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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Jul 31. 2020

누구를 위한 결혼식인가?

우리를 설득시키지 마!!!

우리는 결혼 전 서로에게 프러포즈를 하며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거기까지는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들처럼 너무 아름다웠다. 멜로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그런데 머지않아 진흙탕 싸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와 시부모님을 뵙기 위해 첫인사를 드리러 간 날이었다. 나는 시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여서 긴장을 해서 인지 소화도 안되고 배는 부글부글 요동쳤다. 컨디션은 안 좋았지만 점수는 따야 되지 않겠는가? 매너, 말씨뿐 아니라 먹는 것도 복스럽게 먹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런 노력들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결혼식 장소, 주례 등 구체적인 이야기가 조심스레 오고 가며 시부모님도 우리 부부도 돌처럼 경직되기 시작했다. 경상도 출신인 나는 당연히 김해 또는 부산 쪽에서 결혼식을 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물론 연애할 때 남편도 암묵적으로 동의했었다. 그런데 시부모님께서는 익산에서 결혼식을 해야 하며 결혼식 주례도 교회 형식으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셨다. 다시 그때를 회상해보아도 정말 내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남편은 시부모님께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으나

 "우리를 설득하려고 하지 마!!"

라는 말을 뱉으시며 우리의 입을 막으셨다. 나는 그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2차 충격을 받았다.


연애할 때 장난스레 나는 오빠에게

"우리 결혼식 장소 어디서 할 거야?"

라고 종종 묻곤 했다.

오빠는 확신에 차서

 "당연히 부산에서 해야지"

라고 큰 목소리로 확신을 주곤 했었다.


그 말들이 그 순간 떠오르면서 더더욱 배신감에 휩싸였다.

'왜 반박을 하지 못하지?'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가정들을 하면서 분노 게이지가 상승했고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나의 얼굴은 울그락붉으락해져갔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시간만 가기를 기다렸다.


나는 차에 타자마자 눈물이 나기 시작하면서 서러움에 오빠를 마구 비난하기 시작했다. 김해 부모님께 이러한 시부모님의 생각을 전달드리기 전에 결혼 당사자인 나부터 이 상황이 전혀 용납되지 않았다. 우리만의 결혼식, 완벽한 결혼식을 꿈꾸었던 나의 허상은 한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오빠는 시부모님 그리고 나 모두가 상처 받지 않기를 바랐고 합의점을 찾으려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지쳐갔고 우리의 결혼식인데 눈치를 보는 오빠가 못 마땅했다. 연애할 때 오빠는 평화주의자이자 양보왕이였다. 지인뿐 아니라 내게 늘 양보했다. 그때 오빠의 행동들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 싫은 마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결혼 준비하며 깨달았다. 오빠의 우유부단함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고 그 못지않게 김해 부모님의 독한 소리는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익산에서 하면 누가 너의 결혼식에 가겠느냐?"

등 나는 그런 아픈 말들을 지속적으로 들었고 축복받지 못할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누구를 위한 결혼식인지 진심으로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오빠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배웠고 나는 김해 부모님의 비난을 감수하고 내 자존심을 다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과, 익산에 있는 'ㅁ'웨딩홀에 예약까지 했다. 결혼식 장소를 양보하는 게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은 결국 곪았고 터지는 계기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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