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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Aug 08. 2020

세 번째 상담

겨울이 오면 크리스마스 선물을 손 꼬박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상담시간을 손 꼬박 기다렸고 상담은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고 하소연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보따리처럼 쌓여 있었다.


선생님은 여느 때와 같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어서 오세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인사를 얼른 드리고 내가 보낸 수많은 시간 중 하나를 꺼냈다.

"선생님 얼마 전에 집들이를 했는데 서로 의견 조율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제가 쉬는 날이기는 했지만 저 혼자 요리하는 게 힘들까 봐 오빠가 배려해주더라고요. 이마트 가서 즉석요리를 사라고 오빠가 이야기했었어요. 그런데 저는 인정받고 싶었는지 말로는 알았다고 하고 서프라이즈로 요리 재료를 사서 집에 왔어요. 문제는 일은 벌였는데 손님 올 시간은 다 되어 가고 수습이 안돼서 오빠는 집 오자마자 작업복을 입은 상태로 저를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 왔어요. 사실 오빠는 그런 제 행동을 원치 않았어요. 저는 상대방이 원치 않은 배려를 해놓고 생색이란 생색은 또 다 내고 만 거죠. 서로 지쳤다 보니 언성이 높아졌고 오빠는 저랑 이야기하던 중에 열려있던 코끼리 쓰레기 통을 발로 세게 닫았어요. 그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저에게는 들렸고 왜 그렇게 세게 닫냐고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해라고 이야기하면서 오빠에게 엄청난 공격을 쏟아붓고 말았네요."


"쓰레기 통 세게 닫아서 속 시원하겠네!"


선생님이 이야기하시기를 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할 때가 오면 남편은 쓰레기 통을 찰 일이 더 이상 없을 것이며 남편이 나에게 감정표현을 하는데 수월해질 거라고 이야기하셨다. 우리는 분노라는 감정을 표출하는 데 있어서 많이 서툰 사람이다.


선생님과 이번 시간에는 '감정'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엄마는 아빠의 도박중독을 견디다 극심한 우울증이 왔고 수면제로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그때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나는 대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선생님은 다시 물었다.

"평화 씨는 그때 그 순간 어떤 감정을 느꼈을 것 같아요?"

나는 그때를 회상하며 조심스레 대답했다.

"두렵고 무서웠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한 번 더 물었다.

"아이를 무섭고 두려운 상황에 둔 엄마와 아빠는 어떤 사람이에요?"

내 머릿속에는 네 글자가 떠올랐다.

'나쁜 사람'

나는 선생님께 대답했다.

"나쁜 사람이에요."

우리는 나쁜 사람들에게 보통 '화'라는 감정이 생기는데 나는 내 감정이 아닌 엄마의 감정에 이입되어 있었다. 사실 그 공포스러운 기억은 최근에 떠오른 기억이었다.

그 사실을 선생님께 전했고 선생님은 대답하셨다.

"기억이 없어졌다가 다시 떠올랐다는 것은 그때는 그 사건을 감당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조언해주셨다.

"내면의 불안이 어디서 왔는지 분석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명상도 좋아요. 그리고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자주 해주세요. 나는 좋은 남편도 있고 나를 아껴주는 좋은 친구들도 있고 나는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 심리상담도 받고 좋은 기회를 가지고 있잖아.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시간도 필요해요."


선생님과 아기를 낳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가 나에게 전했던 생각을 선생님께 우연히 알려드렸다. 엄마는 아이를 안 가져도 괜찮다고 종종 내게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떤 감정이 드셨어요?"     

".... 솔직히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크게 없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것 같아요."


선생님은 엄마의 말로 인해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느꼈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선생님과의 상담이 끝난 후 생각이 많아졌고 엄마가 나에게 그 말을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았다.

"딸~ 아기 낳지 않아도 괜찮아"


그제야 내 마음 한편에서 슬픔이라는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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