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화 Aug 07. 2020

발표생활 실패기

나는 과목 중 음악을 제일 싫어했다. 앞에 나와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 친구들 앞에 서야 하는 시간이 타 과목에 비해 제일 많았다. 무대 앞에 설 때면, 반 친구들의 눈이 모두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어 숨고 싶었다. 내 시선을 어디에 고정시켜야 될지 당혹스러워 천장만 쳐다보았던 것 같다. 나는 손을 벌벌 떨며 오카리나를 연주했고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재시험을 봤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앞에 나와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의 줄거리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 과제 생각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 무서워서 발표 전날까지 생각을 회피했지만 그 과제가 취소되는 드라마 같은 상황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몸을 베베 꼬며 교탁.앞에 섰다. 내 생각과 달리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야! 입! 너 뭐하니? 말해! 말하라고!'

내 마음이 간절하게 외치고 있었다.


슬프게도 혼자만의 공허한 외침으로 끝났고 나는 울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 자신이 한심하고 바보 같아 눈물이 났다. 엉엉 울고 있으니 친구들이 달래주러 왔고 더 서러워져 눈물이 났다. 내 무대는 번번이 실패였다.


대학생이 되면 그런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찬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발표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과 특성상 발표수업이 굉장히 많았고 오히려 난이도는 업그레이드되어 영어로 프레젠테이션하는 발표수업 까지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글자 한 토씨도 틀리지 않게 말할 만큼 매 발표 때마다 달달 외웠고 청심환을 하루 전 날 꼭 사두었다.


학교를 복학한 후에는 논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발표자를 정할 차례가 되자 후배들이 자연스레 나를 쳐다보았다.  커리큘럼이 바뀌면서 방학 때부터 논문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도중에 끼게 된 나 로써는 눈치가 보였고 내가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반 충동적으로 한 도피성 휴학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난 즐거운 경험이 내게 도움되었던 것 같다. 두려움이라는 감정보다 즐거운 감정이 더 앞섰고 논문 발표는 성황리에 마쳤고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발표와의 전쟁이 끝난 경이로운 날이었다. 그날 이후로 프레젠테이션이 예전만큼 무섭진 않다.


나를 평가하는 사람보다 내 이야기를 들으려 하고,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봐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변화는 일어났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 및 돈 관리 실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