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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Feb 17. 2022

생일이 반갑지 않아 졌다

나이먹음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생일이 이처럼 우울하기도 처음인 것 같다. 지금까지 지나온 생일을 돌아보면, 학창 시절에는 시험기간이라 공부를 하며 생일이 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던 것 같은데 이건 분명 기억의 미화일 거다. 30이라는 숫자가 코앞이라 그런지 어제의 생일은 평소와는 다름없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었다. 생일이 아닌 척 이틀 전과 똑같은 하루를 보내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바보 같아서 웃음이 났다. 카톡 프로필을 들어가서 혹시나 내 생일 알람이 켜있는지부터 확인을 했다. 꺼져있다는 것을 두 번 세 번 확인한 후 안심이 됐다. 퇴근 후 오빠와 집에서 저녁을 먹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것까지, 딱 거기까지는 내가 생각한 대로 완벽했다. 그런데 일과의 순서에만 집중한 나머지 대화의 소재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빠는 생일 축하한다고 계속 내게 말을 건넸고 자연스레 우리의 이야기는 '나이먹음'으로 갔다.

"오빠 오늘 나 생일이잖아. 나이 먹는 거 너무너무 싫어. 난 영원히 baby 같은 아가씨이고 싶은데 이젠 아줌마 계열에 들어서는 것 같아. 지금까지 생일들 참 행복했던 것 같은데 이것 봐 서른 앞뒀다고 생일도 싫어지잖아. 이게 다 나이라는 녀석 때문이야. 오빠는 서른 행복했어?"

오빠는 어이없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벌써 기억 안 나는 거야? 내 서른 어땠는지?"

질풍노도의 오빠와 그리고 그 옆에서 눈치 보는 내가 바로 그려졌다. 그때의 파란만장했던 우리의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잊겠는가. 오빠의 서른춘기가 지나고 이제는 나의 서른춘기가 왔다.


서른  됐다고 뜬금없이 이별통보를 했던 오빠가 정말 원망스러웠고 그때는 오빠의 밑바닥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본인은 결혼 적령기인데 결혼 생각도 없어 보이는 대학생 애인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이를 먹는다는  이럴 때면  신기하기도 하다. 상대방과 비슷한 조건이 되어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까지 이해할  있는 폭이 넓어지는데 나이라는 녀석이 그걸 도와준다. 그렇기에 밉지만 너무 미워만   없는 녀석이다. 애증의 관계, '나이먹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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