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숙의 하루

7.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by 한평화

말숙의 도서관 근무도 한 달이 넘어간다.

겨울 방학 두 달 동안에 ‘독서마라톤’ 행사는 잘 진행되고 있었다. 100권을 다 읽은 친구들도 있고 150권을 향하여 달려가는 아이도 있다. 도전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니까 아이들은 부지런히 달리는 것이다. 6학년이 되는 친구는 수학학원 가기 전에 들러 5권 정도를 열심히 읽고 학원 다녀와서는 3권을 읽은 후 놀고 싶어 좀이 쑤신다. 놀이방에 가서 색종이를 접고 열심히 논다.

아이들에게 몇 학년이니 물어보면 한 학년을 높여 말한다. 정확히는 아직 5학년이다. 그러나 6학년이라고 말한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면 올라가면 6학년이요,라고 한다. 어른들은 나이를 적게 말하고 싶어 하는데 아이는 정 반대로 높여 말한다.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라고 어른은 한 살이라도 젊어지고 싶어지는 심정인가 보다. 이 도서관이 생기기 전에 이 터는 원래 쉼터였다고 한다. 도서관 옆에 작은 방이 있는데 놀이기구가 있어 책을 보다가 잠시 놀기도 한다.

역사책을 좋아하는 친구는 책 표지에 나오는 인물이 누구일 거라고 생각하느냐,라고 거꾸로 말숙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주로 ‘Why’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이 다 끝나면 유익하면서 재미있는 책을 선정해 도서관에 비치해야 한다. 의미와 재미가 함께 있는 책이 무엇일까? 좋은 책을 선정하여 아이들이 꾸준히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사서가 할 일이다.


아이들은 말숙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처음에는 할머니라고 부를까 봐 은근히 걱정했다. 말숙은 1년 전부터 염색을 하지 않아 머리가 온통 흰색이었다. 물론 할머니인데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자신을 업신여기거나 어리광을 부릴까 봐 염려했던 것이다.

아이들한테 대접을 받으려면 내가 먼저 아이들을 소중한 인격체로 대접해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선생으로부터 존경을 받는지, 못 받는지를 먼저 안다. 가정에서 개를 키우면 누가 서열 1위인지 먼저 아는 것처럼.

역사를 좋아하는 아이의 공책에 물이 튀기어 얼룩이 졌다. 말숙은 미안해하며 말을 했다. “이 공책 새로 만들어 줄까?” 아이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누가 모르고 한 거니까 괜찮아요. 이것 또한 역사이니까요.”하며 말숙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말숙은 2학년 아이의 답변에 칭찬을 해주었다. 얼룩진 공책을 볼 때마다 도서관의 환경을 생각할 테니까 말이다. 토요일은 성품학습을 한다. 학습은 경청에서 시작하여 용기 인내 지혜 책임감 줏대 등으로 이어진다. 태도가 좋은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

지금부터는 은희 이야기이다. 토요일 성품학습이 끝난 후, 은희가 한 엄마의 질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토요일 수업은 오픈 클래스 여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참석할 수 있었다. 말숙은 은희에게 말하고 싶었다. 아무리 학생의 엄마라고 하지만, 첫 번 보는 학생의 어머니에게 자신의 어려운 형편을 다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조심하라고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요찬 엄마의 질문에 은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엄마가 없어졌어요. 어젯밤까지 있었는데 아무리 엄마를 부르고 찾았지만 없었어요.” 은희는 자신의 속이야기를 그 엄마에게 다 떨어놓았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모든 정보를 다 알려서는 안 된다고 재차 말리려 하였지만 은희는 주저 없이 담담히 자신의 환경과 처지를 이야기하였다. 은희는 이미 자심의 슬픔을 제삼자가 말하는 것처럼 감정 없이 객관적 대답하는 것이었다. 은희는 슬픔을 넘어선 것이었다. 은희 옆으로 말숙이 닦아가자 은희는 말리려는 뜻을 알고 말숙에게 미소 지으며 엄마와의 갈등은 다 해결됐다는 듯 말했다.

“엄마는 그 뒤로 한 번도 안 오셨어?” 요찬 엄마가 물었다.

“네, 전혀. 연락도 안 되고요.”

“그럼 지금 누구하고 어떻게 살아?”

“할머니 하고 아빠, 동생하고 저, 살아요. 아빠는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머리를 다치셔서 오랫동안 집에 쉬고 있어요.”

요찬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저는 지금 ‘헤어 디자이너’가 되려고 온라인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빨리 커서 당당한 사회인이 되고 가족도 살리고 엄마도 찾고 싶어서요.”

“이제 중·1이잖아. 폭넓게 다른 공부도 해야 할 텐데.”

“중·2예요. 헤쳐 나가야지요. 내가 미용사가 되면 저한테 머리 하셔야 돼요.”

요찬 어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은희한테 머리를 맡기고 싶네. 은희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도 잘 그리고 미적 감각도 있었어. 책 읽으라고 하면 공책에 예쁜 여자의 머리를 잘 그렸잖아.”

은희는 자신의 처지를 알고 미리 그 길로 가는 것이다. 그는 이미 아픔을 딛고 일어섰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었다. 말숙은 은희의 행동에 섣불리 간섭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은희는 자신의 아픔을 해결하고 나가려 하는데 말숙이 너의 힘든 사정을 아무에게나 말하지 말라고 한다면, 은희는 다시 뒷걸음을 쳐야 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무지개라는 시가 생각났다.


무지개

윌리엄 워즈워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마을 뛰노라

어릴 때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도다


무지개를 볼 때

내 마음이 뛰지 않는다면

그때는 이미 내가 아니도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바라건대 생의 하루하루가

순수한 아이의 마음과

자연의 숭고함이 고이 있기를



나는 날마다 아이들한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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