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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니 Nov 17. 2019

14. 나는 하늘과 동업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정말 감사하게도 학교와 우리 집에 별 탈 없이 태풍이 지나갔다. 

어제 아침, 수상한 바람이 불어오는 걸 맞으며 큰 길가로 나가, 사방 모든 것들이 휘청휘청 흔들리는 걸 봤더랬다. 논이 바람의 모양을 만들어내며 물결치고 있었다. 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조금 서글퍼졌다. 혹시 내일이면 이 모든 게 달라져 있을까 봐.


귀농학교 수업을 듣는 분 중에 비닐하우스 때문에 수업에 늦은 분이 계셨다. 국장님께서는 수업을 시작하며, 혹시 태풍 때문에 집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분은 바로 돌아가시라 당부했다. 그게 훨씬 중요하다고. 

염려로 시작한 수업, 창밖에는 때때로 바람도 불고 비도 내렸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 무사했다. 아무도 수업 중 급히 집으로 돌아간 분은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와 보니 하늘이 새파랗다. 바람도 잔잔하다. 태풍이 이렇게 지나간 거냐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모두의 안녕에 감사했다. 아저씨네 비닐하우스도 무사해서 다행이야요. 


태풍이 지나간 밤, 하늘엔 달도 별도 선명했다. 평소보다 많은 별에 예쁘다 예쁘다 오고 가며 감탄했다. 

잔잔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문을 열고 나오는데 손으로 눈을 가려야 할 만큼 쨍한 햇빛이 쏟아졌다. 


큰 길가에 나와 걱정했던 풍경들을 다시 살폈다. 아 여전히 그대로 아름답다.




난주 농사지으시는 분과 태풍에 대해 얘기할 일이 있었는데 "나는 하늘이랑 동업하고 있다"라고 하시면서 한 해 농사는 하늘의 뜻이라고 하셨다. 하늘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일 년 내내 흘린 땀의 결과물이 바로 수확 직전에 어그러질 수도 있는 것이 농사니, 농부라는 직업은 매일매일 얼마나 자주 마음을 내려놓으며 살아야 하는 걸까? 미루어 짐작할 수도 없는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 

아직 나는, 그저 나의 무탈함에 감사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만 반응하는 게 고작이지만

지역에 오니 태풍이니 자연재해가 도시에서 보다 훨씬 가까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아침에 본 기사, 태풍이 휩쓸고 간 사과 밭에 털썩 주저앉은 농부의 사진 밑에 파과를 꼭 사고 싶다는 댓글 쓴 이의 마음을 닮아가고 싶다. 못내 안타까워하며 한 마디 더 덧붙여 내년이 또 오니 부디 힘내시라는 그 헤아림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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