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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Oct 15. 2020

나는 나와 싸운다.

선택의 단추

나는 나와의 싸움을 매일 한다. 회사를 가지 않는 평화로운 날에도 내 마음은 어떤 선택을 내릴지 고군분투한다. 운동을 갈지 말지, 서류업무를 할지 드라마를 볼지, 하다못해 아침과 점심을 굶을지 말지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무언가를 하는 중에도 여러 생각들이 떠올라 내 머릿속 방들은 늘 만실이다.


코로나로 인해 요즘은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 소파에 앉아서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주변의 상황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생각의 스위치를 끄려고 노력하던 중에 결국 식물과 눈이 마주쳤다.
'아. 식물 위치 바꿔줄까?'

갑자기 그 생각에 사로잡혔고 목사님의 설교는 뒷전이 되었다. 나는 지금 당장 일어나서 식물의 위치를 바꿔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데 온 힘을 다했다.
그렇게 무사히 예배가 끝났고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어느 날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나서 오빠와 외식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 순간 내 휴대폰이 울렸다.
'카톡 카톡 카톡'
나는 중요한 연락인지 확인했다. 내 브런치 글을 읽은 친구가 보낸 후기글이었다.
"너무 잘 읽었어. 글이 술술 잘 읽히더라.

근데 똑같은 단락이 두 번 들어가 있네~"

나는 그 카톡의 앞 문장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다가 뒷문장을 마저 읽고는 머리가 하얘졌다. 얼른 고쳐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옆에서 조잘조잘 거리는 오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길을 걸어가며 휴대폰에 몰두하자 오빠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급한 거야? 내 얘기 듣고 있어? 급한 거면 멈춰서 휴대폰 해."
나는 길가에 멈춰서 그 문장 하나를 찾다가 옆에서 느껴지는 싸한 분위기를 뒤늦게 알아차리고 오빠에게 사과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나중에 할게.."

사과는 했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 때문에 복잡했다. 식당에 도착해서 메뉴를 시킨 후에도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나는 결국 나에게 졌다. 오빠에게 서둘러 이야기했다.
" 화장실 갔다 올게"
급하게 화장실로 가서 그 문장을 찾았지만 이상하게도 수정이 되지 않았다.
결국 비밀글로 잠시 돌리기로 하고 개운하지 않은 마음으로 식당으로 갔더니 주문한 메뉴가 이미 나와있었다.
오빠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내게 묻는다.
" 아파? 식사 전에 화장실 가는  없었잖아."

나는 그 말을 듣자 마음이 너무 찔렸다. 차마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괜찮다고 대답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오빠에게 애호박 볶음을 해주려 했는데 [우리 사랑했을까] 드라마를 보다 보니 나는 여자 주인공으로 빙의되어 드라마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한참 후 오빠가 현관 비밀번호를 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얼음이 되었다. 복도를 지나 오빠의 시선이 부엌 식탁을 향한 게 느껴졌다.

오빠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나에게 말했다.

"저녁은 몇 시에 먹는 게 좋을까?"

이 말을 듣는 순간 오빠의 말이 자동으로 번역되었다.

"나 너무 배가 고파. 지금 시간은 8시야. 왜 식탁에 먹을 게 없지?"


나 스스로 분해서 눈물이 났다. 오빠는 당황해하며 물었다.

"왜? 왜? 왜 울어?"

 나는 대답했다.

"나 너무 분해. 나 오늘도 유혹에 무너졌어. 나한테 졌어."

오빠는 나를 위로했다.

"울어도 괜찮아. 질 수도 있지. 져도 괜찮아."


내 충동성은 물건을 구매할 때 더 강하게 드러났다. 나는 쇼핑중독은 아니지만 한 번씩 충동적인 욕구가 들때면 주체하지 못했다. 필요성이 높다고 생각해서 산 물건들조차도 금세 어두운 창고로 들어갔다. ADHD 진단을 받은 후 물건 구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고 결심했다. 물건을 바로 구매하지 않고 일주일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나와 약속을 했다.  

얼마 전에는 "LP판", "해먹", "외장하드4TB"에 꽂혔다. 남들이 보기에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나만의 이유는 다 있었다. 

'해먹이 있으면 여행가서 쓸 수도 있고, 집에서 해먹에 누워서 책도 읽을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은데?'

'아직 USB에 용량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금세 찰거야. 이왕 사는거 큰 용량이 좋지 않겠어?'

'LP판이 있다면 집 인테리어효과도 있을거고 카페처럼 분위기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전의 나라면 한 물건에 꽂힌 순간 마트로 달려가서 물품을 샀다. 온라인으로 주문하여 사는 것이 더 저렴하다는 것을 알지만 집으로 배달 오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못 견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매시간을 지연시키자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내 마음은 변심했다. 

'소파를 두고 해먹에 내가 얼마나 누워있으려나?'

'내가 지금  1TB용량도 안쓰고 있는데 4TB 하드용량이 필요할까?

'LP판 있어도 과연 내가 자주 쓸까? 집에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도 안쓰고 있는데?'   

여러 전략들로 내가 충동성으로부터 이기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가끔 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지는 충동성이 어디서부터 기인됐는지 알고나서는 섣부른 판단과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더욱 노력할 수 있게 되었다. 노력을 하지만 늘 옳은 길로 가진 못한다. 그래도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계속 노력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나도 내가 답답할 때가 많은데 같이 사는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내 행동들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행동들로 인해 덜 상처받도록, 덜 힘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나와의 싸움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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