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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Sep 09. 2020

서른이 대체 뭐길래?

오빠의 폭탄선언

우리의 연애에서 나는 갑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고 내가 갑이라고 오만했었다. 갈등이 생기면 오빠는 항상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내 감정을 먼저 돌봐주었다. 그게 너무 익숙했고 당연했다.  


그러다 오빠는 서른을 맞이했고 사람이 갑자기 달라졌다.

"A랑(오빠의 절친) 어제 얘기해봤는데 우리 생각할 시간을 좀 가지자."

내가 아닌 오빠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올 거라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빠의 폭탄선언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뭐라고? 우리가 대체 왜? 그리고 우리 문제를 왜 A 오빠랑 이야기하고 나에게 통보를 해? 오빠 미쳤어? 제정신 아니지? 그래 우리 여기까지 하자."

오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진 말들을 다 퍼부었고 놀란 내 마음을 달래주길 기다렸다. 그런데 오빠는 생각지 않은 대답을 했다.

"그래. 알겠어."

이별은 분명 내가 고했는데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는 오빠의 냉랭한 반응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울면서 오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나 오빠 좋아해. 너무 당황스러워서 아까는 내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어. 오빠도 나 좋아하잖아 갑자기 왜 그래?"

오빠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나에게 시간을 좀 달라고 했잖아. 근데 그걸 기다려주지 못하는 평화를 보니까 나도 마음의 문이 닫혔어. 우리 여기까지 하자."

누구보다 오빠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오빠를 잘 알지 못했다.

그렇게 냉정한 모습은 처음 보았고 오빠가 내게 이런 고통을 줄 거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아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내 지인들 모두가 오빠를 욕했다. 괜히 이야기했다는 생각만 들었고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서른이 뭐라고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걸까?'  

우리의 연애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오빠는 한결같이 내 성장을 응원해주었고 내게 온 기회를 막은 적이 없었다.

한 번은 오빠에게 물어보았다.

"오빠는 왜 이렇게 쿨해? 한라산 여행도, 캄보디아 해외봉사도 그렇고 오빠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 텐데. 나는 안 보내주잖아."

오빠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네가 너무 좋으니까 다른 남자를 멀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라산 여행도 여자끼리만 갔으면 좋겠다고 하고 싶은 마음이 이따시만 했어. 그런데 나는 평화를 믿어. 그리고 좀 더 큰 세상에 내보내서 큰 사람이 될 기회를 막는 게 싫어. 그건 오히려 보호가 아니라 평화를 가두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지."


학생이었던 나를 기다려주었고 내 모든 실수를 이해해주던 오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사건으로 오빠를 포기하면 나는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마음을 가라앉힌 후 오빠에게 다시 연락했고 이별을 생각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오빠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에 대한 생각 차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결혼을 하고 안정을 빨리 찾고 싶어 해. 그런데 평화는 국가고시라는 중요한 시기를 앞두고 있었어. 그런 이야기를 나눌 상황이 아니었지. 그리고 평화의 시험이 끝나니까 참아왔던 내 마음이 터진 것 같아."

나는 대답했다.

"그 결혼상대가 내가 아니어도 되는 거야? 나는 오빠가 없는 미래를 그려본 적이 없어."  

오빠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나랑의 결혼을 생각해본 적이 있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국가고시 준비하기 전부터, 한참 전부터 생각했어. 그래서 시험을 준비하며 더 불안했어. 시험에 떨어지면 오빠가 나를 안 기다려줄까 봐. 그리고 내가 왜 쉬지 않고 취업준비를 했을 것 같아?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으면 결혼이라는 문에 한 발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어."

오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내 눈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나와의 미래를 그렇게 깊게 그리고 있는지 몰랐어. 미안해. 우리 대화가 부족했던 것 같아. 다시 한번 잘해보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은 사람한테 상처 안 줘? 천사 같은 우리 엄마도 가끔 나한테 상처 주는데.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아무리 착하고 좋은 사람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한다.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가끔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면 오빠는 민망해하며 대답한다.

"내가 진짜 왜 그랬지? 내가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 진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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