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엄마랑 얽혀 누워 수다를 떨었다. 오늘은 뭐했냐는 엄마의 물음에 집에서 조금 멀지만 제일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고 온 이야기를 기분 좋게 했다. “그거 완전 소확행이네”, “어? 엄마 그 말 어떻게 알아?”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에서 볼 법한 단어가 엄마 입에서 나오니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신문에서 봤어.” 그리고는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게 된 배경과 단어의 의미까지 줄줄 말한다. 이제 신문에까지 나오는 말이 되었구나, 놀라며 검색창에 검색을 해보는데 어느새 ‘2018년 트렌드 키워드’가 되어 있었다. 킨포크에서 미니멀로, 욜로가 또 휘게로 이어지고 어느새 소확행까지.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도 참 자주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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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小確幸)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의미를 가진 근사한 단어다.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충분하지만 다소 흔해져 버린 그냥(?) '행복'과 비교해 조금 더 구체적이고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행복'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래된 에세이에 처음 쓰인 말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무려 우리나라의 트렌드 키워드가 되어 있었다. 지식백과에서 풀이해 놓은 의미를 읽어봤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또는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 주택 구입, 취업, 결혼 등 크지만 성취가 불확실한 행복을 좇기보다는, 일상의 작지만 성취하기 쉬운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 또는 그러한 행복을 말한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소확행은 아껴서 사용하고 싶을 만큼 참으로 고운 표현이었는데 이렇게 풀이된 뜻을 읽어보니 어쩐지 퍽 흔하게 느껴진다.
‘삼포’로 시작해서 ‘오포’, ‘칠포’ 그리고 'N포'에 이르기까지 포기할 것 투성인 매일을 살면서 손에 잡히는 소소한 행복이라도 없으면 그 인생 고단해서 어찌 살까, 끄덕이게 되고. ‘매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한 순간은 매일 있어.’ 다이어리 앞에는 <곰돌이 푸>에 나오는 비슷한 맥락의 대사도 예쁘게 적어뒀더랬다. 분명 ‘소확행’은 주택 구입, 취업, 결혼 등 성취 불가능한 행복을 좇지 못하고, 아니 좇지 않고 있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흔해진 의미라고 생각하니 그만 시들해져 버린다.
인터넷 뉴스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단어를 봤다. ‘혐핫 신드롬’ 핫 해는 것, 즉 유명해지는 것을 싫어하게 되는 현상을 말하는 신조어였다. 이 기사 아래는 기래기들이 왜 이상한 단어를 만들고 난리냐는 악플이 가득했지만, 나로서는 방금 느낀 기분을 정확히 표현해주는 단어라 흥미로웠다. 남들 하는 건 나도 해봐야 하는 유행 즉 핫한 것에 지나치게 빠르게 반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지만, 이러한 낯선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는 기사였다. 핫플레이스라고 해서 가보면 자신처럼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 넘쳐나서 줄을 서야 하고, 열심히 찍어서 올린 사진은 저번 그 집이랑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이고, 몇 주 지나면 금방 또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등장하고. 너무 빠르게 변하는 자극에 질린, 혹은 지친 사람들이 점점 혐‘핫’을 추구하고 있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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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제목 ‘삶은 소비가 아니라 경험’을 한참 들여다봤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열어 검색창에 ‘욜로’라는 태그를 입력했다. 올라온 사진들을 쭉 넘겨보고, 이번엔 다시 ‘휘게’를 써넣었다. 마지막으로 ‘소확행’으로 검색했다. 검색어의 순서를 바꾼다 해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비슷한 느낌의 사진이었다. 나를 포함한, 트렌드에 민감한 우리들에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소소하게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경쟁적으로 소비될까 불편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속옷을 볼 때’ 지식 백과에 적혀 있는 ‘소확행’의 예(?)를 읽으며 생각했다. 적어도 우리, 다른 건 몰라도 스스로 발견한 '소확행'만큼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자. 그리고 어느 사이 또, 새로운 트렌드가 우리를 덮쳐오겠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각자의 경험을 살자. 어떻게, 행복이 유행이 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