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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Oct 09. 2020

가족 안에서 역할 수행

따스함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문학 중 시를 싫어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둘러앉아 대화를 하며 식사를 즐긴 게 아니라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한 공부였고 제한 시간 내에 정답을 찾기 위해 빠르게 분석했다. 학교를 다닐 때 많은 시를 배웠지만 의무감과 압박감으로 한 공부는 내 마음을 울리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에 책을 읽다가 예상치 못하게 가슴 한 구석이 울컥 해지는 시 한 편을 만났다.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박노해 시인의《겨울 사랑》  

이 시를 접하기 바로 전 날, 나는 끔찍한 소식을 들었다.

아빠가 도박으로 크게 또 사고를 쳤고 전화상 엄마의 목소리는 매우 불안해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흘리고 있던 그때, 오빠는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내일 나 회사 뺄게. 지금 김해 내려갔다오자."

나는 놀란 상태로 오빠에게 물었다.

"지금? 지금 밤 11시인데?"

오빠는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머니가 극단적인 선택을 염두하고 있을까 봐 평화가 불안해하고 있잖아. 지금 많이 어려운 상황이지?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어머니에게 한 동안 우리 집에서 생활하도록 제안하는 건 어때?"


그렇게 우리는 옷만 갈아입고 김해로 출발했다. 새벽 4시에 도착해서 조심스레 현관문을 두드렸다. 우리 방문을 생각하지 못한 엄마는 매우 놀랐고 당황해했다.

"너네가 이 시간에 어떻게 왔어?"

나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엄마 걱정돼서 왔지"        

그리고 오빠와 내가 생각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동안 우리 집에 와서 며칠 쉬었으면 좋겠어. 지금 같이 올라가자."

엄마는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지금 간다고 엄마 마음이 편하겠니?"

나는 대답했다.

"우리 마음도 생각해주라."

엄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번 주 주말에 짐 챙겨서 올라갈게. 꼭 올라갈 테니까 걱정 말고 먼저 올라가."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어렸을 적 트라우마가 생각났고 그 당시로 돌아간 것 같아 너무 무섭고 끔찍했다. 내가 감당하기에 무척 어려운 과제였다. 하지만 오빠가 내 손을 잡아 주었고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뭐지?'

'나는 무슨 행동을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그러자 답이 보였다.

엄마가 우리 집에 도착하면 편히 쉴 수 있도록 이부자리를 미리 정리했고 엄마를 위한 기도를 했다. 또 엄마에게 아낌없이 애정표현을 하며 내 마음을 전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행동으로 옮기자 마음은 이전보다 가벼워졌다.  


엄마가 우리 집에서 생활하면서 나와 엄마와의 관계는 더 긴밀해질 수 있었고, 엄마의 이야기들을 통해 오빠와 나는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김해로 내려가기 전날, 엄마는 어색하지만 우리에게 진심을 전했다.

"엄마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딸과 사위가 있어서 너무 든든하네. 고맙고 사랑해"

     

회사보다 나의 마음을 더 걱정해 준 오빠의 마음, 나를 위해 기도하고 위로의 말을 전하는 지인들의 따스한 온정으로 내 마음속 겨울이 덜 춥게 느껴졌고 심지어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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