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에 만난 화가 김환기와 그의 부인 김향안
서양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B. C 4세기경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고 말했다.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예술이란 의학적 기술일 수도 있다. 히포크라테스가 세상에 없어도 그가 말한 면역력의 중요함은 영원하다. 베토벤은 사라졌어도 그의 음악은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을 울린다.
2023년 8월 30일 가랑비가 내리는 오후,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김환기를 만났다.
그의 그림의 소재는 우리의 산천과 하늘, 달과 구름, 백자와 전통무늬 등 우리들의 어린 시절로 가득 차있었다. 나와 같이 간 친구는 고향 같은 그림에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웠다.
구상과 추상이 함께 어우러진 그림은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추상의 밑바탕에는 구상이 친절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의 동양적 평화롭고 안정된 작품들은 일상의 소중함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삶, 하나하나를 흘리지 않고 예술에 녹아내려 표현하는 독창성에 삶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래, 우리들의 삶도 소중한 것이고 예술인 것이다.
김환기는 조선시대의 백자, 달항아리에 꽂혀있어 평소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달항아리를 수집하여 모셔두었다고 하였다. 잘생긴 달항아리는 완벽한 그대로 좋았고, 좀 못생긴 달항아리도 나름대로 서민적이고 나를 닮은 것 같아 나름 좋았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자연과 함께 숨을 쉬는 동양의 그림에 파리는 매료되었다.
파리에서의 성공 후 뉴욕으로 가서 자신만의 예술을 위하여 담금질을 하였다. 뉴욕에서의 초창기 점화에는 무심한 작은 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작은 점들은 시간이 흐르자 서로 만나 너와 내가 되었다. 다시 여자와 남자가 되어 서로 사랑하고 우주가 되었다. 작은 점들은 생명을 입고 서로 세상에 나온 의미를 갖고 무언가를 속삭인다. 그리고 우주로 변하는 것이다. 작은 점들은 어떻게 너와 내가 되었는지는 그의 그림의 흔적과 시간의 변화를 보면 알 수도 있었다.
작가는 점 하나를 찍을 때, 이 작은 점이 생명체로 변함을 작품으로 보여주었고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뉴욕의 전시회에서도 성공하여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20세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큰 작가가 되었다.
그의 점화를 그리는 과정이 방 한쪽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림이 워낙 크다 보니까 큰 책상 위에 작품이 눕혀있었고 그 위에서 그리는 모습이 보인다. 세로로 그리는 것보다 가로로 눕혀놓고 그리는 것이 훨씬 수월하게 보였다.
그림 감상 후, 친구와 나는 미술관 숲 속 큰 바위에 앉아있었다. 토종 다람쥐가 우리를 쳐다보고는 우리가 반응을 하자, 쏜살같이 숨어버렸다. 바위처럼 가만히 있었을 것을 하며 아쉬워했다. 어릴 적 산에서 본 토종 다람쥐였다. 큰 바위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쭉쭉 뻗어간 나무 가지들은 늠름히 태초를 품고 있었다. 천지창조 후 아담과 이브가 이런 곳에서 살았을까, 저쪽쯤 어딘가에서 인간을 유혹하는 뱀이 나올까, 상상해 보았다.
바위 위에 앉아 나는 아까 친구에게 언뜻 들은 말을 물어보았다.
“시인 이상의 부인이 김환기의 부인이 되었다는 소리는 무슨 말이야?”
“말하기가 좀 길기는 하지, 들을 준비는 되어 있으신지?”
“궁금해 미치겠어, 어서 말을 해.”
“김환기 부인의 본명은 변동림이고 이상의 부인이었어. 이상과는 4개월 동안 살았지.”
“그렇게 짧게, 왜?”
“이상의 무질서한 독서와 밤샘으로 인한 폐결핵이 원인이었어. 이상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다방을 운영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생활은 변동림이 했어.”
나는 변동림을 스마트폰에 넣어보았다. 경기여고를 졸업 후, 이화 여전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시인 이상과 화가 김환기의 예술에 좋은 영향을 주고 생활도 많이 도와주었다.
“와, 스펙이 대단하네, 이상, 변동림, 김환기 모두 일제강점기 때 사람이네.”
“그렇지, 변동림은 오빠의 주선으로 이상과 만났어. 20세에 천재 시인과 황홀하게 살다가 21세에 혼자가 되었어.”
“짧은 청춘, 안타깝네, 그런데 어떻게 김환기의 부인이 되었지?”
“변동림을 좋아하는 일본 친구가 자신이 그녀에게 구애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고, 변동림 또한 그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지. 일본친구는 김환기를 그녀에게 소개해주고 물러섰어.”
“변동림은 김환기의 예술성을 첫눈에 알아보았을까?”
“그녀는 수필가로 등단했고 시와 소설도 썼어. 김환기의 편지에서 그의 마음과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고 결혼을 승낙했어. 그녀는 그림도 잘 그렸어. 통역도 잘하고 팔방미인이었지.”
“양가에서 결혼승낙을 했을까?”
“물론 아니지. 김환기에는 전처와 딸 셋과 노모가 있었어. 그러나 변동림은 그의 딸도 내 딸이라며 시댁 모두를 가슴에 품었지.”
“변동림은 김향안으로 이름을 바꾸어 새 인생을 시작하려고 했지?”
“맞아, 결혼하기 전에 변동림은 김향안으로 바꾸고 필명을 썼어. 김환기는 외동아들이었고, 아버지가 죽자 많은 재산을 정리하고 전처에게 크게 한 몫을 띄어주었지. 그리고 깨끗하게 이혼했지. 김환기와 김향안, 모두 화끈한 사람이었어.”
“김향안은 집안의 반대를 무릎 쓰고 결혼하여 김환기가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었지. 이상을 도왔던 것처럼.”
“그래 맞아. 향안이 먼저 파리로 유학 가서 아르바이트하며 작업실이랑 구하고 후에 김환기가 파리로 날라 갔어. 파리와 여러 곳에서 개인전을 열어 모두 김환기의 이름을 알렸고 성공했어.”
“파리에서는 달항아리를 많이 그렸겠네. 서양에서 맛보지 못했던 둥그런 신비의 그림들을.”
“잘 아네. 서울에 와서 홍익대로 복직했어. 끊임없는 예술적 욕구에 둘은 뉴욕으로 갔지.”
“뉴욕에서의 개인전도 성공했지, 점과 선과 우주로, 추상을 했지.”
“어떻게 알았지?”
“그림 옆 설명서에 짧게 나왔었어. 그의 1971년 작 ‘우주’는 처음 경매시장에 나와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고.”
“향안은 2004년에 생을 마감했어. 그녀는 수필가, 소설가, 화가였어. 이상의 시비를 세우는데 도움도 주었고 지금 이상의 모교인 보성고등학교에 시비가 있어. 향안의 묘지는 뉴욕근교 공동묘지 김환기 옆에 나란히 있어.”
“와, 이상과 향안과 김환기의 이야기가 여기서 막을 내리네. 나는 친구가 향안이라고 생각이 들어, 사업가인 남편과 화가인 딸의 향안, 그리고 작가인 그대 자신의 향안이지.”
“그리고 세상 모든 여성은 향안이 될 수 있어. 마음만 먹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