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멈췄던 나의 글쓰기는 김태리가 출연하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드라마를 본 계기로 다시 열정이 폭발하게 되었다. 나중에 미래의 내 아기(내 딸?)도 무럭무럭 자라 글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된다면, 내 일기장을 펼쳐서 내가 가졌던 열정, 좌충우돌 파란만장한 내 청춘의 역사를 엿보며 깔깔 웃을 수 시간이 있길 바라 서다. 이렇게 내 자식에게 위로를 주고 싶은 좋은 마음과 함께 나도 자식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도 공존한다. 아무리 부모라도 사람인지라 자신의 감정에 앞서다 보면 자식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실수할 수 있지 않는가? 그때를 대비해서 어떻게 내가 살아왔는지 보여줌을 통해 조금은 나를 이해해주기를 기대해본다. 책을 통해 내 인생의 서사를 담고 싶은데 투고는 번번이 실패다. 남편과 난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야옹이라는 수신 어를 주고받는다. 그래서 오늘의 기분을 남편에게 표현했다.
"오빠 나 지금 야옹이 무려 다섯 마리다."
"왜? 무슨 일인데? 뭔 일 있어?"
"응 완전 뭔 일 있어. 내 글은 통통 튀는 매력이 없나 봐. 난 뭐가 부족해서 투고 탈락인 걸까?"
"아 속상한 게 그 일이었어?"
"응 나 지금 심각해. 속상해서 눈물 날 것 같아. 근데 그런 내 모습이 한편으로 웃기고 바보 같아"
"평화야 바보 같지는 않은데 불쌍한 것 같긴 해.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눈물 흘리는 거랑 같잖아.
또 평화는 통통 튀는 글을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잖아."
"어.... 오빠 말이 맞네. 어제 내가 드라마를 너무 몰입했나 봐. 김태리처럼 멋진 여주인공이 되고 싶었는데 실패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속이 좁고 너무너무 유치해서 웃겨."
오늘도 흑역사를 제조하고 말았다. 나의 흑역사는 언제까지 제조될까? 부끄러움의 역치가 높아졌을 때 지난 내 흑역사를 구경하고 싶어서 sns의 시작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아래의 사진 하나로 25살의 나를 드러낼 수 있을 것 같다. 얼마나 화가 나고 속상했으면 문자 내용 띄어쓰기가 저 모양일까?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지우고 싶진 않다. 저런 내 모습도 나였으니까.