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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Oct 15. 2020

마들렌 노래 (번외편)

남편이 본 내 모습 中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아내는 마들렌처럼 싱그럽고 달콤한 사랑꾼이다. 빵 입자 사이에 살짝 덜 녹은 레몬 입자가 어금니 사이에서 으깨어지며 새콤함을 느끼게 하는 것 까지 닮았다.


“정치권의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J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J 장관 가족과 관련된 비리가…”

“대통령님의 뜻을 받들어 청문회에서 모든 진실을 소상히 밝히…”

정치는 원래 관심도 없었다. 특히 내가 뽑을 수도 없는 장관은 더욱 그랬다. 그러나 이번엔 뭔가 달랐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인터넷 뉴스의 정치 카테고리를 돌리고 또 돌려 보고, 언론사별 헤드라인 뉴스까지 훑게 되는 집. 착. 인가? 여하튼 이 사람이 청문회 앞에서 다 밝혀 주기를… 그래서 되건 말건 간에 여야가 덮고 후비는 개싸움 같은 정치질이 끝나기를 온건한 국민으로서 소원했다.

“지금부터 4시간 후 청문회가 시작될 텐데요…”라며 시작하는 출근길 라디오 오프닝멘트가 오늘 커다란 행사를 앞둔 것처럼, 교황님이 방문했던 감동과 비슷한 그리고 새해 카운트 다운하는 설렘과 비슷한 기운으로 나를 휘감았다.

근무 중에 궁금해서 멈출 수 없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도 부족해서 나는 화장실에 가서 몰래 LIVE 중계를 잠깐 보고 나왔다. 배 아픈 날처럼 행동했으니,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퇴근 때까지 나는 그렇게 술병 난 사람처럼 화장실을 들낙거리다가 칼같이 퇴근했다.

퇴근길 라디오에서 조차 장관 후보자와 청문위원의 긴장감은 여전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아쉽게도 나의 퇴근시간이 그들에게는 식사시간이었고 휴식 후 재개한다고 한다. 어차피 잘 됐다. 집에 가면 TV로 청문회를 볼 수 있다. 가자마자 TV 켜고 역사적인 이 날을, 후보자의 표정까지도 두 눈에 똑똑히 세길 것이다. 나의 식사시간은 TV 켜 놓고 준비해도 충분하다.

“띠띠띠-띠띠-띠디 딩동댕”

현관문이 열리고 거침없이 거실 TV를 향한다. 앗, 리모컨이 안 보인다.
 테이블 : … ‘엇, 이게 뭐야-마들렌~~!’
 소파.. : … ’…’
 식탁 : … ’엇, 여기 엄청 많네-마들렌~(탄 거 조금)’

일단 켜고 보자는 마음으로 TV 아래 버튼을 누른다. 빨간 버튼이 깜빡이는 동안 식탁에서 본 조금 못생긴 마들렌을 입에 넣는다. 좋다. 이때, TV 화면에 장관 후보자님의 흉상이 제대로 잡혔다.
 (나 혼자) 긴장된 순간…

“(뻐끔뻐금)…” 말씀을 하시지만 들리지가 않는다.
 이거 평화가 분명 소리를 꺼놨겠구나…

음소거가 되어있으면 소리를 올리면 되지요~ 도 잠시,

안.. 된.. 다.

세탑 박스 리모컨으로 소리를 꺼놓으면 리모컨을 찾기 전 까지는 안.. 된.. 다.

화면 속의 청문위원장의 호통 소리가 참 격렬하지만 적막하다.

내 마음도 그랬다.

아니, 안방과 옷방 그리고 서재를 들락거리며 찾는 동안만 그랬다.

찾는 동안에도 살짝 오븐 불길에 그슬린 고소한 마들렌은 쥐고 있었다. 달다. 아니, 달았던 것 같다. 입안에 단내가 나도록 찾아선가? 왜냐하면 난 이 순간만 기다렸으니까. 며칠 동안, 특히 오늘 더욱.


(큰소리)
 “마들렌이 뭐야!!!!!”


이렇게 지르고 나서야 포기했다. 지친 몸을 소파에 기대어 조그마한 스마트폰을 양 눈이 오목눈이가 되도록 쳐다볼 뿐이다. 동시에 말없는 TV도 끄지 못했다.

아까부터 느끼는 거지만 거실 테이블에 마들렌은 참 색도 곱고 옆에 예쁜 꽃병도 데코가 되어 참 먹음직스러웠다. 분명 평화가 요즘(지난주부터) 새로 생긴 취미라 하고 있는 제과제빵일 것이다. 그리고 인별 그램에 올릴 컷을 찍고 외출한 것 같다. 주방에 싱크대에 담긴 여러 모양의 그릇과 물 부어 놓은 반죽 그릇은 보나 마나 나중에 치울 것이다. 식탁 위에 것은 내가 미리 몇 개 먹어도 괜찮겠지. 암요,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곤경에 처했는데.

소파 위에서 마들렌을 몇 개 더 먹으니 혈당이 오르며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온다. 이내 사랑도 아내 생각도 두둥실 떠오른다. 리모컨을 숨겨놓은 건 미운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숨기려고 숨겼겠는가? 내가 못 찾는 거지. 그러면서 물에 풀어진 반죽 그릇에 수세미를 담근다.


“띠띠띠-띠띠-디띠” “떼롱-떼롱”(번호틀림) “띠.. 띠.. 띠..-띠띠-..띠..디…딩동뎅”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나 화났어요! 아주 많이요! 엄청요, 화가 나서 아까는 악~~ 소리도 냈어요”
 (나는 내 감정 표현에 서툴다.)

“아, 그랬니?”라고 평화가 받자마자
 “평화도 알다시피 나는 이 청문회를 보고 싶어서 이렇게 TV를 켰는데 저 사람이 말을 안 해요. 답답해서 죽겠어요. 리모컨을 찾는데 보이지 않아요. 정말 다 뒤졌는데 안 나왔어요”
 “속이 많이 상했겠구나”라고 얼르듯하더니 평화도 리모컨을 찾아본다.
 뒤따라서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너무 화가 났는데 마들렌이 나를 보고 ‘마들렌~♩♪’하고 나타났어요. 맛은 있었어요. 아주요.”
 “그리고…..”

사실 그렇다. 이렇다 할 만큼 기대도 없던 아니, 다른 기대를 하기에는 해야 할 것이 확정적인 오늘 저녁, 나에게 마들렌은 깜짝 손님이다. 재료나 도구를 모두 스스로 준비해서 낮동안 열심히 반죽하고 구워보고 실패하고(식탁에). 그 와중에 성공한 것을 예쁜 그릇에 담아서 준비한 마들렌은 사랑스러운 선율로 불러지는 선물이다. 한편 평화도 그런 스스로를 인정받고 싶어 했을게다. 아름다운 평범한 날을 마들렌처럼 노래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빠, 여기!”

평화가 작성하던 근무일지 네 페이지를 넘기니까 나왔다. 내가 찾던 리모컨.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웃었는지 울었는지. 또는 평화를 안아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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