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숙의 하루

5. 목욕탕 안에 맛있는 비빔밥이?

by 한평화

낙엽이 하나 둘 떨어졌다. 바람이 불자 우수수 잎사귀를 쏟아냈다. 나무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뿌리만 남기고 예쁜 옷을 털어버렸다.


7층은 생각했다. 김장을 해야는데, 재료는 다 준비했으니까 남편 쉴 때 날짜를 잡아야지. 마트에 가서 싱싱한 굴을 샀다. 올해는 굴김치를 맛나게 담고 싶었다. 김장날이 왔다. 가을 김장으로 일 년 치 반찬은 해 놓는 것이다. 남편이 고마웠다. 무거운 것도 잘 들어주고 조수노릇을 톱톱히 해주었다. 요즘 김치를 사 먹는 가정도 많이 있는데 7층은 해마다 담았다. 우울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해를 빼고는 손수 했었다. 김장에는 순서가 있다. 먼저 마트에서 싱싱한 배추를 사서 다듬는다. 간수 뺀 굵은 소금물을 풀어 배추에 적신다. 오후 늦게 절여 다음날 아침 일찍 배추를 깨끗이 씻어 소쿠리에 물기를 뺀다. 준비된 재료를 한 장 한 장 배추에 넣는다. 드디어 배추가 김치가 된다. 말은 쉬워 보여도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준비된 재료라는 것에 어마어마한 영양과 수고가 들어가야 한다. 김장김치는 사랑으로 담아야 덜 힘들고 피곤치 않으며 맛도 있다.

자신에게 따뜻하게 잘 알려주는 10층 복희 할머니에게는 겉절이로 조금 담았다. 따로 한 통은 넉넉히 눌러 담았다. 조용한 8층 아이들을 위해서다. 귀가 예민한 딸이 와서 위층이 왜 이렇게 조용해졌는지 놀라지 않았던가, 8층이 고마웠다.

“안녕하세요? 엄마, 7층 아주머니가 뭐 가지고 오셨어.” 4학년 아들이 반겨주었다. 김치통 뚜껑을 열었다.

“맛있겠네요. 좋아라. 엄마, 나 이 김치로 밥 먹고 싶어.” 둘째 아들이 박수를 쳤다.

“어제 김장했어요. 바쁘실 것 같아서. 맛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허, 김치를 이렇게 큰 통에 맛있겠어요. 들어오세요.”

7층은 바쁘다고 하며 주고만 나왔다. 8층 아주머니의 놀라운 모습과 순간 눈물이 어린것을 보았다.

그날 오후였다. 8층이 김치통과 박스를 가지고 왔다. 박스 안에는 차 세트가 들어있었다. 겨울 건강에 좋은 생강차, 쌍화차, 국화차가 있었다. 쌍화차와 국화차를 마셨다.

“김치가 너무 맛있어요. 아이들이 맵고도 맛있다고 하며 잘 먹어요.”

“아이들이 고마워서요. 요즘은 뛰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 걱정도 됐어요. 내가 너무 압박을 해서 가만히 있는 것일까, 혹시 어디라도 아픈가 하면서요.”

“아이들은 태권도 학원에 다녀요. 몸이 뛰고 싶어 근질근질하다고 해서요.”

“아, 그랬군요. 잘하셨네요.”

“학원에 다녀와서 숙제하고 저녁 먹고 폰으로 놀지도 않고 피곤하다며 바로 자요.”

“폰을 안 한다니 잘 됐네요. 김치 담았더니 어깨도 허리도 아파서 목욕 가려고요.”

“저도 목욕탕에 가고 싶었는데. 같이 가서 제가 등 밀어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럼, 좋지요. 고마워요.” 7층이 웃으며 말했다.

“맛있는 김치 한통이나 받았는데, 당연히 어깨안마도 해 드릴게요.”

“안마도 할 수 있어요? 실력자네요.”

“제가 과거에 조금 세신사 했었어요. 남편 사업이 망했을 때.”

“힘들었겠네요.”

“아니요. 때 미는 방법이 다 있어 어렵지는 않아요. 그런데 뜨거운 물을 만지면서 손가락 지문이 없어지는 것 같아. 남편이 그만두라고 했지요.”

“목욕탕에는 계급 없는, 가장 원시적이면서 민주적인 모습이 있어요. 경제력이 좋으면 마사지까지 하고, 없으면 조용히 때를 밀고 가지요.”

“저는 이 안에 계급사회가 보였어요. 처음에는 불평을 많이 했으나 고객이 있으니까, 세신사가 살 수 있는 것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지요.”

“세신 가격이 여자와 남자가 다르네요.”

“전신 때 미는데 여자는 30,000원 남자는 25,000원이지요. 여자 때 밀고 마사지하면 60,000원, 오이마사지하면 얼마, 가격이 다 달라요. 100,000원 이상도 있으니까요.”

“와, 그런데 이 계급사회가 서로 상부상조하며 잘 운행되고 있네요.” 8층이 계급사회라는 말을 사용하자 깜짝 놀랐지만 자신의 입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와 놀랐다.

“제가 말한 것은 정치 계습사회가 아니고 경제 계급사회였는데 잘 이해하시네요.”

“당연하죠. 인도도 그 유명한 카스트제도를 버리고 민주사회로 열심히 가는데요.”

“민주사회와 경제 계급사회가 서로 잘 지내네요. 마치 비빔밥처럼요.”

“맞아요. 서로 필요하니까 다툴 필요도 없고 웃으며 지내는 것이지요.”

“하하, 호호”

멀리 집으로 가는 버스가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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