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지관 소설반에서

1)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한평화

복희는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렜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머리염색도 미리 해두었다. 어제 입어보았던 옷을 입고 딸이 사준 폭신한 브랜드를 신었다. 옷도 살이 쪄서 못 입겠다는 딸의 옷이다. 딸이 가까이에 살아 좋았다.

“엄마, 이 신발은 많이 걸어도 발바닥이 전혀 아프지 않아. 공부하려면 지하철도 타야 하고 오래 걸어야 되니까.”

사는 것이 바빠 잊혔던 젊은 날의 꿈을 찾아 소설반에 등록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오늘 첫 수업이다. 기대하며 교실 문을 열었다. 자신보다 젊게 보이는 여자 두 명과 흰머리의 멋있는 두 명이 자신을 쳐다보았다. 오른쪽으로 남자 세 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복희는 교실 전체를 휭 쳐다보았다. 나이는 먹었지만 그들의 눈동자들은 살아있었다. 꿈이 있는 한 나이는 없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들도 다 나와 같은 마음일까? 드디어 강사님이 들어오셨다.


“안녕하세요! 소설반을 맡은 한수희입니다. 6개월 동안 일주일에 두 시간씩, 정확히 한 시간 50분씩 같이 지낼 것입니다. 건의할 사항이 있으면 수시로 말씀해 주세요.”

“선생님, 결혼은 안 하셨죠?”

머리 하얀 젊잖게 보이는 할아버지가 물었다. 모두 웃었다.

“결혼을 못했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어서요. 그럼 지금부터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복희가 일어섰다.

“저도 어르신과 동감입니다. 선생님이 결혼하셨다면 어쩐지 안 어울릴 거 같아서요.”

아까 말했던 할아버지가 숙였던 고개를 들며 복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제 이름은 복희입니다. 열심히 살다가 이제 꿈을 찾아와 보니 너무 늦게 온 거 같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제가 젊어 보인다고요? 제 보이는 것은 다 가짜입니다. 머리는 염색했고요, 얼굴은 아이크림으로 떡칠을 했어요. 그러나 마음만은 진실을 가지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김길순입니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오빠만 공부시키고 나를 2학년 때 중퇴 시켰어요. 어머니는 아프시고 아버지와 저는 열심히 농사를 지며 오빠 뒷바라지를 했어요. 오빠는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담임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유학 갔어요. 떠나면서 나를 잡고 고맙다며 목 놓아 울었지요. 자신이 공부한 책이랑 다락방에 다 있으니 공부하라 했지요. 저는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나왔습니다. 자격증도 여럿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까 말한 할아버지가 일어났다.

“나는 1·4 후퇴 때 한강을 건너 북에서 남으로 건너왔습니다. 고생도 많이 했지요. 자식은 다 출가했고 마누라도 하늘나라로 가서 하루 시간도 넉넉하고, 죽을 시간은 가깝고 해서 내 일생을 소설로 써볼까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젊은 강사님한테 젊은 에너지를 받고 싶은 마음에서 결례를 하였습니다. 미안합니다.”

다른 학생이 말했다.

“이제 강사님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미소를 띠며 강사가 일어났다.

“연애도 해봤어요. 그러나 시집가기 전에 무엇인가 남기고 싶어 다 뿌리치고 글만 쓰다가 문학상을 수상하고 이렇게 어르신들과 만나게 되었어요. 이제 10분 쉬다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책을 낭독하겠습니다.”


강사 “ 그는 자문하고 있었다. 사람이 변을 당하고 죽어가고 있는데 너는 겁을 집어먹고 뺑소니치려고 하다니, 넌 대단한 사람인가?”

복희, 길순, 재국, 수강생 등 귀를 쫑긋하며 듣고 있다.

강사 “ 부자라서 가진 물건을 빼앗길까 봐 겁이 나는가? 세몬, 안될 일이다. 그래서 구두장이 세몬은 되돌아서서 그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책을 덮고 교단으로 가며) 자, 여기까지 들으시고 혹시 뭐 떠오르는 생각 있으세요? 뭐든 괜찮아요.”

재국이라는 학생은 와중에도 휴대폰 주식 시황 들여다보고 있었다.

복희 “ 사람은, 어려운 사람을 모른 체하면 안 된다, 서로 도와야 된다! 이 천사도 얼어 죽을 뻔 한 걸 세몬이 도왔으니까.”

재국 “ 돕기는 얼어 죽을.”

복희 “ (재국을 돌아보며) 뭐라고요?”

재국 “ (여전히 휴대폰만 보며) 다 제 맘 편하자고 그런 거지. 양심에 찔리니까.”

복희 “ (언짢아서) 아니 왜 남 말에 토를 달아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정식으로다 의견을 내지.”

강사 “ (웃으며) 찔려서건 어떻건, 저는 세몬이 되돌아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은데요. 위선도 일단 자꾸 하고 오래 하면 진짜가 되잖아요?”

길순 “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며) 그럼요!”

강사 “‘사랑은 동사’라는 말이 있어요. 구두장이 세몬은 결국 되돌아와서 사나이를 돕습니다. 외투도 신발도 다 벗어주고요. 집에도 데려가요.”

복희 “ 사랑요. 그게 사랑이에요.”

강사 “ 그러면 복희 님의 대답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복희 “ (웃으며) 네! 그렇잖아요? 사랑이 없으면 못 살죠. 아침에 일어나기도 싫고 밥 먹기도 싫고. 세상 다 귀찮아서 자꾸 잠만 자게 되고. 사는 이유가 사는 것이지요.

재국 “ 사랑? 사랑이 밥 먹여줘? 사랑 먹으면 배가 부른가? 아리석기는···”

복희/길순 “뭐요?”

재국 “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내 알려줘요? 사람은 돈! 돈으로 살아. 이 여자들아!


강의실 분위기 갑자기 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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