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밤을 따던 아이들이, 아무리 털어도 더 이상 떨어지는 게 없자 목표물을 바꾸기로 했나 보다.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는 내게 우희가 묻는다.
“잣 따러 가실래요”
응? 잣이 어딘가에서 따는 거였어?
아이들 넷이 앞장서고 내가 쫄래쫄래 뒤를 따랐다. 아이들은 학교까지 걸어가서 운동장 구석에 모이더니, 땅에 떨어진 솔방울 같은 것을 몇 개 주어와 발로 짓이기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방울 사이사이에 뭔가 작은 열매가 들어있다. 세상에. 처음 보는 광경이다. 솔방울이라고 생각했던 열매는 타원형의 알고 보니 잣나무 열매란다. 듣고 나서 보니 솔방울에 비해 좀 더 타원형으로 길쭉하다. 잣나무 열매 사이사이에 뭔가가 알알이 박혀 있다. 아이들은 작은 열매를 쏙쏙 골라내 손에 모으더니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이제 돌 주어오시면 돼요. 좀 큰 돌로.”
전체를 진두지휘하는 건 우호다. 돌은 왜 필요한 거지?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제일 큰 돌을 주어왔다.
모두가 돌을 주어 오자 우호가 시범을 보인다. 열매 하나를 바닥에 놓고 딱딱한 껍질을 돌로 콩콩 치니 와작 껍질이 깨지고, 안에서 뽀얀 잣이 나온다. 잣이다. 진짜 잣. 날름 먹어보니 고소한 맛이 나는 게 진짜 잣이다.
저쪽에서 아이들 몇 명이 비닐장갑을 들고 온다. 잘못하다가는 손에 송진 같은 게 묻을 수 있다며 양손에 장갑을 끼는 폼이, 흡사 수술을 집도하기 위해 장갑을 끼는 의사선생님마냥 비장하다. 너무 신기하다. 잣이라면 그냥 먹을 줄만 알았지, 잣나무 열매는 무엇이며 그 사이사이에 이렇게 쏙쏙 잣이 박혀 있는 건 줄 누가 알았냐고. 그리고 잣에 딱딱한 껍질이 있는 줄은… 아아 상상도 못했다.
진심으로 감탄하며 물었다.
“너네 이거 어떻게 알았어?”
해맑지만 다소 멍청이 같은 내 질문에, 아이들이 와글와글 떠든다.
누구는 원래 알았다고 하더니만,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대며 누구누구가 알려줬다고 하더니만, 결국 그냥 다 같이 하다 보니 자연히 알게 되었다는 얘길 한다.
야 너네 진짜 멋지다.
힘 조절을 못해서 돌로 쿵쿵 치니 내 잣만 자꾸 으깨진다. 우호가 조언을 해준다. "살살 여러 번 치면 돼요." 계속 감탄이 나온다.
"대단하다, 대단하다. 나는 이거 처음 봐. 몰랐어."
그러자 또 누군가 툭 말한다.
"어른이라고 다 아는 건 아니죠."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놀랍고, 즐겁다.
나는 아마도 모르는 게 많은 어른이라 여기에 온 것 같다.
사방이 배울 것 투성이라. 감사한 건, 가르치려는 사람은 없다.
보며 배운다. 놀며 배운다. 살며 배운다. 감탄하며 배운다. 감사하며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