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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디브라운 Jun 13. 2019

첫 출근은 오랜만이라

잘하고 싶어서 자꾸만 조급 해지는 마음


180723


뭐라도 아는 사람인 양 자꾸 말을 많이 하려고 해서 여러 번 입을 닫자고 다짐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다 보면 또 금방, 능력 없는 사람 같아 보일까 봐 마음이 불안해진다. 하. 스스로 릴랙스 릴랙스 마음을 다독여야 한다. '에이, 뭐가 됐건 이리 급할게 무에야 출근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생각지만 얼른 인정받고 싶은 막내 사원은 매일 마음이 오르락내리락거린다. 성질이 급한 건 알아줘야 해. 뭐든 시키는 것보다 잘 해내고 싶은 이 기분. 


아아, 첫 출근은 오랜만이라. 




180724 


퇴근하고 나서 회사가 있는 낯선 동네를 좀 걸었다. 얼른 근처에서 마음에 드는 카페도 찾아야 한다. 올여름이 지날 때쯤이면 이 동네도 친숙해져 있겠지.




180725


예전 회사의 회의 시간은, 지금 생각하면 꼭 혼나는 시간 같았다. 그렇게 5년을 보내고 나니 회사를 그만둘 때쯤엔, 회의 준비를 할 때부터 심장이 벌렁 거리곤 했다. 


새로운 회사에서 회의 때마다 내가 예민해지는 건 이전 경험 탓, 이라고 탓해버리고 싶지만 사실 좀 찔리는 부분이 있다. 내가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구는 건 경험 탓이라기 보단 성향 탓 인지도 모르겠다. 꼭 들어야 될 피드백들에 쉽게 경직되는 탓이고, 마땅히 해야만 하는 말에 쉽게 흥분해버리는 탓이다. 여전히 너무 부족하다. 


그래도 말이지. 좋아질 거야, 오늘보다 내일 더.




180726 


새로운 회사에서의 첫 회식이 있었다.  


냉방병인지 뭔지 아침부터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점심도 안 먹고 엎드려 있었다. 반차를 쓸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회의에 들어가고. 나와서 고민하다가 그래도 첫 회식인데 빠지기 싫어서 버티고. 그러다 또 회의를 하고, 나와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어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회식에 가기로 했다.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니 또 언제나처럼 가장 흥분해서 엉덩이를 들썩대고, 볼링장에 가서 꺅꺅 소리를 지르며 볼링을 쳤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처음부터 끝까지 깔깔 웃으며 회식을 마쳤다. 예전 회사에서는 직급이 높은 데다 관리자였던 탓에, 직원들이 신경 쓰여서 편히 못 놀고 못 먹었다. 내가 있으면 불편할까 경직되어 '빨리 빠져줘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회식에 가도 피곤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여기는 좀 다르다. 아, 회식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구나. 신입사원이 좋긴 좋구나. 그냥 신나게 어울리면 되는 거였다. 


회식 때 갔던 볼링장, 직원 모두가 하나같이 볼링을 너무 못 쳐서 대 폭소했다.




180730


하루 종일 한 건 없는데, 쫓기는 것 같은 불안한 마음만 있었다. 출근 3주째, 뭔가 점점 어렵다. 출근하는 건 좋은데 어렵다. 마음이 자주 조마조마 해진다.


문장 한 줄 쓰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거지. 새로운 회사에 맞춰 새로운 업무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익숙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머리가 내 멋대로 구태의연하게 움직인다. 사실 사수가 없다. 내가 입사하기 전까지 회사에는 에디터라는 존재가 없었다. 뭔가 콘텐츠를 만드는데 직원 모두가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비효율적이라서 에디터를 뽑았다고 했다. 뽑는 사람도 에디터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는데, 설상가상 들어온 나도 이 분야에 무경력자다.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의 내 역할은 모호하다. 뭘 해야 할지 서로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이 일 저 일 '글', '콘텐츠'와 관련된 건 뭐든 넘어온다. 근데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이 없다. 이 일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도움을 줄 사람도 없다. 이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전에는 어떻게 했어요? 정도도 물어볼 사람이 없다. 막막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또, 이런저런 시도들을 그다지 욕먹지 않고 할 수 있어 뵌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이렇게, 3일은 새로운 일 어렵다 징징거리고 2일은 새로워서 신난다 헤헤거리다 보면, 어느새 한 주가 지나있다. 아직은 징징거림이 더 잦지만. 




180731


꽤 금방 고비가 찾아왔다. 처음 동료들은 경험이 많은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줬다. 신입 사원의 쪼그라들었던 마음은 동료들의 사소한 끄덕임에도 쉽게 부풀어 올랐다. 이전의 내 경험을 가지고 새로운 회사의 낯선 상황에 대해 이것저것 조언을 더했다. 그러나 쉽게 부풀어 오른 마음은 쉽게 쪼그라드는 법. 누군가가 가볍게 쿡 찌른 말에도 금방 다시 퓨슉하고 바람이 빠졌다. 여유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좀처럼 자세를 낮추기가 어려웠다. 보여주고 싶었다. 빨리 적응해내고 싶었다. 더 솔직히는 얼른 이전 회사에서처럼 인정받고 싶었다. 나 안 죽었어! 나이 많은 신입 직원 뽑은 걸 후회하지 않게 해 주겠어! 


누가 알까 부끄럽고 유치한 생각들로 마음이 가득 찼다. 




180802


아침 출근길, 회사 앞 카페에서 커피를 기다리며 잠깐 책을 펼쳤다가 그 자리에서 꼬박 2시간 동안 책을 읽어버렸다. 8시까지 출근할 예정이었는데 10시에 맞춰 부랴부랴 출근했다. (8-10시까지 자율출근제다.) 


야, 너희 내가 그냥 보통 식당 이모인 줄 알겠지만 알고 보면 나 축구하는 여자다 이거야!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240p,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주 재밌는 책이다 이거야 


매일 내가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모습이나 처한 상황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나 또한. 오늘 내가 부딪히는 이들이 품고 있을 그들만의 은밀한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나도 괜히 가슴을 쭉 펴게 된다. 


'야, 너네 내가 그냥 보통 나이 많이 먹은 신입사원인 줄 알겠지만 알고 보면 나 엄청 능력 있는 여자다 이거야! 지금의 어설픈 모습이 내 전부가 아니라고!' 아놔, 또 시작이다. 누군가에게 증명받고 싶은 불안이 저 문장에 마음을 고이게 한다. 넘치게 불안한 마음, 그 와중에 아침 독서는 솔찬히 즐겁네. 




180803


열심히 일했으니 죄책감 없이(?) 마음껏 커피를 마시고 책을 산다. 


회사 근처에 있어서 자주 찾았던 서점


그래, 따박따박 급여가 들어오는 월급쟁이의 기쁨이 이런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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