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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Aug 22. 2020

나 퇴사할까? 프리랜서할까? 버스기사할까?

호봉제로 들어오는 안정적인 급여, 주 5일 근무, 회식 없는 문화 그 모든 것이 완벽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다닌다는 생각으로 뿌듯했다. 직장에 애착을 가졌고 끓어 넘치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 치료에 쏟아붓는 병아리 신입이었다. 긴장이 풀리는 주말이면 응급실을 밥 먹듯이 갔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소중했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즐거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는 큰 부분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일했다. 1)마슬로우의 욕구단계처럼 소속감이 채워지자 나는 내 역량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치료 준비를 마치고 아동을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아동이 즐거워할 모습을 생각하자 덩달아 나도 신이 났다. 부푼 기대감을 안고 데리러 가던 그 길, 상사의 말 한마디로 인해 모든 게 어그러졌다.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고 좌절을 맛보았다.

나는 내 역량이 돋보이는 장소에서 일하고 싶었고 집으로 돌아와서 분이 가시지 않는 상태로 오빠에게 이야기했다.

"나 퇴사하고 싶어."

그 당시 예비 남편이었던 오빠는 내 하소연을 듣고 내게 물었다.

"현실적인 상황도 고려한 거지?"

 사실 우리는 아파트 전세 계약을 이미 완료한 상태였다. 오빠는 내가 한 직장을 계속 다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직장 근처에 자리를 잡자고 배려해주었다. 내 말 한마디로 오빠가 해 준 배려가 물거품이 되었다.

"응 그런데 나 더 못 다니겠어. 미안해."

오빠는 내게 이야기했다.

"나도 마음을 비울게. 하루만 시간을 줄래?"   

그리고 다음 날은 내 생일이었고 오빠는 선물과 편지를 건네주며 읽어보라고 했다.

"이 세상에 너는 나를 나는 너를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 서로를 잘 챙겨주자. 나를 의지할 지팡이가 녹이 슬게 할 수가 없으니 약 먹는 것도 잘 챙겨서 우리가 함께 병원을 한 걸음 한 걸음 멀리하고 싶구나. 내가 평화가 하는 일에 전문지식은 없지만 적어도 나 때문에, 돈 때문에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 주인공이 더 빛날 수 있는 예쁜 이야기를 그려보자."


나는 눈물이 났고 생일날 퇴사를 결심할 수 있었다. 일주일 고민하고 내린 충동적인 결정이었지만 오빠의 응원으로 내 선택에 조금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인수인계를 미리 받았고 선생님들의 조언을 새겨듣는데 유독 한 문장이 귀에 꽂혔다.

"익숙해지면 두 군데를 보통 병행하면서 일하니까 차가 진짜 필요할 거예요"

나는 당장 차를 사야 했고 안 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와 오빠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미리 차를 사서 연습해야 할 것 같아. 차가 있어야 좀 거리가 있는 곳이라도 이력서를 넣어볼 수 있어."

오빠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대답했다.

"한 곳 일하고 나서 좀 적응된 후에 이야기하는 건 어떨까? 지금은 우리가 결혼 준비도 그렇고 집 전세대출도 그렇고 좀 빠듯한 것 같아. 우리 돈 없어."

나는 화가 나서 대답했다.

"내 이름으로 대출받으면 돼."

오빠는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다시피 평화 이름으로 대출받으면 이율이 높아. 그렇게 급하다고 생각되면 차 사자."


차 구매는 불과 이틀 만에 결정되었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모든 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아이들 부모님께 인정도 받았고 주 3일만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전에 비해 더 지쳐갔다. 병행할 직장을 알아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쉬는 날은 집에서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가정과 회사와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회사에 올인하다 보니 오빠의 불만도 늘어갔다.

"평화야 왜 전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 같지? 진짜 괜찮아? 일도 줄였는데 왜 더 바빠?"


퇴사를 결정을  당시만 해도 퇴사가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점점 의문이 들었다. 나는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이직이 자기 파괴적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야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 발버둥 칠수록 점점  명확해져 나는 방황을 시작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봐. 어떤 일을 해야 하지?'

내가 짊어진 책임감에서 벗어나 도피하고 싶었고 나는 그 무게를 견딜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빠에게 또다시 무서운 변화를 예고했다.

"이번 연도 마치고 나 다른 일 해볼까? 공무원 준비할까? 아니면 그냥 집 근처 편의점에서 일을 해야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을까?"


오빠는 나의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했고 한참  대답했다.

"편의점에서 일한다고? 평화는 남들 앞에서 있어 보이는 거 좋아하잖아. 그리고 공무원 준비는 하고 싶다면 지금 쉬고 있는 날부터 준비하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아니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직업적성검사를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직업에 너무 한계를 가지지 마. 어제 보니까 TV에서 여자 버스운전기사도 나오더라."


나는 오빠의 이야기를 듣고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오빠의 등을 두들기며 이야기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우리 가족, 친척 다 운전으로 먹고살잖아. 나라고 못하겠어? 나 운전기사 도전해볼래."


그렇게 나는 버스기사가 되기 위해 운전면허학원에 문을 두들겼다.


1) 매슬로우의 욕구단계는 다섯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생리적ㅡ안정ㅡ사회ㅡ존중ㅡ자아실현의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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