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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Aug 17. 2020

엄마에게 쓴 편지

ADHD가 내 인생에 끼친 가장 큰 악영향은 낮은 자존감이다.

나의 행동들을 엄마는 '팔푼이' '반항' '덤벙거리는 성격'으로 치부하여 자주 혼을 냈다. 내 방은 늘 엉망이었고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면 돈을 잃어버리고 빈손으로 들어왔다. 청각은 정상이었지만 엄마의 부름을 늘 한 번에 듣지 못했다. 엄마의 짜증이 오르고 나서야 나는 대답했다.

"나 불렀어? 뭐라고 했어?"

나는 기질적으로 내성적인 데다가 성미가 급한 엄마와 맞물리면서 더 움츠러들었다. 어릴 때 엄마의 지인이 아들 딸과 함께 우리 집으로 자주 놀러 왔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내게 이야기했다.

"엄마 친구랑 이야기할 테니까 너도 방에 가서 네 친구들이랑 놀아."

나는 부끄러워서 엄마 옆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친구들의 행동을 관찰하다가 그 친구들이 집으로 갈 시간이 돼서야 마음을 열었다. 엄마는 늘 한숨 쉬며 비난했다.

"너는 대체 왜 그러니? 누굴 닮아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모든 행동이 다 굼떴고 하다못해 밥 먹는 것도 동작이 느려 자주 혼이 났다.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지금은 밥 먹는 속도만 너무 빨라졌다. 건강을 위해 느리게 먹으려고 시도 중이지만 20년간 유지된 습관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엄마는 어릴 때 내게 자주 이야기했다.

"친구 같은 딸이 돼줘"

나는 친구가 아닌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엄마는 혼자 감정조절을 하지 못했고 불안을 나에게 자주 전가했다. 오랫동안 내 인생이 내 것 같지 않았고 나는 의사표현을 할 줄 모르는 아이로 성장했다.


심리상담도 받고 심리학 서적을 많이 읽다 보니 용기가 생겼다. 상처 받아 울고 있는 내면의 아이를 더 이상 방관하고 싶지 않았고 내 인생을,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내 속마음을 글로 적어 엄마에게 부치기로 결심했다.  


To.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안녕. 요즘 상담도 받으러 다니고 책을 많이 읽게 되면서 느끼는 게 많아. 한 번쯤은 속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나는 어린 시절 엄마를 많이 원망하고 미워했던 것 같아. 아빠가 힘들게 해서 엄마가 어린 우리를 두고 갔을 때 나는 그 힘든 상황에서 남겨져 있는 그 시간들이 되게 길게 느껴지고 슬펐어. 가족의 울타리가 안전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지. 엄마가 수면제를 먹었을 때도, 그 끔찍한 상황을 지켜봐야 했던 나는 그 상황을 감당하기에 너무 어렸고 고통스러웠어.

엄마의 사랑이 많이 필요했어. 그래서 엄마의 인정을 받으려 노력도 많이 했지만 잘 되지가 않았던 것 같아.
 '돈돈돈'하고 이야기 한건 돈이 아깝다가 아니라 '아껴 써라'라는 말을 한 거였을 거야. 다른 또래 아이들과 비교한 건 '넌 걔만도 못해'가 아니라 '더 열심히 해'라는 이야기였을 텐데 그때의 나는 엄마의 말에 다른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렸어. 엄마는 최선을 다해 우리를 뒷바라지했을 거야. 그건 알아. 그렇지만 우리가 알아듣기에는 너무 힘든 표현방식이었던 것 같아.

표현과 인정에 인색한 엄마가 나는 너무 힘들었고 마음이 아렸고 아팠어. 그냥 내 속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거야. 치유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
                                                                                                  
                                                                                         From 엄마를 사랑하는 딸


내가 생각한 대로 엄마는 사과를 하지 않았고 나는

'엄마가 아직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라고 받아들였다.


비록 사과를 받진 못했지만 내 감정을 존중하는 첫 내딛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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