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재국 “평생 남편들이 피땀 흘려 돈 벌어다 주니까. 배부른 여편네들이 카페나 몰려다니면서 남정네가 사랑을 주네마네 사랑타령이나 하고 앉았고 말이야.”
길순 “(어이없는) 아니, 봤어요? 우리가 카페나 몰려다니면서 사랑 타령하는 거 봤냐고요?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아니군요.”
재국 “(헛기침) 흠.”
강사 “저기 어르신들.”
복희 “ (불쑥) 그럼 가족들이 돈 때문에 살았던 말이에요? (짐짓 갸웃하면서) 등록할 때 보니까 딸이 돈 내주는 거 같던데?”
재국 (!)
복희 “요 옆에 초등학교 선생이랬죠? 전에 자랑하셨잖아요.”
재국 “(벌떡 일어서며) 거참, 갑자기 남의 딸 얘긴 왜 꺼내고 그래요?”
복희 “오늘 보니, 따님이 아버지를 여기 등록시킨 이유를 알 거 같아서요.”
길순 “(재국에게 눈 흘기며) 나도.”
강사 “(싱긋 웃고는)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어요.”
강사, 인사하고는 책 챙겨 들고 재국을 쳐다본다. 강생들도 시끌벅적하게 소지품 챙겨 뒤따라나간다.
재국 “ (조용히 읊조리며) 으이그, 방 안 퉁수가 되지 말고 사람들하고 잘 좀 어울리랬는데, 딸한테 미안하네.”
복희는 곰곰이 생각했다. 사람이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재국은 돈으로 산다고 단순 솔직하게 말했다. 사랑과 돈, 두 가지가 다 맞는 말이다. 복희는 사는 이유로 목적과 가치를 표현했고 재국은 수단을 말하였다. 사랑을 위하여 돈이 필요하다. 밥을 굶기고 어떻게 사랑을 주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돈의 가치는 중립이다. 가진 자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복희는 복지관 1층 카페에 잘 들르는 편이다. 카페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재국을 보았다. 그때의 인상하고 지금 소설반에서 공부하는 모습하고 연상 지어 보아도 불안해 보이고 딴 말하는 모습은 같았다. 주식을 하면 불안하기는 하지, 그러니까 주제를 못 찾아 뚱딴지같은 말을 하게 되고, 복희는 나름의 이유를 찾았다.
한 주가 금방 지나갔다. 소설반으로 가는 복도에서 일이 났다.
재국 “ (무심코 걷다가 앞으로 절버덩 넘어진다) 어이쿠, 웬 물이야? 누가 그랬어? 누구야? (허리를 짚으며 앓는 소리를 한다)”
재국은 바로 앞 교실, 미술반 안에 물이 반쯤 남은 들통이 보이자, 냉큼 들어가 다짜고짜 들통을 걷어차 버린다. 복도에 물이 흥건하다.
수채화반 강사 “아니, 뭐 하시는 거예요?”
재국 “ 적반하장이네. (시계를 보며 소설반 교실로 들어간다)”
수강생 모두 (시끌벅적한 복도에 나와 구경한다.)
복희 (청소실에서 수건을 가져와 복도 바닥 물을 적신다)
길순 “ (미술반에서 빈 들통을 가져오며) 물을 여기에 담자.”
강사 “ (출석부를 들고 오며) 어마나, 물난리네. 청소 담당자를 불러올게요. 학생들은 교실로 들어가요.”
강사가 없는 사이, 복희는 재국에게 호통 친다. 재국은 삿대질을 하며 복희를 노려본다. 강사가 오자 안 그런 척 제자리에 앉는다. 교실은 갑자기 조용해진다. 수강생 눈을 크게 뜨고 강사님만 주시하고 있다.
강사 “톨스토이의 ‘두 노인’ 재미있었나요?”
모두 “(함께) 네!”
재국 (대답이 없다)
복희 “ 방금 있었던 물난리가 두 노인과 닮았어요.”
강사 “ 두 노인의 주인공 예리세이와 예핌의 행동은 소설반 친구와 비슷하네요.”
길순 “ 네, 재국 씨는 예핌을 상징하고 예리세이는 나와 복희 씨를 닮았어요.”
강사 “ (웃으며) 맞아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재국 “ (갑자기 일어나 주위를 훑어보며) 예핌은 어떤 사람인가요?
복희 “ 예핌은 주위는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이기주의자이죠.”
재국 “ 그럼, 내가 이기주의자라고?”
복희 “ (재국을 바라보며) 왜, 틀렸나요?”
재국 “ 선생님, 저런 못된 반장님 때문에 이 수업 듣기가 어렵네요.”
강사 “ 두 노인을 읽었다면 이해가 가능했을 텐데요.”
재국 “ 선생님, 수업시간에 주식 시황 보는 거와는 다른 문제이지요. 암튼, 저 반장 갈기 전에는 나는 수업 듣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