽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우산을 접고 비를 맞으며 걷기로 했다. 리스본의 환영 인사가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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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치. 이게 바로 리스본이지.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다.


10분쯤 걸어서 Ana의 집에 도착했다. 오래된 아파트다. 3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다. 힘을 내서 캐리어를 으라차차 들어보려는데, 탁탁탁탁 위에서 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키가 190cm는 되어 보이는 Ana의 남자친구 Gil이 구부정한 자세로 좁디좁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이더니 내 캐리어를 덥석 한 손으로 들고 계단을 성큼성큼 오른다. 나 진짜 Gil 없었으면 눈물 날 뻔했어. 3층에 올라가니 발레 선생님이라는 미녀 Ana가 환한 웃음으로 맞아준다. 악수를 나누고 거실의 거울을 힐끔 봤는데... 오마이 갓. 머리카락이 머리에 찰싹 붙어 있고 비 맞은 생쥐 꼴이다. 수건을 건네주며 내 표정을 본 Ana와 Gil이 낄낄거렸다.


아, 드디어 도착이구나. 여기가 며칠 동안 내 집이구나.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서울에서 예약해놓은 집에 이렇게 무사히 찾아왔다. 두 번째라도 이 낯선 곳을 혼자 무사히 오다니, 기특한 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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