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디서 저녁 먹어?
오늘은 어디서 저녁 먹어?
유치원에 아이를 하원 시키러 가면 아이는 신발도 신지 않고 날 보자마자 묻는다. 오늘은 누구 집에 가냐고. 어디에서 저녁을 먹을 거냐고. 늘 다 같이 북적북적 먹는 저녁식사가 익숙한 우리 아이는 "오늘은 엄마랑 둘이서 오붓하게 저녁 먹을까?" 하면 울고불고 싫다고 난리가 난다.
우리에게는 주로 세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엄마 집, 언니 집, 우리 집. 남편과 형부가 둘 다 늦게 퇴근하다 보니 오붓하게 가족끼리 저녁 먹기는 거의 주말에나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 외에 월화수목금은 북적북적 우당탕탕 정신없는 저녁시간이다.
엄마 집에 가면 가장 영양가 높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 밥과 따뜻한 국, 아이들 반찬, 어른 반찬 골고루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에피타이저로 고구마, 삶은 계란, 빵 등을 먹고 후식으로 과일도 먹는다. (엄마 집을 끊어야 살을 뺄 수 있다) 엄마 집에 가는 걸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나와 언니다. 부족한 요리 솜씨로 뭘 해 먹어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엄마 집이니 눈치 볼 사람 없이 세상 편안한 곳. 밥보다 노는 것이 중요한 아이들은 장난감이 없다고 종종 할머니 집을 안 간다고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밥에 과일에 간식까지 배 터지게 먹고, 자기들끼리 방에서 속닥속닥 깔깔 거리며 잘 논다.
아빠는 우리가 가면 손녀들도 보고 행복하니 매일 오라고 하지만 엄마 집 출입의 가장 중요한 결정권자는 엄마다. 순식간에 집을 엉망으로 만드는 세 어린이들 때문에 우리의 출입은 자유롭지 않다. 엄마는 우리가 갈 수 있는 날을 일주일에 2-3일로 제한했고, 주말은 암묵적으로 출입금지다.(물론 어길 때도 많다)
언니 집에 가면 일단 놀이터에서 그네 한 번씩 타고, 집에 가서 할 일을 하나씩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신나게 놀기 시작. 평화로운 날에는 셋이서 온갖 장난감과 소품을 동원해서 창의적인 놀이를 한다. 하지만 뭔가 틀어진 날에는 셋이서 돌아가면서 울고 싸우고 전쟁이 따로 없다. 전쟁이 끊이지 않으면 언니는 후다닥 간단하게 저녁밥을 차린다. 밥을 먹으러 모인 아이들은 셋이서 가위바위보로 TV 프로그램 볼 순서를 정한다.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만화 하나씩 돌아가면서 보면 식사시간 끝.
물론 밥 먹고 나서도 헤어지기란 쉽지 않다. "엄마, 10분만" 10분 뒤에 이제 가자고 말하면, "무슨 10분이 이렇게 짧아!! 진짜 마지막으로 10분만" 이런 무한 굴레를 겨우 끊고 설득해서 옷을 입혀 언니 집을 퇴장하기까지 최소 한 시간은 걸린다. 언니 집에서 우리 집은 걸어가도 되는 거리인데 버스를 좋아하는 딸은 꼭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버스처럼 큰 차가 좋다나.
우리 집에 간다고 하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내 딸. 우리 집에서 밥 먹는 게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친구들 집에 초대하는 것도 어찌나 좋아하는지). 가끔 언니 첫째가 우리 집에 오늘 안 온다고 하면
"언니, 그럼 언니가 좋아하는 카페 갔다가 갈까? 문방구는 어때?"
"그래? 그럼 너희 집에 갈래. 근데 카페 돈은 누가 내?"
"우리 엄마"
벙쪄있는 돈 내는 사람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어디갈지 정하는 맹랑한 어린이들.
엄마, 언니보다 요리 하수인 나는 저녁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 어렵다. 셋이서 집에서 신나게 노는 동안 식판을 세 개 꺼내고 냉장고를 열심히 뒤져본다. 너무 먹을 게 없으면 급하게 B마트로 주문한다. 반찬 칸 3개를 채우지 않으면 "이모, 반찬이 이것뿐이야?"라는 빠른 피드백을 날리는, 먹는 게 중요한 언니의 첫째. 조카의 눈치를 보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 위해 반찬 칸 3가지를 꾸역꾸역 채우느라 바쁜 저녁 시간이다. 저녁을 먹고도 헤어지기 아쉬워 셋이서 목욕까지 하고, 머리 말리는 동안 그림 그리기, 종이 접기까지 하며 버텨보는 어린이들. 손에 사탕 하나씩 꼭 쥐어주고 겨우 겨우 집에 보낸다. 마지막 문 닫히는 순간까지도 끝없는 이별의 인사를 하는 아이들.
사랑해. 내일 또 만나.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매일 저녁을 같이 먹는 언니의 두 딸과 내 딸. 밥 먹는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 시간만큼의 생활과 사랑이 아이들 마음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가길.
항상 같은 사람과
밥을 먹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먹은 밥의 수만큼 생활이 쌓인다.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