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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Oct 04. 2020

남편의 첫인상

우리의 첫 만남 中

오빠와 내가 연인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오빠의 첫인상은 솔직히 너무 별로였다.

국토대장정에서는 스텝들의 통솔 아래에 두 줄로 서서 길을 걷게 된다. 남편과 나는 출발지에서 단체사진으로 이동하는 길에 짝꿍이었다. 어색함을 풀기 위해 형식적인 질문을 내가 먼저 건넸다. 

"국토대장정에 왜 지원하셨어요?"

오빠는 대답했다.

"회사를 퇴사하고 왔어요. 리더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번에는 리더로서가 아니라 좋은 부하가 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 오게 되었네요. (나이가 제일 많다는 이유로 조원들이 오빠를 조장으로 추천했고 결국 국토대장정에서도 오빠는 리더가 되었다.) 평화 씨는 어쩌다 지원하게 되셨어요?"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저는 휴학할 때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국토대장정이었어요. 또 뱃살이 많아서 이번 기회에 살도 빼고 싶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나를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 느껴졌고 오빠는 말했다.

"안 보여서 모르겠네요."

나는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 변태 아니야? 최대한 거리를 둬야겠다.' 

나중에 연인이 된 후 오빠에게 첫인상을 이야기 해주자 오빠는 그 말을 뱉은 후 후회가 막심했다고 했다. 오빠는 속으로 '내가 미쳤구나. 초면에 이게 무슨 실언이지? 이 사람과는 잘 지내기 어렵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빠에게 나 역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완주 후 오빠가 준 편지의 첫 문장은 이랬다.

"평화의 첫인상을 생각해보노라면, 금방 짐 싸서 집으로 돌아갈 것처럼 약해 보이고 의지도 없어 보이고 게다가 가방은 엄청 무겁고 해서 이렇게 완주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서로의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이 주간의 여정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버리게 했다. 거리를 두고 싶었던 이 남자는 자꾸 나와 엮였다. 불침번을 돌아가며 서야 했는데 두 번 모두 오빠와 짝꿍으로 정해졌고 함께 걷는 시간이 많았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오빠와 걸을 때가 제일 재미있었고 힘이 났다. 어느 순간부터는 오빠와 같이 걷고 싶었다. 오빠랑 걸으면 남은 거리와 시간을 잊은 채 걸을 수 있었다. 내 시선은 그렇게 오빠를 자주 향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오빠는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기 전, 지저분해 보이는 곳들을 혼자 다 정리했고 스텝의 일을 가서 돕는 등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찾아서 했다. 또 조원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한참 어렸지만 조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반말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자신은 수돗물을 마셔도 조원들에게는 생수를 나눠주었다. 리더로서의 다정다감한 모습도 물론 좋았지만 나는 오빠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함과 해맑음이 좋았다. 


오빠는 늘 아침에 첫 번째로 나와 있었다. 관심을 가지자 오빠의 행동들이 눈에 보였고 그 사람 옆에서 걷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눈을 비볐고 누군가 먼저 설까 봐 빠른 걸음으로 오빠 옆에 다가갔다. 오빠를 쟁취하기 위한 내 노력은 조금씩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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