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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Feb 17. 2022

편식 극복기

겨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뭘까? 눈, 눈사람, 썰매? 그런데 나의 고향인 경상도 김해는 그 눈이 참으로 귀하다. 그래서 겨울 하면 눈을 떠올리기는 할 테지만 그것은 분명 영화와 드라마 매체를 통해 주입된 이미지일 것이다. 그만큼 눈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취직 후 중부지방에 정착하면서 겨울만 되면 눈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밑 지방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지만 이제 겨울에는 눈을 볼 수 있다는 공식이 성립된 것이다. 그런데 결혼 후 겨울이라는 계절에 또 다른 공식이 생겼다.

겨울에는 김장하러 시댁에 내려간다.

김장이 다가올 때면 우리나라에 가을이라는 계절이 없어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왜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가는 건지 아쉽다. 가을이 지나가서 아쉬운 건지 김장이 다가와서 두려운 건지 내 마음아 도대체 무슨 감정이니? 사실 이제 3년 차에 접어드는 신혼부부라 김장과 함께한 시간은 두 번밖에 되지 않아 엄살이 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나는 엄살 쟁이니까 어김없이 오빠에게 엄살을 부리며 투덜거렸다.

"나 너무 걱정이 돼. 아니야 나 잘할 수 있어. 그것쯤이야 뭐"

북 치고 장구치고 하루 전날 혼자 생쇼를 했다. 걱정한다고 해결될 건 없기에 빨간 고무장갑과 작업복을 주섬주섬 챙겼다. 대망의 그날이 왔다. 김~장.

그런데 이번 해는 익산 엄마의 지인분들께서 많이 와주셔서 생각만큼 바쁘지 않게 흘러갔다. 그리고 나의 편의를 계속 생각해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져서 너무 감사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다. 마음이 편해지니까 무거운 것도 막 옮기고 나름 신나게 작업을 함께 했다. (그래 봤자 오빠의 보 조생쯤이었을 거다.) 우리 부부가 기특해 보이셨는지 이모님께서 먼저 오빠의 입속으로 굴을 넣어주었고 그다음 나를 부르셨다.

"손 버리니까 입을 크게 아-하고 벌려. 내가 넣어줄게"      

편식을 하면 안 되지만 내가 도저히 못 먹겠다 하는 음식이 딱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굴과 연근!

그런데 그중 하나인 굴이 내 입으로 왔다. 굴과  내 입술 사이의 거리는 3cm쯤 되었을까? 바로 앞에 있으니 고민할 수도 없었다. 아기의 손바닥을 누르면 꽉 잡는 잡기 반사가 일어나듯 아기들의 자동반사처럼 입을 벌리고야 말았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굴인데 당황스럽게도 어? 굴이 맛있네? 굴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던가. '내가 알고 있는 굴이 맞는 건가?'라는 합리적인 의심까지 들었다. 너무 맛있었다. 맛있게 먹기는 했지만 그 이모님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배부른데 거절하지도 못하고 주는 대로 다 먹어버렸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탈이 났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내 몸을 방치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해 내 몸아.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굴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것. 집으로 돌아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용기를 내어 오빠에게 굴요리 전문점을 가자고 했다. 우리 집 앞에는 정말 유명한 굴요리 전문점이 있는데 3년간 지나치기만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굴요리를 먹다니 말로 설명하지 못할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내가 너무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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