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은 뭐가 좋냐면
2018. 01.12
오늘도 비슷한 시간에 달그락달그락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제 먹고 생각나던 맛있는 샌드위치. 혹시 질렸을까 다른 걸로 살까 하다가 두 번은 괜찮겠지 싶어서 한번 더 사셨다고. 오늘 먹어도 넘 맛있어요. 헷. 오늘도 향 진한 커피와 치즈 듬뿍 빵과 스콘도 먹고. 사과도 깎아 주셔서 먹고. 커피도 한잔 더 마시고. 또 아침부터 수다 파티.
너무 당연한 듯, 속초 가는 차 시간에 맞춰 픽업해주겠다고 하셔서 또 넙죽 감사하다고 해버렸다. 좋은 숙소를 구한 덕에 아주 호강을 했다 아주. 이렇게 풍성한 조식에 밥도 얻어먹고 차도 태워주시고, 너무 감사해서 이번 포스팅은 숙소 예쁜 사진으로 잔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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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 어머님이 다른 방도 구경해보라고 하셔서 게스트하우스 탐방을 시작했다. 2층 공용 욕실 앞에는 바구니에 정말 바짝, 기분 좋게 말린 수건이 엄청 넉넉히 들어있다. 1인 1 수건 이런 숙소랑은 다르다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두 따님의 그림이 있고, 창에 달린 커튼은 자세히 보니 삼베 앞치마였다. 획기적. 조각천 삼베 앞치마가 커튼이라니.
앞치마 그대로 양쪽 끝에 끈도 달려 있다.
1층 큰 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풍경이 참 따사롭다. 레이스 커튼이 만들어 내는 레이스 그림자도 너무 예쁘고.
창밖으로 보이는 넓은 마당에 교양이가 볕을 받으며 얌전히 앉아 있다. 정말 세상 순한 멍뭉이. 처음 보는데도 안 짖으면 어떡하니.
아 세상에 사랑스럽어라.
볕 좋은 거실,
책장에 책도 있고.
하. 예쁜 건 그림자도 예쁘다. 김태희는 그림자도 미녀더라.
현관의 귀욤귀욤.
순딩이 개 교양이. 털이 부들부들했다.
늠름해라.
계단 방, 1-2인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이런 그림,
또 한쪽에는 두 따님의 사진. 느낌 있다.
3층 다락방. 기회가 된다면 여기 묵어봐야겠다. 사방이 창이라서 커튼을 걷으면 볕이 정말 좋았다. 아이고 좋아라. 보기만 해도 좋다. 넓은 책상에서 끄적끄적 뭘 쓰고 흔들의자에서 책 보고 넓은 사이즈의 침대에서 푹신푹신 자고. 여기 묵으면 나가기 싫을 것 같다. 봄에 꼭 가야지. 꼭.
창에는 낙서가. 크크. 창밖으로는 동네가 빼곡히 보인다. 바로 옆집이 교회라서 교회 첨탑도.
커튼도 예쁘고.
흔들의자도.
온 집안을 돌며 구경을 하고 너무 예뻐요 너무 좋아요, 했더니 둘째 따님이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한다. 학창 시절을 함께 했을 이 따뜻하고 예쁜 집. 집 곳곳에 두 딸이 어렸을 때부터 그린 그림들이 그대로 붙어 있고, 창문에 적힌 사랑스러운 낙서까지 그대로 간직한 추억의 집이 다만 예쁘다는 말로 정리가 될까. 우리에겐 '와, 예쁘다'겠지만, 그저 '예쁘다'로는 정의 내릴 수 없는, 그런 의미겠지. 강릉을 떠나 속초로 가는 길, 먼저 시간표까지 검색하면서 신경 써주셨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터미널까지 데려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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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내 얘기들도 부담 없이 늘어놓고 또 듣고. 솔직한 호스트 어머니께서는 에어비앤비 하면서 힘드셨던 이야기, 즐거웠던 이야기, 묵었던 손님들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들도 많이 해주셨다. 추울 때 여행을 하니, 숙소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 또 이런 즐거움도 있구나, 이런 여행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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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면서 우리는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사람을 만나고, 상상도 못 한 새로운 인연이 생기고, 새로운 사건이 생기고, 그런 해프닝을 마음 한구석에서 꿈꾸기도 한다. 여행 중에는 그런 사소한 해프닝이 멋대로 로맨틱해지기도 하고 별것 아닌 우연이 인연인가 싶어 지기도 하니까. 그러나 보통 여행에서 돌아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일상 속의 나는 내 생각보다 덜 로맨틱하고 덜 여유롭고 덜 소소한 사람일 때가 많아서. 그래서 또또 여행을 떠나기도 할 거다. 사소한 것에 감동하고 감탄하고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 수 있고, 또 누구와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여행에서의 나 자신이 그리워서. 아마도 진짜 내 모습을 찾는다는 명목 하에. 그런데 무엇이 진짜 내 모습일까. 여행에서의 나와 일상에서의 나는 다른 걸까. 여행에서 만났던 낯선 이를 돌아온 일상에서 만난다면 어떨까. 나는 아직 여행 중에 사랑에 빠져 본 적도 없고, 여행 중에 누군가와 예정에 없이 긴 시간 동행을 해본 적도 없다. 여행 중 누군가를 깊이 사귀어 본 적도 많지 않다. 아무튼.
여행에서 돌아온 주말의 끝, 주일 예배를 마치고 차분히 책을 좀 읽으려고 카페에 갔다. 책을 읽고 있는데 메시지가 도착해서 확인했더니. 오. 강릉 에어비앤비 호스트 어머니셨다. 서울에 올라오셨다고 혹시 차나 한 잔 하지 않겠냐고. 깜놀. 어머니께서 연남동에서 택시를 타고 내가 있는 카페로 와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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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앉아 어머니 집 식탁에 앉아 수다를 떨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나눴다. 얘기 중 갑자기, 서울 딸 네 집에 가서 오늘 밤에 같이 자자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권하셨다. 자는 건 조금 그렇고, 얼굴 보고 인사나 하고 가자 해서 함께 '강릉 에어비앤비 호스트 어머니의 따님 서울 집' 근처의 카페로 이동했다. 강릉서 내 아침을 준비해주고 여기저기 차를 운전해줬던 그 둘째가 학원 끝나고 오기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아직도, 계속 오늘 밤 여기서 자고, 내일 같이 강릉에 새로 생긴 좋은 호텔에서 하루 자고 조식 먹고 오자고 나를 꼬셨다. 정말 어마어마한 제안이었다.
학원을 마치고 온 작은 딸은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리의 서프라이즈가 대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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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끝이 난 일상, 게스트하우스에 단 며칠 머물고 간 게스트를 마치 딸 친구 대하듯이 엊그제도 우리 집에서도 자고 갔으니 오늘도 부담 없이 같이 자고 가요, 하시다니(물론 모든 이에게 그리 대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고 대하니 다양한 게스트들을 겪으면서 상처도 받고 힘든 순간도 많으셨을 거다. 쉽지만은 않으셨을 거다. 나에게 하셨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어머니의 마음이 나에게 잘 전달되어왔다.
그리고 나니 정말, 강릉에 놀러 갈 친구네 집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 또 가게 될지 정해진 것은 없지만, 강릉에 두고두고 그리운 곳이 생겼다. 그리워할 곳이 생겼다. 꽃 피는 봄이 오면. 오죽헌에 예쁘게 꽃이 피고, 경포호를 등 따숩게 걸을 날이 오면 꼭 또 한 번 가야지. 그때 또 도란도란 마주 앉아 방금 사온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야겠다. 헷. 그때야말로 나도 일상 같은 여행을 한번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 강릉에 생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