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먹음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생일이 이처럼 우울하기도 처음인 것 같다. 지금까지 지나온 생일을 돌아보면, 학창 시절에는 시험기간이라 공부를 하며 생일이 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던 것 같은데 이건 분명 기억의 미화일 거다. 30이라는 숫자가 코앞이라 그런지 어제의 생일은 평소와는 다름없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었다. 생일이 아닌 척 이틀 전과 똑같은 하루를 보내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바보 같아서 웃음이 났다. 카톡 프로필을 들어가서 혹시나 내 생일 알람이 켜있는지부터 확인을 했다. 꺼져있다는 것을 두 번 세 번 확인한 후 안심이 됐다. 퇴근 후 오빠와 집에서 저녁을 먹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것까지, 딱 거기까지는 내가 생각한 대로 완벽했다. 그런데 일과의 순서에만 집중한 나머지 대화의 소재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빠는 생일 축하한다고 계속 내게 말을 건넸고 자연스레 우리의 이야기는 '나이먹음'으로 갔다.
"오빠 오늘 나 생일이잖아. 나이 먹는 거 너무너무 싫어. 난 영원히 baby 같은 아가씨이고 싶은데 이젠 아줌마 계열에 들어서는 것 같아. 지금까지 생일들 참 행복했던 것 같은데 이것 봐 서른 앞뒀다고 생일도 싫어지잖아. 이게 다 나이라는 녀석 때문이야. 오빠는 서른 행복했어?"
오빠는 어이없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벌써 기억 안 나는 거야? 내 서른 어땠는지?"
질풍노도의 오빠와 그리고 그 옆에서 눈치 보는 내가 바로 그려졌다. 그때의 파란만장했던 우리의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잊겠는가. 오빠의 서른춘기가 지나고 이제는 나의 서른춘기가 왔다.
서른 살 됐다고 뜬금없이 이별통보를 했던 오빠가 정말 원망스러웠고 그때는 오빠의 밑바닥을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본인은 결혼 적령기인데 결혼 생각도 없어 보이는 대학생 애인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럴 때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상대방과 비슷한 조건이 되어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까지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는데 나이라는 녀석이 그걸 도와준다. 그렇기에 밉지만 너무 미워만 할 수 없는 녀석이다. 애증의 관계, '나이먹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