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입사, 그리고 또 다시 퇴사
180711 : 입사 일기
“이른 휴가 왔나 봐요”
여행지에 있는 카페였다. 평일 오전 오픈 시간에 맞춰 들어온 부지런한 손님에게 사장님이 물으신다. 대강 얼버무리면 될 걸 수다쟁이 손님은 굳이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아뇨. 지금은 쉬고 있고 다음 주부터 출근하게 되어서 그전에 잠깐 여행 왔어요.”
오랜 백수 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취업을 했노라고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었던 건지지도 모르겠다. 내 이야기를 들은 사장님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해주셨다.
“와 축하해요”
그 순간,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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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오래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빠이로 떠났다. 진작 추석 연휴에 맞춰 끊어놓았던 비행기 티켓이었는데, 퇴사 여행이 될 줄은 내 몰랐네. 더할 나위 없이 빠이를 즐기고 치앙마이로 넘어오는 버스 안, 함께 탄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지금 퇴사 여행 중이라고 내 소개를 했더니 자신을 캐나다 사람이라고 소개했던 여자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우, 콩그레츄레이션”
그러게 결국 입사도 축하할 일, 퇴사도 축하할 일이다.
입사 축하를 받는 순간에 퇴사를 축하받던 조금 찡-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190607 : 퇴사 일기
중학교 교사, 쇼핑몰 실장을 거쳐 또 새로운 다른 일에 도전하고 싶어 졌다. 취미로 쓰던 글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뭔지도 잘 모르면서 에디터가 되어 보기로 했다. 10개월 동안, 100개 조금 안 되는 이력서를 내고, 9번의 면접을 본 뒤, 10년의 이력과는 전혀 관계없는 분야에 다시 또 신입 사원이 되었다. 서른여섯 살의 신입 사원, 한 소셜벤처에 에디터로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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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어서 좀 다를 줄 알았더니 사회 초년생 짓은 똑같이 하네."
드라마 속, 37살에 계약직으로 입사한 경단녀에게 상사가 한마디 한다. 가까스로 잡은 취업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시키지도 않은 일에 열심을 내는 주인공에게, 상사는 차가운 표정으로 저런 대사를 건넨다. 악의를 담은 대사도 아니었고 딱히 그녀를 힐난하거나 까내리려는 의도로 힘을 준 것도 아닌, 그저 지나가는 대사였는데 나는 좀처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가 없다. 그냥 그 대사에 한참이나 그대로 고여있었다. 새로운 회사를 다니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을 누군가 콕 집어낸 기분이었다. 사회 경험도 있고, 경력도 있는 상태로 취업을 했으니 아무리 신입으로 들어간거라도 남들과는 조금은 다를 줄 알았는데 너무 사회 초년생같이, 딱 신입 사원같이 굴고 있는 나 자신에게 자주 놀라고 실망을 하곤 했다. 나 스스로가 내 기대에 못 미치는, 불편하고 조급한 기분이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나와는 달랐다. 이런저런 상황을 헤쳐가며 능력을 인정받게 되고(물론 엄청난 노력과 열심을 냈다) 그 뒤로도 반복적으로 고난과 시련이 있었지만 결국 정규직으로 재입사하고 다섯 살 연하인 직장 상사와 연인이 된다. 그러나 현실 속은 나는 결국 새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놈의 1년'(아무리 그래도 1년은 채우고 그만둬야지 같은 얘기를 여기저기서 듣고 만다)도 채우지 못한 채로 그만두게 되었다. 이력서 한 줄을 채울 10개월의 이력이 남았다.
서른여섯의 신입 사원이 서른일곱의 백수가 되기까지, 입사 전부터 퇴사하기까지의 요동치던 마음을 빈번히 기록해 놓았더랬다. 그나마 나를 버티게 했던, 열한 번의 다정한 급여명세서의 기록도 함께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