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해 수고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by 노니


“우리를 위해 수고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서툰 발음이었지만, 완벽한 문장이었다.

설 당일, 해외 입양인 초청 행사에 다녀왔다. 명절을 가족 없이 보내야 하는, 현재 한국에 나와 있는 입양인들이 모여 어머니 나라의 명절을 함께 보내는 자리였다. 의미 있는 자리라 행사 스텝으로 자원했지만, 입양인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식사 전,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행사는 영어로 진행됐다. 나는 대부분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렇다 해도 별 문제는 없는 행사였다.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해외 입양인이 영어 노래 몇 곡을 연이어 능숙하게 불렀다. 피날레는 한국곡, 애를 써야 한 두 마디 알아들을 정도의 발음이었다. 서툴게 부른 마지막 곡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앙코르가 이어졌다. 앙코르곡의 가사는 전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슬픈 곡조에 얹혀 나오는 첫마디 가사에 그만 가슴이 저릿해졌다.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이 곳에 있는 다른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가사를 듣고 있었을까. 행사는 시종 밝은 분위기로 이어졌다. 자신의 외국인 친구나 배우자를 데리고 온 이들도 있었고, 혼자 온 이들도 있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얼굴도, 학생같이 앳된 얼굴도 있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직장을 갖고 긴 시간을 머무는 이들도, 잠깐 들르러 온 이들도 있다고 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어떤 이유로 이 곳까지 왔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 이후의 시간에 대해 선뜻 물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설령 우리가 서로 말이 통한다 할지라도.

행사가 열리는 장소에는 군데군데 미혼모 관련 행사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한국에서 해외로 보내지는 아이들의 98%가 미혼모의 아이들이라고 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이야기였다. 우리나라 정부는 미혼모보다 보육 시설에 대해 더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우열을 가릴 수 있겠는가마는 아마도 이런 정부의 태도들이 입양에 대한 세계적인 협약이나 정책에 대해 더디게 반응하게 했고, 그 결과 우리나라는 60년 이상 지속적으로 입양이 이어졌다고 한다. 아이들의 인권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얼마 전, 자신이 낳은 아기를 유기된 아기로 허위 신고한 여대생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미혼모로 아기를 낳은 뒤 막막함에, 궁여지책으로 끝끝내 제 손으로 경찰에게 아이를 신고하는 여대생의 심정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 후 이 모든 것이 자작극으로 밝혀지며, ‘오죽하면 그랬을까’,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손길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기사도 그저 스치듯 보고 지나갔었다. 불현듯 기사 내용을 떠올리며 만약 신고된 아기의 엄마가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그 아기 또한 바다 건너 어딘가로 입양을 가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미혼모를 보호하자’를 넘어서 '아이를 낳은 부모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면' 하는 기사를 보면서도 내가 너무 모르는 얘기라 너무 얕게, 마음이 아렸다. 서툴게 한복을 입어보고, 세배하는 법을 처음 배우며, 유창하게 영어로 말하고 간단한 인사조차 한국말로 하지 못하는, 외국인같이 화장하고 옷을 입은, 얼굴이 우리와 참 많이 닮아 있는 그들을 보며 처음으로 해보는 생각과 처음으로 드는 마음들에 몇 번이나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드라마 ‘마더’에 이런 대사가 나왔다. 주인공을 입양해서 ‘키워준 엄마’가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낳아준 엄마’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다가 그만 말을 끊으며 말한다. “자식 버리면서 사연 하나 없었겠어?”


어디에 말할 수도 없는 사연을 품은 엄마의 아이들은, 또 긴긴 시간 자신들의 말할 수 없는 사연을 만들며 살아왔다. 우리는 입양에 대해 생각할 때 주로 아이가 더 나은 삶을 얻고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입양인이건 입양인이 아니건, 누구에게나 ‘더 나은 삶’이라는 건 보장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 미혼모에 대해, 입양 제도에 관해 무언가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늦은 시간까지 계속된 행사를 마치고, 참석했던 입양인 모두가 돌아갔다. 남은 스텝들이 막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을 때, 문이 열리더니 아까 나갔던 앳된 청년 하나가 다시 들어왔다.
“우리를 위해 수고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천천히, 서툰 발음으로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참으로 진한 감사 인사였다.
청년이 돌아간 뒤, 얼굴도 이름도 아무것도 모르는, 그 청년이 간절히 찾고 있을 어머니를 떠올렸다. 청년의 어머니는 오늘, 누구와 어떤 설을 보내고 계실까.

“어머니, 당신의 아들 다른 사람에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이렇게 잘 자라 주었네요.”
어딘가에, 닿지도 않을 안부인사를 건네며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