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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니 Nov 17. 2019

17. 저기 버스 오는데요

수요일 아침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치는 이가 있다. 


수요일 아침은 첫 차를 타고 시내 카페에 간다. 이 날은 마을 커뮤니티에 가는 날인데,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오는 시간에 맞춰 가면 되기 때문에 오전에 시간이 빈다. 첫 차를 타고 시내에 나오면, 8시에 문 여는 카페를 갈 수 있다. 주 중, 나의 소소한 행복이다.




첫 차를 타러 집 앞 정류장에 나가면 항상 초등학생 한 명이 나보다 먼저 나와 서 있다. 그 친구에게는 아마 통학 버스가 될 첫 차. 시내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는가 보다, 짐작해본다. 등교 시간은 조금 더 뒤일 텐데, 배차 간격이 한 시간에 한대다 보니 지각을 하지 않으려면 7시 23분 첫 차를 타는 수밖에 없겠지. 

아마도 원래는 거의 혼자 서 있던 정류장이었을 텐데, 어느 날 내가 갑툭튀한거다. 첫날은 몇 번이나 내 쪽을 힐끗거렸다. 논이며 하늘이며 버스 정류장을 연신 찍어대는 나를 몇 번이나 힐끗댔다. 우리는 멀뚱멀뚱 간격을 벌려 서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버스를 기다렸다. 


_

오늘은 평소보다 준비가 늦었다. 머리는 대강 물기만 닦아내고, 얼굴엔 로션만 바르고 서둘러 나갔다. 아침 안개가 자욱해 시야가 좁았다. 버스 시간에 딱 맞춰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아이가 없다. 아이가 없는 버스정류장이 낯설다. '뭐지, 버스가 이미 출발했나' 시골 버스는 시간표에 딱 맞춰 오지 않는 게 보통이라, 시간표에 나와 있는 시간보다 여유 있게 나오고, 여유 있게 기다려야 한다. 벌써 지나갔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한 일 분쯤 지났을까, 안개 사이로 아이가 걸어온다. 안심. 안심이 된다. 버스가 아직 안 갔구나. 

뒤를 돌아 작은 거울을 보며 눈썹을 그리기 시작했다. 

"버스 오는데요."

아이였다. 

뒤를 돌아보니 안개를 헤치고 첫차가 달려오고 있다.  

뒤돌아 있는 내가, 혹 버스를 못 볼까 봐. 그래서 못 탈까 봐. 그 친절함이 재밌어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서로를 모르는 사이지만, 아는 척을 하지 않는 사이지만. 서로의 수요일 아침을 안다. 매일 첫 차를 타고 학교에 가는 아이. 뒷자리를 좋아하는 아이. 종점 하나 전에 내리는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천천히 내린 뒤에야 마지막으로 내리는 아이. 

덕분에 무사히 버스를 타고, 수요일 아침 카페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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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아이는 중학생이었다. 교복을 입지 않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것. 

몇 주 뒤부터 아이는 수영을 배우기 시작해서, 더 이른 시간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버스를 타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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