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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디브라운 May 03. 2018

살아남은 자의 삶에 대하여  : 제주도

제주는 뭐가 좋냐면

무언가 얹힌 것처럼, 며칠째 묵직하게 가슴을 누르던 것이 있었다. 4.3 평화 박물관에서 마주한 거의 모든 것이 견디기 힘들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거북했던 건 '대살'이라는 낯선 말이었다. 

대살(代殺). 당시 경찰과 군인들이 제주 도민을 학살할 때, 학살 대상자를 찾지 못할 경우 그 사람 대신 아버지고 어머니고, 형제고 자매고 가족 누군가를 대신 죽이는 것을 말한다. 마을의 주민들을 모두 운동장으로 나오게 하고, 주민들이 빠져나간 마을은 불태웠다. 나오지 않은, 혹은 나오지 못한 사람은 무차별 학살했다. 영문도 모른 채 운동장에 끌려 나온 수많은 주민들 하나하나 대조해 자리에 없는 도피자는 가족을 대신 세웠다. 부모와 아내, 혹은 어린 자식 누구라도 대신. 
할머니 한 분이 증언했다. 할머니의 기억 속 그 날, 죽은 사람의 반은 대살자였다고. 

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그곳에 억울하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는가 마는 대살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다. 할머니의 눈물이, 마치 어제 겪은 일을 회상하는 듯 끔찍이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해도 해도 너무 하다. 기가 막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 단어가 잘 소화 되질 않았다. 

_
아침에 일어나 눈도 비비기 전에 침대에 누워 꺼내 놓은 묵상집을 펼쳤다. 그리고. 이 날의 말씀을 읽는데, 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골 5:14-15)

처음 읽는 말씀이 아니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되레 너무 익숙하게 듣고 알고 있던 이야기였다. 대살, 대신 죽는다는 것은 나에게 전혀 생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누군가 날 위해 대신 죽어 주어 살아있는 존재라는 걸, 아마 까마득히 잊고 있었나 보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대신 죽어주셨다는 것, 사실 이건 기가 막힌 일이다. 심지어 나는 예수님의 가족도 아니었다. 며칠 전 느꼈던 그대로라면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일인 거다. 며칠 전부터 나의 가슴을 무겁게 했던 이 기막힌 이야기가 사실은 나의 이야기였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_
아침 산책을 나와 오늘은 어제와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오늘도 바닷바람을 맞으며, 홍이삭의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을 따라 불렀다. 질질 눈물이 났다. 살아남은 나에게 또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허락하시다니.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이 모두 너무 아름다워, 감사가 절로 고백되는 아침이었다. 

 _
숙소에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이왕 늦은 거 근처에서 점심까지 먹고 느지막이 비자림과 용눈이오름에 가기 위한 길을 나섰다. 한참 버스를 타고 가다 환승을 하기 위해 내렸는데 반나절만에 제주에 겨울이 찾아온 것 같았다. 겨울바람이 불고, 비가 아니라 눈이 흩날렸다. 하늘은 찌뿌둥 구름 잔뜩 이었다. 기온이 내려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두꺼운 옷 자체를 가져가지 않아서 뭘 챙겨 입고 나올 수도 없었다. 게다가 아침 산책 때는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용감히 야외 스케줄을 짰는데,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을 만큼 점점 추워졌다. 20분쯤, 남은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을 들여다보며 갈팡질팡 고민을 시작했다. 이 날씨에 오름이라고. 이 날씨에 비자림이라고. 과연 옳은 선택일까. 

이 와중에 풍경은, 언제나 그렇듯 최고로 평화롭고요. 

아름답고요. 

스위스 같고요. 

크 진짜 외국 같다.

_
안 되겠다 싶어서 방향을 틀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다른 할 일은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고 싶어, 오직 이 생각뿐. 가만히 서있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를 만큼, 머리 안쪽이 띵해질 만큼 추웠다. 잘 못하다가는 감기에 옴팡 걸릴 것 같아서 남은 여행을 위해서, 핑계를 대고 집에서 나온 지 한 시간만에 다시 집에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를 타고 한 20분쯤 지나니 그제야 몸이 녹았다. 몸이 녹으니 환하게 개인 창 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버스가 의귀라는 곳을 지났다. 엇 너무 예쁘네 이 동네. 바깥 풍경을 보다가 충동적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바깥은 꽤 따뜻해져 있었다. 갑자기 내린 정류장 주변의 마을도 아기자기, 너무 예뻤다. 같이 내린 할머니께서 나를 힐끔힐끔 보시다가 여기 사느냐고 물으셨다. 아니요, 마냥 밝게 대답했다. 저 의귀리 가려고요. 할머니 멘붕. 반은 알아듣고, 반은 알아듣지 못한 제주 방언으로 다그치셨다. 길을 잘 모르면 물어보고나 내리지, 여기서 의귀리를 어떻게 가려고 그러냐고. 그런 말씀이셨다. 

그랬다. 제주의 시골에서는 바깥 풍경이 너무 예쁘다고 아무데서나 내리고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내려서 잠깐 걷다가 다시 버스 타고 들어가야지, 그렇게는 안되는 거였다. 할머니는 어찌할 바를 몰라하시며 다른 방향으로 지나가는 버스를 세워서 의귀리로 간다는데 태워가서 갈아타라고 하면 안 되냐 기사님께 물어보시고, 또 지나가는 할아버지께 묻고. 

_
하지만 차는 없었다. 카카오 택시는 올 수 없단다. 올 수 없는 데가 왜 이리 많은지. 아까 내릴까 말까 고민하면서 지나친 2-3 정거장쯤 다시 거슬러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 해서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저 걸어서 갈게요. 가볼게요. 씩씩한 척하며 밝게 인사를 건네고 뒤돌아 걸었다. 할머니는 가시지도 못하고 붙잡지도 못하고.

솔직히 자신 있었다. 저 괜찮아요 오른쪽, 의귀리로 걸어가 보겠습니다! 

_

흐헤헤헤헤헤. 걸었다. 한 시간 반도 넘게. 체감상으로는 한 3시간쯤 걸은 것 같은데 실제로는 1시간 반쯤 걸었던 것 같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바람은 여전히 많이 불었다. 사람은 당연히 없고, 차도 거의 없는 좁은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걷는 동안 양쪽 도로로 버스는 한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의귀리가 예뻐서 마을 구경을 하려던 건 까맣게 잊고 버스가 지나가면 얼른 타야지 했는데 웬걸 버스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계속 걸었다. 오래오래 걸었다. 그 와중에도 풍경은 계속 예뻤다. 멈춰서 사진을 찍느라 더 오래 걸었다. 그러다가 나 이제 더 이상은 못 걸어! 할 즈음 카페가 하나 있었다. 

_
역시 죽으란 법은 없다.  

따뜻한 차를 시키고. 달달한 시나몬롤도 하나. 

사진에는 안 찍혔지만 내가 차를 마시며 한동안 쉬는 동안에 갑자기 바깥에서 눈이 왔다. 그렇게나 걷고도 눈을 피한 게 좋아, 나는 행운아라며 웃었다. 하하하. 

_
잘 쉬었으니 집에 가려면 다시 어디라도 걸어가서 뭐라도 타야 했다. 또 걷습니다. 버스가 다니는 길로 더 거슬러 올라갔다. 

하 심장 폭행. 카페 멍뭉이들이 따라 나왔다. 

따라오다가 뭘 발견했는지, 몽땅 엉덩이를 보여주고.

거의 큰길까지 두 마리가 따라 나왔다. 힝 귀요미들. 돌아가는 길을 걱정했는데 다시 뒤돌아 집으로 잘 들어갔다. 

30분쯤 더 걷고, 다행히 버스를 탔다. 살았다. 

_
다시 돌아온 표선리. 하루 종일 걸은 것 밖에 한 일이 없는데 어느 때보다도 제주 풍경을 많이 본 것 같다. 

그냥 들어가기 아쉬우니 커피 한 잔 하자고, 또 집 앞의 카페로. 

생각해보니 표선에 있는 동안 매일 저녁을 알토산 카페와 함께 했다. 

요런 분위기. 

창 문 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카페. 

완전히 깜깜해진 뒤에,

카페를 나왔다. 

_
제주의 길 위를 걸으면서 살아남은 자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 아마도 나와 가까운 이가 나를 위해 대신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살아남은 자의 삶에 대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그 사실을 알고. 
너무 막연하지만 알아야 했다. 생각해야 했다. 그게 바로 나의 삶이기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조금 새로워진 기분이었다. 다시 사는 기분이라고 말하면 조금 과장일까. 하지만 적어도 이 날 만큼은 분명히 그랬다. '죽음'에 대해 깊게 깊게 통감하고 '생명'에 대해 조금 더 진하게 느꼈다. 

_
그러고 보니 그즈음 내 기도 제목이 그랬다. 나는 왜 살아야 할까요. 생명이라는 게 왜 이렇게 저에게 하찮게 느껴질까요. 
주위에 사는 게 힘들다는 사람들은 많은데, 나도 그 사람들에게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말하기 어려웠다. 살기 싫다, 사는 게 힘들다는 말에 도리어 깊이깊이 공감이 갔다. 사는 게 의미가 없으니, 생명 또한 나에게 별 의미가 없다. 자연히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의 존재 또한 점점 희미해져 갔다. 

_
말씀하고 싶으신 게 있으신 거다. 깨닫게 하고픈게 있으신 거다. 놓치지 않고 싶었다. 무슨 이야기든 들려주세요. 마음을 어느 때보다도 활짝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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