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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동네에서 비를 만났다. 아침 잠결에 저녁부터 비 예보가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잘 못 들었나. 그칠 기미가 없는 비를 보며 얼른 기상 앱을 켜 확인해보니 내일 오전까지 내내 우산 표시다. 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얼른 뛰었다. 집에 가려면 뭘 타야 하나. 낯선 노선을 확인하고 있는데, 머리에 톡톡 와서 닿던 빗방울이 멈췄다. 고개를 위로 쳐들어보니, 머리 위에 비스듬히 내 쪽으로 우산이 하나 기울어져있다. 어느 친절한 이가, 버스 노선을 확인하는 그 찰나 앞에 있는 우산 없는 이에게 우산을 기울여주고 있었다. 몇 초 동안, 우리는 같은 우산 아래 서 있었다. 누군가와 같은 우산을 받치고 섰는, 그것이 얼마만큼의 가까움인지. 선뜻 모르는 이를 우산 안으로 들이는, 그것이 얼마만큼의 친근함인지. 감동에 쉬운 여자는, 그 순간 그만 쉽게 감동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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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꽤 편안한 상태인 것 같은데 뭔가 걸리는 말들이 많다. 안의 것을 발산하며 회복되느라 뱉어 놓은 말들이 다시 내게 와서 닿을 때, 내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진 것에 자꾸 불편해진다. 뱉을 땐 내 말이라도 받아들이는 건 각자의 몫이니. 오해받기 싫으면,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으면 된다. 그럴 수 없다면 오해받기를 두려워하지 말자고 의연한 채 해본다.
'예민한 사람'임을 좀 '소심한 사람'임을 인정하는데 오래오래 걸렸다.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실제 나와의 메울 수 없는 간극에 자꾸 자존심 상하며 살았다. 번번이 스스로 특별해지고자 하는 선택들을 하려 하며. 혹은 피곤하게도 증명들을 하려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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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동경하며, 함께 할 때 기분 좋은 패배감을 느끼게 하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특별해지려고 애쓰지 않는 타입의 사람들. 평범한 것을 지키려 성실히 애쓰는 이들. 예를 들면 우리 엄마 같은.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그들 곁에 있으면 편안해지면서도 어쩐지 닿을 수 없는 사람들 같다. 실제로 잘 닿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라고 왜 없겠는가. 스스로 특별하고픈, 드러내고픈 것들이. 상대에게서 그런 모습을 발견한다고 실망하지는 않으면서, 나 자신에게는 왜 수시로 실망하는 걸까. 어쩜 이래. 사람이 특별해지고 싶은 것은 매우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내용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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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그래서, 예민해도 괜찮아. 우리는 더 예민해져야 해, 하고 말해주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너무 편안해지고 만다. 오늘이 그랬다. '나는 사랑한다, 상처가 났을 때에도 그 영혼의 깊이를 잃지 않고 사소한 체험 때문에 멸망할 수 있는 자를' 니체의 말이다. 그리고 은유 작가님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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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나는 왜 쓰고 있는가, 무엇을 쓰고 싶은가. 어떻게 쓰려고 하는가.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갑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