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슬픔과 비애도 필요하고 힘이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의 감정에는 슬픔과 기쁨이 교차한다. 기쁨의 바닥에는 슬픔을 동반한다. 말숙은 슬픔과 비애 없이는 글을 쓸 수 없음을 알았다. 슬픔을 안다는 것은 남을 배려할 수 있는 기본이 되는 것이다. 슬픔과 비애가 상대를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독후감 행사가 있었다. 희수의 글을 요약하여 적어보았다.
상처를 꽃으로 피웠던 내 친구 베토벤
박 희수
나는 도서관에 있는 ‘베토벤을 읽고 나서’라는 책을 읽었다. 베토벤을 이렇게 책으로 만난 것은 나의 운명이었다. 내가 어디선가 베토벤의 운명이라는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내 힘든 환경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속에 있는 울분이 쏟아져 내렸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베토벤의 귀가 잘 안 들리는 심정과 괴로움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베토벤을 친구 삼아 버렸다. 그의 안 들리는 귀와 내가 엄마가 없다는 사실은 주어진 운명 앞에서 친구가 되고도 남았다.
베토벤은 귀가 잘 안 들려도 포기하지 않고 아름답고 희망의 곡을 많이 썼다.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소리가 들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음악의 생명이라는 귀에 장애가 있다니 나보다 더 잔인한 것 같았다. 나도 엄마가 없어 날마다 울었고, 친구들이 놀렸을 때는 쥐구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친구에게 음악이라는 꿈이 있듯이 나에게는 헤어디자이너라는 꿈이 있다. 그의 위대한 정신과 내 장래희망을 예술정신으로 접속시켜 훌륭한 예술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내 친구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도 많은 곡을 작곡하여서 피곤하여 잠시 쉬고 있는 중이다. 죽지 않았다. 나의 수많은 밤을 음표로 깨우고 일으켜 세워줄 것이다. 친구가 상처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꽃을 피웠듯이 나도 많은 상처들을 아름다운 머리로 꽃을 피울 것이다. 나는 이제 중학교 2학년이다. 엄마대신 친구의 음악이 나를 위로해 주고 아름답게 꽃 피워 줄 것이다.
내 친구는 죽은 것이 절대 아니다. 잠시 쉬면서 나를 응원해 주는 것이다.
말숙은 희수의 독후감을 읽는 순간 뻐꾹 언니가 생각났다. 둘 다 엄마가 안 계셨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말숙은 언니의 이야기를 적어보았다.
너무 아름답고 슬퍼서 울어본 적은 있는가? 베토벤 소나타 8번 비창을 듣노라면 어떤 언니가 생각난다. 언니 가정과 우리 가정은 친한 사이였다. 언니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언니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언니는 말을 잃었다. 대신 슬픈 노래를 해서 우리는 슬픈 뻐꾹 언니,라고 불렀다. 그때마다 언니는 희미하게 웃었다. 언니는 매우 잘 사는 편이어서 동네에서 언니네만 피아노가 있었다. 뻐꾹 언니의 가정에 새엄마가 왔다. 뻐꾹 언니가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 언니의 친구인 숙희가 언니 집으로 와서 피아노를 쳤다. 숙희는 음대 지망생이었고 뻐꾹 언니 집에서 피아노 연습하고 있었다. 뻐꾹 언니와 숙희의 엄마들끼리 무엇인가를 주고받은 거 같았다. 비창은 숙희가 원하는 대학의 입시 지정곡이었다.
숙희가 뻐꾹 언니 집에서 두 시간 피아노 연습을 하고 떠났다. 비창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뻐꾹 언니가 피아노를 쳤다. 뻐꾹 언니의 피아노 소리가 귀에 거슬렸던 새엄마는 느닷없이 뻐꾹 언니의 뺨을 갈겼다. 두 시간 동안 피아노 소리를 들어서 귀도 피곤했고 조용히 있고도 싶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잘 치는 소리만 듣다가 다른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화를 낼 수도 있었다. 뻐꾹 언니 뺨은 빨갛게 물들었고 눈은 파랗게 멍이 들었다. 언니는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비창 1악장에는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가는 고난과 절망 속에서 결연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이 보인다. 2악장에는 천둥벼락과 폭풍이 물러간 후 아름다운 무지개를 그렸다. 운명과 싸우며 갈등을 해소한 평화로운 모습이 보인다. 슬픔과 절망이 깊은 만큼 아름다운 비창은 빛을 발했다. ‘그래, 운명과는 싸우고 화해하고 웃는 거라고.’
뻐꾹 언니와 희수는 엄마의 빈자리를 베토벤 음악으로 채워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