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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Feb 17. 2022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나는 누군가 “종교 있어? 종교가 뭐야”라고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나 종교 없어. 나는 나를 믿는데?”라고 외치며 살았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불안 덩어리가 가득했고 화가 매우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다 내가 24살에 오빠를 만나게 되었다. 연애 초반에는 오빠가 종교에 관해 크게 강요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관계가 점점 깊어지면서 결혼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는 달랐다. “다른 건 몰라도 일요일에 예배는 함께 들을 수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어”라고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지만 이 사람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 약속 하나는 지키겠노라고 결심했다. 남편은 서울에서 자취를 했었기 때문에 나는 경기도 용인으로 상경한 이후부터는 내 자취방 3분 거리에 있는 교회를 무작정 혼자 찾아갔다. 교인 등록은 하지 않은 채 1년을 그렇게 조용히 다녔지만 역시 믿음은 생기지 않았다. 그때 기억을 떠올려보면 머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늘 졸다가 집에 온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용인으로 정착했고 오빠는 내 마음이 최대한 편한 교회를 다니자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렇게 집 주변 교회를 둘러보다가 00 교회로 오게 되었는데 오빠는 결혼 전에 예배 이상은 저에게 강요하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교인으로 등록하지 않고 6개월 정도는 조용히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난 이 교회가 마음에 드는데 혹시 우리 같이 교인 등록하면 안 될까?”라고 오빠는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둘러보았던 교회 중에 가장 마음이 편안했기 때문에 내 기억으로는 “그래 그러자”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사실 등록만 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우리는 00 교회의 시스템을 알지 못했고 어쩌다 보니 목장 모임까지 가게 되었다. 처음 목장 모임 가기 전 내 마음은 ‘한 번만 가고 부담스러우면 절대 절대 안 갈 거야’ 였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너무 편안했고 아늑했다. ‘분명 목장 모임은 매우 부담스러울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갔는데 그건 내 편견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목장 식구들의 추천으로 예수님 영접 모임을 듣게 되었다.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중 오빠의 자연스러운 행동들 속에서 문득문득 나는 이런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있다면 오빠 같은 사람일까? 오빠에게 웃으면서 “오빠 예수님 같아”라고 종종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제 머릿속에서 질문거리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천주교도 하나님을 믿는데 그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걸까? 등등등. 그러던 찰나 생명의 삶 광고를 들었고 이번이 Zoom으로 하는 마지막 수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자님께서는 생명의 삶 수업을 들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궁금증이 많이 해소될 거라고 하셨다. 나는 오빠보고 수업같이 들어보자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우리는 생명의 삶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생명의 삶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들이 자연스레 해소되었고 나는 자연스레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나는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보여주기 식을 많이 하던 사람이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아주버님 가정보다 우리 부부가 더 잘 사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 했고 늘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문득 그랬던 내 자신이 생각나면서 부끄러워졌다. 무엇보다 나와 같이 불안이 많고 삶 속에 어려움이 많은 우리엄마, 예수님을 아직 모르고 계시는 우리 엄마도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샘솟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ccm을 보내주기도 하고 은연중에 예수님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표현을 하는 내 모습이 나스스로도 아직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남편을 포함하여 예수님을 영접한 분들이 이전에 나에게 왜 전도를 하려고 했는지 그  마음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 또 우리 익산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갔고 부담스럽고 밉기만 했던 관계였는데 익산엄마의 삶이 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대하는 모습 속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주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불안을 표하며 살기보다는 감사를, 슬픔에 치우치기보다 그 속에 소소한 행복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주님이 영원히 저와 함께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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