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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Aug 28. 2020

옹졸한 나를 만나다.

나에게는 수희라는 친구가 있다. 나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지만 우리는 서로를 존중했고 토닥여주면서 국가고시라는 힘든시기를 함께 극복했다. 운이 좋게도 학교를 졸업한 후 수희는 내가 있는 지역으로 올라왔다. 수희가 같은 지역에 있다는 것만으로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반찬 선물을 종종 해주기도 하고 틈이 날 때면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하며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다 수희는 다니던 직장을 퇴사한 후 이직에 대한 두려움에 새로운 곳에 선뜻 이력서를 넣지 못했다. 그때 나는 수희에게 이야기했다.
"지금 내가 일하는 곳에서 이틀 근무할 치료사를 모집하고 있는데 올 마음 있어?"
A는 고민 끝에 내가 다니는 직장에 면접을 보러 왔고 그 날 저녁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 다음 달부터 여기서 일할 것 같아. 그런데 내년에는 정규직 가능하냐고 물으시더라.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당황했어."

나는 입으로는 친구를 축하해주었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들로 가득 찼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건가?'
사실 그 직장을 다닌순간부터 고용주는 꾸준히 내게 제안했었다.
"선생님~진짜 정규직을 해주면 안 될까?"
나는 단호하게 거부했기 때문에 상사가 밉지는 않았다. 그런데 수희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괜스레 너무 미워졌다.
속 좁은 나의 마음과 아주 작은 내 그릇을 실감했다. 고민 끝에 내 감정을 수희에게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래? 네가 서운해 할 수 있어.

내년에 정규직 제안을 받았다고 했지? 사실 치료실은 한 개인데 너를 원하는 고용주의 마음은 이해해.
근데 친구로 인해 나의 밥그릇이 없어지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많이 슬플 것 같아.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그건 너의 선택인 거 알아. 그리고 내가 하는 이야기로 인해 네가 충분히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겠지. 그릇이 넓지 못해서 미안해. 옹졸해서 미안해.


수희는 내 이야기를 들은 뒤 나에게 말했다.

"네 마음 충분히 이해하고 그런 상황을 생각 못했네. 네가 걱정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해."


나는 구인정보를 전할 때만 해도 방황하는 친구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행위는 사랑이 아닌 연민과 위선이었다.

수희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내게 아낌없이 베풀었다면 나는 그 친구에게 내 몫을 제외한 나머지를 늘 주었다.


그때의 나는 참 옹졸했다. 부끄럽지만 그것도 나의 모습 중 일부였다.


시간이 흘러 나는 나를 조금 더 믿을 수 있게 되자 용기가 생겼다.

"이 직장이 아니더라도 나는 다른 곳에 가서 충분히 적응할 수 있어."

그리고 다른 기관을 병행하기로 마음먹었고 실천에 옮겼다. 이번만큼은 도피가 아닌 새로운 도전이었다. 나는 두려운 마음을 이기고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내 친구 수희가 바로 떠올라 연락을 했다.


마침내 나는 진심이 담긴 사과와 응원의 말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속좁게 굴어서 미안해. 내 눈치 보지 말고 네가 원하는 선택 했으면 좋겠다."


답답함이 사라지고 가슴 한 구석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목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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