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을에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하니, 골목에 금방 활기가 돈다.
성벽 입구를 통과해 마을로 들어서면 눈 앞에 부터 저 끝까지 이어지는 디레이타 거리, 그 위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까만 머리의 관광객들이다. 한국 사람도 거의 없다. 죄 중국 사람들.
그들은 보통 함께 무리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북적북적 더 활기가 넘치는 느낌이었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여전히 꽤 사나웠다. 펄럭이는 코트 깃을 그러잡으며 혼자 옆길로 슬그머니 빠졌다. 비수기의 관광지니 사람이 바글대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조금 조용히 산책을 시작하고 싶었다.
걷다 보니 점점 구름이 밀려가고 하늘이 파란색을 되찾아갔다.
아직 겨울인데도 감사히 여기저기 화사한 색의 꽃들이 보여 골목 구경이 한결 즐거웠다.
그렇게 조용한 길을 조용히 걷고 있는데 누가 내 앞을 가로질러 빠른 걸음으로 지나간다. 눈이 저절로 그 사람을 따라갔다. 십자가 목걸이를 목에 건, 어쩐지 신부님으로 보이는 아저씨. 신부님이 들어간 곳을 따라 가 문이 닫힌 건물을 쓰윽 들여다봤다. 여긴 어디지?
그때 마침. 신부님이 다시 급하게 나오시는 바람에 문 앞에 서 있던 나와 딱 마주쳤다. 멋쩍게 웃으니 문을 열어주시며 들어와 보라는 제스처를 하신다. 예스. 허락받았으니 당당히 입성.
도서관이었다.
이럴 수가 그것도 그냥 도서관이 아니라 멋진 도서관이었다.
책이 있고, 식물이 있고, 큰 창이 있고, 멋진 뷰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게 다 있다.
오예-
사람이 없는 도서관 안으로 나를 초대하고, 신부님은 바로 다시 사라지셨다.
아무도 없는 공간 속, 그 아름다운 침묵을 깨기 싫어 나도 소리를 죽여가며 도서관의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독특한 모양의 책상, 그 위에 멋들어진 화분들. 깨끗하게 정리된 책들. 따뜻한 공기, 그리고 창으로 들어오는 빛.
때 묻은 노란 가죽 소파,
한참 찰칵 거리고 있는데 신부님 두 분이 들어오셨다. 눈으로 인사를 나누고 나는 조용히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을 만났을까.
<BIBLIOTECA MUNICIPAL>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다. 도서관 이름인 줄 알고 찍어왔는데 저게 그냥 '시립 도서관'이라는 의미였다. 오비두스 메인 스트리트를 벗어나 골목을 걷다가 급히 걸어가는 신부님을 만나거들랑, 따라 들어가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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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한 꽃도 아닌데 그냥 아름다웠다. 마른 잎사귀마저도 그림 같아서 몇 장이고 찍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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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성당을 만나 슬그머니 기도도 드리고 몇 사람쯤, 아름다운 골목 사이에 세워두고 사진도 찍어줬다. 자기들 밖에 없을 것 같은 외진 골목에서 갑자기 사람(나)을 만나면 일단 조금 놀라고, 그 다음은 사진을 부탁하더라. 오비두스의 골목 사이사이에서 여러 가족과 커플을 찍었다. 쭈볏거리는 사람들을 만나면 타이밍 좋게 먼저 묻기도 했다.
"내가 찍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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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메인 스트리트로 올라갔다. 문이 열린 미술관이 있길래 들어갔다.
<Museu Abilio>
이름을 쓴 폰트가 멋지다. 포르투갈 감각이야 말해 뭐해. 안 그래도 말 많은 블로그 글만 더 길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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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전시는 그림이 아니었지만, 마음에 드는건 그림들이었다.
그림 속 오비두스. 그린지 꽤 시간이 흘러 있었지만 오늘 아침에 그렸다고 해도 믿을 만큼, 그림 속 풍경은 오늘 내가 본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변할 수도 있지만, 변하는 것 보다 그대로 지키며 살아가는 걸 선택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감수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늘 바쁘게 변하고, 쫒아가는게 버거울 정도의 세상 속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막연히 근사하다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건 지키는 게 쉬울 리 없다. 그냥 지키는 것도 아닌, 여전히 아름답게 지켜나가는 건 더더욱.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이 아름다운 골목이 지긋지긋한 곳일 수도 있겠다.
미술관을 나서는데 박물관 직원이 종이 한장을 건냈다. 마음에 들긴 하지만 포스터를 사도 들고 다니는 게 일이라 포기했는데, 포스터와 같은 그림의 그러나 사이즈는 작은 팸플릿을 건네주셨다. 아, 뛸 듯이 기뻤다.
내가 너무 좋아하니 건내준 이도 활짝 웃는다.
그림을 파일에 정성껏 끼워 넣고 다시 그림 속 골목으로 산책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