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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Aug 12. 2020

첫사랑과의 이별

에버랜드에 입사 후 쿵짝이 잘 맞는 동생이 생겼다. 어느 날 그 동생이 내게 말했다.

"나 내일 생일이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어떤 선물 받고 싶어?"

그 동생은 기다렸다는 듯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물은 됐어. 그 대신 우리 일찍 마감하니까 퇴근하고 동기들이랑 파크 투어 하면서 사진도 찍고 놀이기구 타고 싶어."

초중고등학생 시절 소풍, 수학여행으로 놀이공원에 가면 친구들의 가방순이를 자처했던 나였다. 내가 용기 내서 타본 놀이기구는 회전목마, 범퍼카가 전부였다.


나는 그 동생에게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나는 놀이기구 무서워해. 다른 거 해줄게. 나 빼고 갔다 와"

그 동생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놀이기구 안타도 되니까 같이 돌아다니는 건 할 수 있지?"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답했다.

그 날은 그렇게 무사히 넘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동생의 추진력이 한번 더 발동했다.

"언니 우리 크리스마스에 퇴근하고 같이 파크 투어 하자. 내가 사람들 모을게. 특별한 날이잖아. 알겠지?"

특별한 날 놀이공원이라니 생각만 해도 신나서 얼른 대답했다.

"너무 좋아. 그러자!"

시간이 지나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었고 큰 문제가 생겼다. 퇴근 후 나를 포함해서 총 4명이 모였고 내가 놀이기구를 타지 않으면 한 명이 혼자 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언니~ 언니가 탈 수 있는 놀이기구 탈 테니까 우리 같이 타자. 응? 응?"

이상하게도 그 동생의 말은 호소력이 있었고 나는 고민하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았어"

처음에는 약속대로 내가 충분히 탈 만한 어린이 위주의 놀이기구를 탔다.

그러다 한 놀이기구에 줄을 서게 됐는데 놀이기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이지 않아 불안했지만 동기들의 이야기를 믿었다.

그래도 엄습하는 불안감에 몇 번 물었다.

"이거 안 무서운 거 맞지? 진짜지?"

같이 간 동기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진짜야."

긴 줄이 끝나고 놀이기구를 확인한 순간 내가 처한 상황을 인식했다. 그것은 바로 롤러코스터였다.

"나 이거 못 타. 못 탄단 말이야!!!!"

동생은 할 수 있다고 나에게 용기를 준 후 맨 앞자리에 타야 재밌다며 유유히 떠나갔다. 나는 기차의 제일 중간에 탔지만 두려운 나머지 안전벨트를 계속 확인했고 한 겨울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옆에 앉은 동기 K에게 계속 이야기했다.

"나 너무 무서워. 지금이라도 내릴까?"

K는 얘기했다.

"괜찮아. 생각보다 안 무서워."

롤러코스터는 출발했고 점점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K가 내게 물었다.

"야 괜찮아?"

나는 무서워서 눈을 뜰 수 없었고 공포에 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그 순간 K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롤러코스터에서 내리고 나서야 내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 이후 이상하게도 휴무 날이 K랑만 겹쳤고 나는 운명이라고 믿고 싶었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우리의 썸은 시작되었고 자연스레 연인이 되었다.


나는 지방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K와 하는 데이트들이 다 처음 해보는 것으로 매 순간 특별했고 즐거웠다. 3개월이 지나 K는 학교를 복학했고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나는 K에게 중독되어 있었고 내 생활은 그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K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주말 휴무를 독차지하다 보니 동료들의 야유를 받았다. K를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왕복 3시간 거리를 매주마다 이동했다. 나만 그 아이를 보러 가는 것이 억울하진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일할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저녁까지 함께 있다가 자정이 되기 직전에 기숙사로 돌아오다 보니 건강은 점점 나빠져갔다.


그런데다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 성향이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K는 집 밖을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나는 집 안에서 데이트하는 것이 지루해졌다.

나는 한숨 쉬며 이야기했다.

"밖에 나가면 안 돼?"

K는 대답했다.

"집에서 무한도전 보자."

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K 덕분에 매주 무한도전 시리즈를 보았다.

 

K의 불만도 늘어갔다. 나는 퇴근 후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보냈다. 회사 분위기 특성상 술을 자주 마셨고 내 주량을 알면서도 분위기에 휩쓸려 조절하지 못했고 자주 정신을 잃었다.


자주 보지 못하다 보니 오해는 쌓여 갔고  사랑은 점점 집착으로 변했다.

"페이스북에 어떤 애가 댓글 달았더라? 누군데 그렇게 다정한 댓글을 달아?"

" 왜 잔다고 해놓고 안자?"

"왜 프로필에 있는 우리 사진 내렸어?"


싸울 때면 말이 점점 거칠어졌고 서로를 비난하는 게 익숙해지면서 우리의 관계는 더욱 망가졌다.

"더 이상 못 참겠어. 우리 헤어지자."

결국 해서는 안될 말까지 해버렸고 뱉고 나서 후회했다.

'그래도 이해해주겠지? 내 마음 알 거야.'

상처를 준 후 상대방의 이해를 바라는 마음은 나의 큰 욕심이었다.


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많이 미숙했다. 드라마를 통해 사랑을 배웠기 때문에 서프라이즈, 물질적 선물이 사랑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계속했고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해주면서 혼자 뿌듯함을 느꼈다. 서프라이즈라는 이름하에 만나러 갔고, 즉흥적으로 선물을 매번 주었다. 내 주머니가 바닥을 드러낼 위기에 처했을 때도 나는 신경 쓰지 않았고 계속 퍼주었다.

            

행성 중 수성은 태양의 빛 여부에 따라 온도 변화가 극심하다고 한다.


내가 뜨거운 태양이었다면 K는 나와 가장 가까운 행성인 수성이었다.

내 옆에 있어서였을까? 우리는 차가움과 뜨거움, 극과 극의 온도를 매일마다 겪었다.

싸움과 화해를 반복했고 결국 나는 차였다.

'최선을 다했는데 내가 왜 차였지?'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동안 분노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고 이별로 인한 충격으로 집 밖을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내 첫사랑은 끝났다. 그 아이와의 연애를 통해 사랑에도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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